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을기리며] 과학을 예술이게 하고 일상을 축복이게 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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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인간은 늘 신(神)이 되고 싶어한다. 예술가들은 이를 위해 평면에서 입체로, 그리고 움직임으로, 끝내는 음향까지 겸한 창작을 꿈꾸었고 또 이러한 길을 걸어왔다. 이것을 세계 최초로 성취한 사람이 백남준이다.

고인이 된 자랑스러운 나의 벗, 백남준. 빛과 영상과 음향이 함께 어울리며 변동하는 세계를 우리 삶에 안겨준 사람, 백남준. 모든 종류의 영상세계를 예술로 창출하여 우리의 일상적인 시각을 고급화하고 삶의 의의를 풍족하게 느끼게 해준 주인공, 한국인 백남준.

그는 영영 우리들 곁을 떠났다. 전자과학의 기계.매체.제품은 과학의 소산이지만, 그 매체의 영상을 예술문화적인 성격으로 다양화하고 경험 못한 신기한 영상세계를 창출하여 경쾌한 정서적인 충격을 우리에게 안겨준 사람, 우리의 존경하는 형제, 친구인 백남준. 그는 다시 만나볼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났다.

오늘날의 세계의 특성인 시간과 공간의 거리단축은 정보전달.교환을 다른 차원으로 상승시켰지만, 백남준은 새롭게 만들어낸 영상을 세상 사람에게 전달하여 시각에 혁신을 이루어 놓았다. 변화무쌍한 영상으로 나타나는 중첩된 영상, 공존이 있을 수 없는 영상들의 집합, 어항 속의 붕어, 길가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 등.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잡힌 영상이 되었고, 그 결과 일상적인 소재들은 신기한 시각세계로 탈바꿈되었다. 그렇게 백남준은 우리의 시각을 넓히고 일상성을 넘어선 미지의 시각세계를 넘볼 수 있게 했다.

그로 인해 이제 동서남북 세상 어디서나 남녀노소 모두는, 평범한 영상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시각 영상을 즐기게 되었고, 또한 끊임없이 이를 요구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상쾌함을 주고 환상적인 세상을 맛보게 하는 그의 예술은 예로부터 예술가들이 바래고 탐구했던 종합예술, 총체적인 예술이다.

먼저 떠난 친구 백남준은 전자영상매체기구를 구축하여 우리의 문화재인 남대문을 조형하고, 거북선.첨성대.탑.로봇 등의 형태를 만들어내었고, 거기에 환상적으로 변화하는 영상세계를 곁들였으며, 또한 생동적인 음향까지 방출하는 이른바 종합예술을 구현하였다.

백남준은 현대문명의 산물인 과학기구를 직접 다루고 그 기능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가 되었다. 한 마디로 그는 철두철미 현대인이었고 그야말로 완벽한 예술가였다. 백남준은 비디오 영상매체가 오늘날처럼 일반화되기 이전에 일찍이 그 기구를 이용하여 예술적인 영상을 산출하여, 과학매체의 활용가능성을 예술에 연결한 선구자였다.

임영방
(전 서울대 미학과 교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위대한 발명가이고 위대한 예술가인 한국인 백남준. 그는 떠났지만, 그는 꿈의 실현이 가능하고 환상세계가 현실 속에서 경험되는 길과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하여 내일을 희망차게 기다리게 해준 은인이다. 고인을 생각하면 늘 그가 나에게 해주던 말이 떠오른다.

"임박, 일하면서 항상 즐겁게 살아!"

임영방 (전 서울대 미학과 교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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