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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빚 1344조 최대 … 대출 죄자 악성부채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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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총 규모와 증가 속도, 질적 측면에서 모두 ‘빨간불’이 들어왔다.”(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4분기 증가폭 48조도 최다 #"저소득·취약계층에 직격탄” #증가율 2014년 6% → 작년 11%대 #은행권 대출 억제 풍선효과로 #2금융권에 4분기만 29조 몰려 #당국 “보험사 등 특별점검” 경고만 #“신규대출 제어 위한 조치 내놔야”

지난해 말 가계부채 총액이 1344조3000억원으로 집계되면서 나오는 우려의 목소리다. 지난해 2월 정부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출 기준을 강화하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시행했지만 가계부채 증가세를 꺾지는 못했다.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빚은 141조2000억원 증가했고, 지난해 4분기에만 47조7000억원 늘었다. 규모, 연간·분기별 증가액 모두 역대 최대다.

지난해 4분기만 보면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규제가 은행권에서만 작동하면서 보험ㆍ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의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 폭은 지난해 3분기 17조2000억원에서 4분기 13조5000억원으로 꺾였다. 반면 보험사와 상호저축은행 등 2금융권과 대부업체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같은 기간 19조8000억원에서 29조4000억원으로 늘었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2금융권 대출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대출의 질이 나빠졌다는 의미다. 금리가 본격적으로 오르면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계가 늘어날 수 있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가계부채연구센터장은 “ 원금을 매달 분할상환하는 가계의 빚 부담이 더 커지면서 가계의 소비가 줄어들 것”이라며 “특히 저소득ㆍ취약계층이 연체에 빠지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 1명당 2600만원 … 가계빚 증가 속도 해마다 빨라져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도 문제다. 가계 빚 증가율은 2014년 6.5%, 2015년 10.9%에서 지난해엔 11.7%로 뛰었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21일 기자브리핑을 하면서 “내부적으로 보던 숫자보다 늘었다”고 말했다. 예상보다 가계부채가 많이 증가했다는 얘기다. 이에 금융당국은 21일 급히 ‘제2금융권 가계대출 간담회’를 소집하고 2금융권을 밀착 점검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상반기 중 70개 상호금융조합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한다. 가계대출 규모가 크게 늘어난 보험사도 들여다보기로 했다. 2금융권을 향한 경고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은 “2금융권의 지나친 가계대출 확장으로 인해 은행권에서 비은행권으로 리스크가 전이될 수 있다”며 “과거 카드사태의 경험으로 볼 때 2금융권은 외형 확장보다 리스크 관리에 힘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시장금리 상승과 대출 규제 강화로 올해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일 것으로 보고 있다. 증가율을 한 자릿수대로 관리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도규상 국장은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액이 0일 정도로 이미 안정세에 접어들었다”며 “2금융권도 다음달부터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본격 시행하면 대출 증가세가 둔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금융당국은 현장 점검 이외의 실질적인 규제 방안을 추가로 내놓지 않았다.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적용 확대와 소득 산정을 정교화한 신(新)총부채상환비율(DTI) 도입 등 기존에 예고한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뿐이다.

그러나 이미 쌓여 있는 1344조3000억원의 가계 빚으로 인한 리스크는 만만치 않다. 국민 한 명당 지고 있는 빚이 2600만원에 이른다. 금융당국의 희망대로 올해 가계부채 증가세가 잡힐지도 불확실하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부동산 경기가 수그러들면서 신규 가계대출 증가세는 둔화되겠지만 이미 약정된 아파트 중도금 집단대출이 시차를 두고 나가기 때문에 대출이 큰 폭으로 줄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기존 부채는 어쩔 수 없더라도 신규 대출을 제어하기 위한 규제를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며 “담보인정비율(LTV) 및 DTI를 단계적으로 강화해야 하고 집단대출 추가 규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계 빚 증가와 경기 둔화 대응에 정부가 머뭇거리다간 더 큰 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황종률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 같은 대외 여건 변화로 인해 혹독한 부채 조정 과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내수 침체 현상이 지속하면서 일본식 장기 불황으로 가지 않도록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규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나마 여력이 있는 정부에서 재정을 동원해 가계·기업의 심리를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현숙·한애란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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