왕이의 ‘중국식 인권론’ … 참정권 제한 언급 없이"인민 잘 살게 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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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문제를 빌어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면 안되고 정권 교체를 꾀하면 더더욱 안된다.” 왕이(사진) 외교부장이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기고문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중국의 정부 각료가 인민일보에 기고문을 싣는 건 흔치 않다. 그의 기고문은 인민일보 27일자 21면에 실렸다.

왕 부장은 기고문에서 “주권 평등은 인권 촉진과 보호의 근본”이라고 전제한 뒤 “각 나라들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다른 나라의 인권 사업 발전을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왕 부장이 기고문에서 나라 이름을 적시하지 않았지만 인권을 이유로 한 내정간섭이나 정권교체를 언급한 것은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뉴스사이트 관찰자망은 “왕 부장이 구체적 예를 들지 않았지만 이란·한반도 문제에 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태도가 강경해지고 있는 분위기에 경각심을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왕 부장의 기고문은 미국에 살고 있는 반체제 인사들의 비난과 중국 인권상황에 대해 곱지 않는 시선을 보내는 국제사회를 의식한 것으로도 보인다. 중국 출신 반체제 인사들은 트럼프 정부가 중국 인권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위구르 무슬림 출신으로 중국서 추방 당한 레비야 카디르는 최근 미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이 세계 어디에서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인권에 대한 관심을 줄인다면 그것은 곧 중국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왕 부장의 기고문에선 중국의 독특한 인권 개념도 드러났다. 그는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안다. 인권의 관건은 발전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의 ‘인권 꿈’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인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며 기고문을 맺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참정권 제한이나 언론 통제 등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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