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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는 명장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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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로 제갈량을 만났을 때 제갈량은 말하였다. "지금 조조는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고 있으니 그와는 싸울 수가 없습니다." "손권은 강동을 차지한 지가 삼대에 이르렀고 지세는 험하며 백성들이 따릅니다. 그와는 손을 잡아야 할 것이요." "형주는 북으로 한(漢)과 면(沔) 강이 막고 있어 남해의 이익을 모조리 차지할 수 있습니다. 동으로는 오(吳) 회(會)와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파(巴) 촉(蜀)과 통하니 이곳은 군대를 길러 싸움을 할 만한 땅입니다." "익주는 험한 요새이며 기름진 들이 천 리에 뻗어 있으니 하늘이 준 창고입니다." "장군께서 익주와 형주를 걸터타고 험한 지세를 이용하여 지키고, 밖으로 손권과 동맹을 맺고 안으로 정사에 힘을 쓰다, 천하에 변란이 일어나기를 기다려 상장에게 형주의 군사를 거느리고 완성과 낙양으로 향하게 하고, 장군께서 몸소 익주의 군사를 모아 진천으로 나간다면 대업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 유명한 삼분천하(三分天下) 전략이다. 이 구도에서 형주와 익주는 어느 한 쪽이라도 없으면 안 되는 지역이다. 익주는 사천분지 지역으로 물산이 풍부하고 수비하기에는 좋지만 군대를 끌고 밖으로 나가기엔 어려운 곳이다. 형주는 오늘날의 중경 지역으로 북으로는 조조의 낙양이 있고 양쯔강을 따라 동으로 가면 오에 닿을 수 있다. 실로 전략적 요충지다. 형주의 상실로 촉은 사천분지 안에 가두어진 형세가 된다. 이로써 촉의 멸망이 결정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에 제갈량은 6차에 걸쳐 북벌에 나선다. 그러나 그 행렬은 한 번도 낙양을 향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북벌의 주목표가 사실은 위(魏)를 치고자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직 생존을 위하여 북쪽의 기마민족과 연합하고자 한 눈물겨운 몸부림이었다.

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형주 상실은 관우의 실책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오촉동맹이 가지는 중대한 전략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에서 사돈을 맺자는 제안에 그는 "범의 딸을 어찌 개의 아들에게 시집보내겠는가"라며 거절, 동맹이 깨어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 육손이 장수가 되자 "손권이 식견이 짧아 어린 아이를 장수로 삼았구나" 하면서 우습게 알다가 끝내는 형주를 잃어버린 것이다.

물론 관우는 충의(忠義)의 화신(化身)이요, 용장(勇將)이다. 유비.장비와 맺은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끝까지 지켜가는 아름다운 모습과, 긴 수염을 늘어뜨린 채 적토마에 올라 청룡언월도를 휘둘러대던 용맹스러움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런 덕목을 가졌다고 해서 명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명장은 국가적 전략에 따라 싸움에서 이겨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장수다. 관우처럼 국가적 전략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처구니없는 오만으로 동맹국을 적으로 만들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장수는 결코 명장이 될 수 없다.

요즘 노무현 대통령 주변에도 관우 같은 충의의 용장들은 종종 눈에 띈다. 아니 너무 많이 설치는 느낌이라 나라 일을 그르칠까 아슬아슬하다.

김상조 제주대 교수·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