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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업 경쟁력 강화가 최고의 일자리 정책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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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호 02면

사설

지난 24일 통계청이 내놓은 가계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2인 이상 국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39만9000원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소득은 0.4% 감소했다. 가구 실질소득이 감소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 이후 7년 만이다. 소비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가계소비는 2003년 이래 처음으로 0.5% 줄었다. 출범 4년(25일)을 맞은 박근혜 정부의 초라한 성적표다.

경제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지난 23일 내수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매월 1회 금요일 오후 4시에 퇴근하는 ‘한국판 프리미엄 프라이데이’ 도입 등이 골자다. 하지만 이런 임시방편으로 경기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기 불황으로 소득이 줄고, 그에 따라 내수마저 고꾸라지고 있는 상황인데 내수를 살려 경기를 활성화하겠다고 나서니 본말전도가 아닐 수 없다. 이웃 일본이 도입한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매월 마지막 금요일 오후 3시 퇴근) 정책은 아베노믹스 등으로 지난해 실업률이 완전고용 수준인 3.1%까지 떨어지는 등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국면에서 시행하는 것으로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경기가 살아나려면 고용과 소득이 늘어날 수 있도록 근본적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일자리도 늘어난다. 그러나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정부의 헛발질은 그렇다고 쳐도,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공약을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소방관·경찰·보육교사·복지공무원 등 공공부문에서 81만 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5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거나 공공기관의 청년 의무고용률을 3%에서 5%로 높이고, 민간기업에도 도입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일자리 정책이라고 내놓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해서 정말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믿는다면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무지한 것이고, 알면서도 이런 공약을 늘어놨다면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현재 100만 명인 공무원을 두 배 가까이로 늘린다면 천문학적 인건비 부담은 어찌할 것이며, 그렇게 해서 늘어난 공무원들이 양산해낼 규제로 인한 폐해는 어떻게 뒷감당을 할 것인지 묻고 싶다. 청년 의무고용도 마찬가지다. 이 제도는 이미 벨기에 등 복지 선진국에서 시행했다 폐기 처분된 정책이다. 청년 의무고용제가 기업 경영에 부담을 줘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결국엔 고용절벽으로 이어진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정부도, 정치권도 아닌 기업이다. 혁신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시장이 확대되면 일자리는 저절로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기업하기 좋은 환경,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주는 게 최상의 일자리 정책이자 최고의 복지 대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에선 하청업체의 납품 단가를 적정한 수준으로 높이는 등의 방법으로 700조원에 달하는 대기업 사내유보금을 중소기업과 가계로 흐르도록 하면 된다는 주장을 늘어놓는 사람이 적지 않다. 또 법인세 실효세율을 명목세율(최고 24.2%) 수준으로 높이고 상속·증여세 징수를 통한 불법적인 재산 대물림을 막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간 대기업들이 땅콩 회항과 운전기사 폭행 같은 갑질 논란, 형제간 경영권 다툼, 불법·편법 경영권 승계 등으로 반기업 정서 확산을 자초한 것은 사실이다. 최순실 사태로 권력과의 유착 문제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고용은 늘리지 않고 허리띠를 졸라 영업이익만 늘어나는 불황형 흑자가 이어지면서 ‘낙수효과’에 대한 의구심만 키웠다.

하지만 이런 행태가 밉다고 기업 때리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거를 앞두고 당장의 득표에는 유리할지 모르겠으나 기업 때리기는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경쟁력을 약화시켜 고용절벽을 부채질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불공정과 불법·편법은 엄격히 처벌하되 경영권을 보장하고 신바람 나게 기업할 수 있도록 규제 개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국회엔 다중대표소송제, 감사위원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기업 총수의 권한을 제한해 전횡을 막자는 취지이나 자칫 경영권 방어에 구멍이 생기거나 기업의 경쟁력을 허물어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참에 한번 쓰러지면 재기가 거의 불가능한 연대보증제 등을 과감하게 풀고, 청년 사업가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규제프리 샌드박스’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정부는 공정한 심판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기업은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도록 하는 환경과 정책을 마련하는 게 최고의 일자리 정책이다. 그래야 경기도 살아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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