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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3월호] 安風(안희정 바람)의 4대 필요충분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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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불안감이 안희정을 불렀다

지지율 상승, 탄핵 인용, 문재인 캠프의 실책 등 3박자에 지사직 사퇴(?)까지…단순 지지율 상승보다 민주당 내부 지지층 이동 여부가 관건

2월의 정치권은 다이내믹했다.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추락했고, 안희정 충남지사는 ‘빅2’로 솟구쳤다. 민주당 경선과 대선 판도까지 출렁인다. ‘태풍의 눈’ 안 지사의 파괴력은 어디까지일까?

안희정 충남지사는 “나라를 맡겨도 안심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중앙포토]

안희정 충남지사는 “나라를 맡겨도 안심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중앙포토]

# “줄곧 내가 이야기했어요. 그는 주로 경청하는 자리였지요.”
지난해 하반기 한국을 찾은 미국인 A씨는 안희정 충남지사와 만남을 이렇게 돌이켰다. 동아시아문제에 해박한 외교·안보 전문가인 그에게 안 지사가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對)한반도 안보전략, 북핵 해법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것. 당시는 오마바 행정부가 북한과 직·간접 접촉을 본격화하던 시점이다.

“처음엔 안 지사의 논리가 탄탄하고 판단이 분명하다기에 자기주장도 강하리라 여겼다. 두세 시간 이야기했나? 하다 보니 주로 내가 말하는 입장이고, 그는 듣기만 하더라. 많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진지하게 듣고 새기려는 열의도 느껴졌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A씨는 지난해 만난 한국의 대선 주자로는 안 지사가 유일했다고 덧붙였다.

 # 보수정부에서 국정원 고위직을 지낸 B씨는 뼛속까지 보수주의자다. 얼마 전 어떤 자리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와 만나 대화를 나눈 모양이다. 지금도 권력의 핵심부와 연이 닿는 B씨는 “안 지사 만나보니 그쪽 사람 같지 않은 게 괜찮아 보였다”고 평했다.

“친노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도지사임에도 특정 정파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현실에 입각한 균형감각도 있고. 상식과 원칙에서 통하는 듯도 했다.” B씨는 “안희정 그 사람 계속 눈여겨봐야 할 것 같아”라며 그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음을 내비쳤다.

안희정 충남지사를 접해본 보수성향 인사들은 놀라움이랄까 의외성을 먼저 발견한다. 물론 안 지사 도 작심하고 나간 자리였으니 자신의 상품성을 극대 화하고자 애썼을 법하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어 본 사람들은 상대방의 외양뿐 아니라 내면의 세계까지 꿰뚫어보게 마련이다. 숨기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는 뭔가가 이들의 눈에 선명히 드러나는 것이다. 보수주의 관점에 서 안보와 외교를 다루는 A, B씨에게 운동권 출신인 안 지사는 대화가 되고 호감을 주는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그런 안 지사가 국내 여론조사기관의 차기 대선 주자 지지 도 조사에서 뚜렷한 상승세를 보인다. 한국갤럽이 2월 10일 발표한 2월 둘째 주(7~9일)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29%, 안 지사는 19%, 황교안 대통령권 한대행은 11%를 기록했다. 1주일 전과 견줘 문 전 대표는 3% 포인트 떨어진 데 반해 안 지사는 9%포인트 올랐다. 정당별 지지도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안 지사는 민주당 지지층에 서 문 전 대표(57%)에게 크게 뒤진 20%를 얻는데 그쳤지만, 국민의당·바른정당·자유한국당(새누리당) 지지층에서는 문 전 대표를 앞질렀다.

인터넷 언론 <데일리안>이 알앤써치에 의뢰해 2월 셋째 주 실시한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도 흐름은 이어졌다. 안 지사는 일주일 전보다 3.8%포인트 오른 19.2%를 기록했다. 문 전 대표는 0.7%포인트 하락한 36.2%에 머물렀다.

반기문 반사이익 + 개인기의 합작품

지난해 12월 고(故) 김근태 전 의원 5주기 추도식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는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지사. [사진·전민규]

지난해 12월 고(故) 김근태 전 의원 5주기 추도식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는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지사. [사진·전민규]

안 지사는 문 전 대표와의 대결에서 민주당에서는 밀리고 민 주당 밖에서는 크게 밀리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 보수와 중도 층에서 문 전 대표가 아닌 안 지사에게 지지를 보낸 덕분이다. 여세를 몰아 안 지사는 민주당 경선, 나아가 대선의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을까? 그의 운명은 궁극적으로 민심, 즉 지지 율의 향배에 따라 판가름나게 된다.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문 전 대표 캠프는 집권시 무엇이 좋아질 것 같다, 어떤 어젠다를 힘차게 밀 것 같다는 전망이 명확하지 않은 게 내부의 고민일 것”이라면서 “안 지사는 불완전하나마 그런 포지티브한 전망을 구체화하는 힘을 보인다”고 했다.

안 지사가 먼저 거쳐야 할 관문은 일반인 상대로 한 여론 조사다. 20% 선을 넘어 문 전 대표를 압박하느냐가 분수령 이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민주당이 대선 후보경선 선거 인단 모집에 들어간 2월15일 이후에도 안 지사의 지지율 확 장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본다. 최근 안 지사 지지율 상승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낙마 등 외부의 반사이익에만 기인하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고 했다.

안 지사 지지율은 반 전 총장이 중도하차하고 나서도 꾸준히 올랐다. 이에 대해 허 이사는 안 지사의 개인기가 먹혀든 결과로 돌렸다. 허 이사는 “유권자 대중을 상대로 발산하는 안 지사의 메시지가 나름 효과를 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12월 고(故) 김근태 전 의원 5주기 추도식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는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지사. [사진·전민규]

지난해 12월 고(故) 김근태 전 의원 5주기 추도식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는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지사. [사진·전민규]

“당파나 이념을 떠나 큰 틀에서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얘 기하는 등 스스로 흡수하는 표가 있다. 바른정당 지지층에 서도 안 지사의 지지율이 높다는 것은 보수층에서 호감을 갖 는다는 뜻이다.” 안 지사의 이런 면모가 인구에 회자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다면 우호세력 확장에도 이롭게 작용한다. 허 이사 는 “안 지사의 상승세가 2월 하순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 담하지 못하지만, 단기간에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 다봤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보수진영에 강력 한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 지속되거나 헌법재판소가 탄핵소 추안을 인용하는 경우 정권교체 가능성이 더 커진다며 이렇 게 말했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지는 것과 비례해 문 전 대표의 지지층 결집력은 떨어지고 안 지사의 지지세 확장의 기회는 넓어진다.” 이 대표는 “안 지사는 2월 6~10일 실시한 리얼미터 조사 에서 수도권과 충청에서 강세를 보였다”면서 “정권교체 지수가 높아질수록 진보 유권자들은 후보를 고를 때 여유를 갖 게 된다”고 분석했다.

즉, ‘탄핵이 확실해진다’ ‘누가 해도 이긴다’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안 지사에게도 기회의 문은 열린다고 하겠다.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문 전 대표 캠프는 집권시 무엇이 좋아질 것 같다, 어떤 어젠다를 힘차게 밀 것 같다는 전망이 명확하지 않은 게 내부의 고민일 것” 이라면서 “대조적으로 안 지사는 불완전하나마 그런 포지티 브한 전망을 구체화하는 힘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안 지사가 국민에게 다가서는 모습은 다른 야권 주자들과 확실한 차별성을 보인다. 탄핵정국에서 돌출된 각종 현안 대 처에서 분열보다 통합, 이념보다 실용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사례들을 모아보면 그가 왜 탄핵국면에서 부상하 는가를 유추해볼 수 있다.

정리된 개념을 일목요연하게 제시

안보·국방분야에서는 현실주의적 접근을 통해 보수층을 끌 어들이는 흡입력을 발휘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의 국내 배치 문제와 관련해서다. 문 전 대표가 “재 검토와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사이 안 지사는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한·미 합의가 이뤄진 것을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한반도 위 기관리와 안보 현안 접근방식에서도 안 지사는 “미국 중심 의 국제적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며 안정감을 불어넣었다.

“만약 안 지사가 민주당 내 문 전 대표 지지자들의 표를 확보해 뒤집기에 성공했다면 민주당 경선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게 아니고 중도 또는 보수층의 표를 끌어와 지지율을 올렸다면 반드시 역전된다고 보기 어렵다.”

문 전 대표가 대담집을 통해 1년까지 단축할 수 있다고 밝 힌 군복무기간에 대해서도 안 지사는 “우리가 튼튼한 안보를 제대로 가질 것이냐를 먼저 두고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접근방식을 달리했다. 그는 “민주주의 선거에서 표를 전제하 고 공약을 내는 것은 나라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각을 세웠다. 나중에 JTBC <썰전>에 출연한 문 전 대표가 참여정부 시절의 국방개혁안을 언급하며 “대통령 임기 후에 나, 그것도 장기적으로 12개월도 가능하다”고 보완설명에 나 섰지만, 이렇다 할 반향을 얻지 못했다.

잠룡 중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 전 대표는 천지사방으로 부터 공격받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미 내놓은 발언을 매번 수 정하거나 보완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정책 포지셔닝이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비친다”고 정한울 교수는 지적했다.
“사드 문제나 대연정 같은 사안에서도 안 지사나 이재명 성남시장은 명확했다. 문 전 대표는 우유부단하다고 할까?

자기 소신을 못 보여주는 게 불안요인이 된다.” 반면 안 지사는 단번에 정리된 개념을 일목요연하게 제시 하는 수완을 발휘한다. 뇌물공여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 자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1차 영장 청구가 기각됐을 때도 그 랬다. 확실한 심증만큼이나 실망이 컸던 야권은 법원의 결정 을 비판하며 흥분해 마지않았다. 안 지사는 이에 대해 “사법 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는 “구 속영장의 기각이 정당했느냐, 또 그것이 정의로운가에 대해 국민은 정서적으로 많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사법 부의 판단에 대해 늘 존중하는 입장을 갖는 것이 법치의 엄격 성과 법치의 정의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회·경제분야에서도 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재산과 소 득에 무관하게 국가가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 도입 여부를 놓고 여야가 논란을 빚을 때 그는 “국 민은 공짜 밥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당내 경쟁 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연간 1인당 1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하자 “세금을 누구에게 더 나눠주는 정치는 답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면)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복지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 다는 논리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치의제 설정에서도 안 지사는 앞서나갔다. 국가 운용을 실효적으로 보장하는 대연정 구상이 대표적이다. 그는 “민 주주의정치, 의회정치의 대화와 타협 구조를 정상화시켜 시 대의 개혁과제를 완성하겠다”며 협치를 가능케 하는 대연정 을 제안했다. 차기 정부를 누가 이끌든, 의회와 협치하지 않으 면 아무것도 진행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시 제안했으나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배격한 대연 정의 연장선상에 섰다. 이 발언은 야권으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민주당의 정청래 전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막판에 자신의 대연정 제안이 잘못됐음을 시인했다”며 “안 지사의 대연정 제안은 촛불민심 을 읽지 못한 시대착오적 판단”이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특히 안 지사가 자유한국당(새누리당)까지 연정의 대상이 된다고 하는 바람에 야권의 드센 반발을 샀다. 과거의 적폐를 덮고 자유한국당도 용서하자는 것이냐는 공격이 야권으로 부터 쏟아졌다. 안 지사는 “대연정은 박근혜·최순실을 용서 하자는 뜻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면서도 “경선국면에서 내게 불리하지만 당장 2~3개월 뒤에는 차기 정부를 이끌어야 하 기 때문“이라고 대연정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안 지사 대연정 구상

① 안희정 지사(오른쪽)가 2월 12일 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분향하고 있다. ② 1월 31일 충남 홍성 지사공관에서 대국 중인 안희정 지사(왼쪽)와 이세돌 9단. 9단. 이 9단은 안 지사의 후원회장으로 영입됐다. [사진·뉴시스, 사진제공·안희정 충남지사]

① 안희정 지사(오른쪽)가 2월 12일 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분향하고 있다. ② 1월 31일 충남 홍성 지사공관에서 대국 중인 안희정 지사(왼쪽)와 이세돌 9단. 9단. 이 9단은 안 지사의 후원회장으로 영입됐다. [사진·뉴시스, 사진제공·안희정 충남지사]

이처럼 논란을 마다하지 않는 안 지사의 현실주의 행보가 중 도·보수층의 표심을 껴안는 확장성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 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반기문 전 총장의 퇴장으로 갈 곳을 잃은 보수와 중도 성향, 50대 이상의 표심 일부가 황교안 총리에게 갔고 나머지 일부는 안 지사에게 갔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이를 일러 안 지사가 ‘우클릭(보수화)’한다고 비판하지만, 안 지사는 “평소 소신에 입각한 행보일 뿐 우클 릭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그는 “진보의 가치를 준수하며 인간, 사회적연대, 공동체, 평화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놓 쳐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진보진영, 민주당에 권력과 나라살림을 맡겨도 안심할 수 있는 신뢰를 얻어내는 정치인 이 될 것”이라고 자신의 행보를 설명하기도 했다.

안 지사의 오랜 측근인 김종민 의원은 안 지사에 대한 지지 율 상승을 ‘우클릭’의 산물로 보는 항간의 시선을 배격한다. 김 의원은 “기존의 정치인들과 다르기 때문”에 국민의 호응 을 얻는다고 했다. “대부분의 정치인이 보수와 진보, 여와 야, 좌우 등 나름의 진영 흐름과 패턴에 갇혀 있었다. 안 지사는 이를 벗어나 국 민의 상식과 원칙에 부합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국민이 소신 있는 정치인, 못 보던 정치인이라고 해서 좋아하는 것이다.”

대연정 제안도 외연 확장용 중도화 전략이라는 야권 일 각의 비판과 달리 오랜 세월 숙성돼온 국가 운용 철학이라 고 안 지사 주변에서는 강조한다. 안 지사의 대연정 구상은 20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고려대 83학번 동기로 30년 동안 안 지사의 벗으로 지내온 정재호 의원(민주당)은 말한 다. 정 의원에 따르면 민선 5기 충남지사(2010~2014년) 중 반에 들 즈음 안 지사가 다음과 같은 의견을 처음으로 주변 에 개진했다고 한다.

2012년 9월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 현장. 문재인·손학규·김두관·정세균 후보 등이 각축을 벌였다. [중앙포토]

2012년 9월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 현장. 문재인·손학규·김두관·정세균 후보 등이 각축을 벌였다. [중앙포토]

“보수와 진보로 사람을 나누는 세상은 아닌 것 같다. 대화 와 타협을 통한 거버넌스를 세우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다. 시대별로 지식인, 지도층이 해야 할 국가적 과제가 있다. 이건 역사적 책무다. 그걸 해야 한다.” 지금의 대연정, 대통합 구상이 대략 5년 전부터 안 지사의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정 의원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부터 마음에 다듬어온 협치, 대연정 구상이 지금은 휘발성 강한 정치권의 이슈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충남도정이 연정을 위한 워밍업이었다는 말도 들린다. 정의원에 따르면 안 지사는 2010년 충남 도백에 오른 이래 줄 곧 새누리당이 다수당인 충남도의회를 상대해왔다. 의회와 폭넓은 소통과 끈질긴 설득으로 도정을 이끌며 협치를 시도 했다는 것. 국정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된다면 다년간의 도 정경험을 발판삼아 의회와 생산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리라 는 희망이다.

정 의원은 “문 전 대표는 행정집행의 매개고리로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했고, 국회의원도 지냈지만 협치를 체화할 기회 는 거의 없었다”면서 “바로 이 점에서 안 지사가 비교우위를 갖는다”고 힘줘 말했다. “안 지사는 국정을 책임감 있게 안정 적으로 이끌 준비를 마쳤다.” 안 지사가 품은 꿈을 이루자면 1차 관문인 민주당 대선 후 보 경선을 통과해야 한다. 민주당 경선엔 당원이 아닌 일반 국 민도 참여할 수 있다.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든 미리 ‘신청’하 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를 결 정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여론조사가 국민 전체를 경선 선거 인단으로 한다면, 국민참여경선제는 자발적으로 미리 ‘신청’ 한 사람들만이 경선 선거인단에 참여한다고 보면 된다.

패권구조에서는 문재인이 후보가 된다?

2월 2일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에서 대선 예비 후보로 등록한 안희정 지사가 기자회견 전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전민규]

2월 2일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에서 대선 예비 후보로 등록한 안희정 지사가 기자회견 전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전민규]

탄핵의 여파로 현저하게 야당 쪽으로 기운 대선 운동장임을 고려하면 ‘민주당 경선이 사실상의 대선’일 가능성도 배제 하지 못한다. 따라서 경선 후보 진영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지 지층을 선거인단에 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캠프에 속한 국회의원, 원외 지역위원장들이 지역구별로 선거인단 모집 에 두 팔을 걷어붙이는 게 오랜 관행이기도 하다. 2002년 노 무현 후보의 극적 역전승을 낳은 민주당 경선 당시 모 후보는 50만 명 이상을 선거인단에 끌어들였다는 전언도 있다. 조직 력이 강한 후보일수록 더 많은 지지자들을 참여하게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문 전 대표가 가장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민주당 경선은 어떤 성향의 인사들이 얼마나 참여하느냐가 당락을 가르는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경선에 당 외부에 있는 일반국민의 참여가 저조하면 당내 여론의 영향력이 더 커진다. 그렇게 되면 문 전 대표가 상대적으로 유리해진다.

민주당에서 문 전 대표와 한솥밥을 먹기도 했던 손학규 국 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은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안희정 충남 지사가 지금은 많이 올라온다고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패 권구조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가 후보가 된다”고 예상했다.
지지층의 결속력에서 안 지사가 문 전 대표에 못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안 지사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또 일부 민주당 지지자도 호감을 표하고 있지만 민주당 경선에서도 이런 흐 름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는 견해도 있다. 허진재 한국 갤럽 이사는 “현 정국이나 국가 비전, 주요 쟁점에 대한 태도 나 발언이 안 지사의 개인 지지도를 올리는데는 유효했지만 당내 경선에서는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앞서 봤듯이 안 지사 스스로도 대연정 구상이 경선국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 여타 논쟁을 일으킨 안 보·경제 어젠다에 중도·보수층이 호응하는 정도에 비례해 전 통 민주당 지지층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 외에 중도·보수층 참여가 증가하면 안 지사가 선전할 공간이 넓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2012년 대선 경선 때는 108만 명이 선거인단 참여를 신청했고, 그 가운데 57%가 투표에 참여했다. 이번에는 민주당 소속 대선 주자들 의 지지도와 정당 지지도 등을 감안해볼 때 대략 150만 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민주당은 점친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200만 명까지 선거인단이 불어난다면 일반인의 참여도가 높다는 점에서 안 지사가 후보 자리를 거머쥘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황태순 평론가는 말했다. 황 평론가는 “올 민주당 경선은 기존 당원이나 대의원에게 가중 치를 주지 않고 모든 선거인단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부여했 다”면서 “경선 룰만 따진다면 역대 민주당 경선에 견줘 올해 경선에서 이변 가능성이 더 높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보수진 영에서는 민주당 경선에 적극 참여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안 후보를 밀어주자는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김용태 바른정당 의원이 전했다.

“이번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이 물건너갔다고 보는 보수 지지층 중에는 민주당 경선에서 안 지사를 밀어 문 전 대표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말을 더러 한다.” 안 지사 측은 다른 각도에서 명승부를 자신한다. 바닥민심은 벌써 넘어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재호 의원은 “계량화 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방을 두루 다녀본 결과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든다”고 했다. 심지어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했다.

“언론에서는 조직력에 앞서는 문 전 대표가 경선에서 우위 를 점하리라고 보도한다. 그렇게 쏟아지는 보도가 우리는 고맙다. 첫 권역별 경선이 열리는 호남의 투표함을 열었을 때 여 론조사상의 갭보다 표차가 더 좁혀진다면 대세론이 일거에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충청-영남-수도권으로 이어지 는 경선에서 안 지사가 뒤집기를 노릴 수 있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하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안 지사의 지지율이 탄력을 받아 문 전 대표와 대등한 수준 까지 오른다면? 예컨대 안 지사가 지지율 25% 대 25% 정도 로 문 전 대표와 호각을 이루는 상황이 온다면? 이때도 경선 표심의 향배를 섣불리 예단하긴 어렵다고 허 이사는 말한다.
안 지사의 지지도 상승이 민주당에서 온 것인지 아닌지에 따 라 양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2014년 도지사 재선 후 대선을 구상

 “만약 안 지사가 민주당 내 문 전 대표 지지자들의 표를 확보 해 추격에 성공했다면 민주당 경선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게 아니고 중도 또는 보수층의 표를 끌어와 지지율을 올렸다면 반드시 역전된다고 보기 어렵다. 민주당 지지 층은 민주당 가치에 충실한 후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나 진보층은 안 지사 쪽보다 문 후보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단순 지지율 상승보 다 민주당 내부 지지층 이동 여부가 관건이라고 하겠다.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 내부 지지층 이동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한다. 당내 경선에서 이변이 어려운 이유를 이렇 게 댔다. “문 전 대표와 안 지사의 당내 지지자들은 기본적으로 상 대 후보에게도 호감을 갖고 있다. 이는 서로 적대적이지 않다 는 말이다. 따라서 갑자기 문 전 대표를 등지고 안 지사 쪽으 로 몰려가는 일은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발생하기 어렵다.”

이처럼 실물정치를 해본 민주당 관계자들은 현 상황을 문 전 대표 대세론이 흔들릴 수 있는 변수가 생겼다는 정도로는 인정하지만 이변까진 기대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민주당 일각에서는 안 지사가 문 전 대표의 경선 페이스메이 커 역할에 그치리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안 지사 측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마이웨이’하겠다는 각오다.

정재호 민주당 의원은 안 지사의 대선 출마 결심은 쉽게 내려 진 게 아니라면서 이렇게 전했다. “2014년 민선 6기 충남지사선거에서 당선된 직후다. 안 지사는 선거에서 고생한 측근 인사들을 충남지사 관저에 초청해 소주를 곁들인 자축의 자리를 가졌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국을 어떻게 이끌겠다는 구상과 확신이 선다면 대권에 도전하겠다.’ 지난 2년 동안 그 결심을 굳혔다고 본다. 시대적 과제라 할 대통합 정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기 에 대선에 나선 것이다.”

안 지사 주변엔 지사직 사퇴를 통해 진검승부 의지를 보여 주리라는 기대와 요구가 교차한다. 안 지사의 30년 친구인 김종민 의원은 “내부의 결의는 (지사직 사퇴) 그 이상”이라 고 했다. 하지만 대선 날짜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지사 직 사퇴 여부를 논할 순 없다고 톤을 낮췄다. 김 의원은 “대선 날짜가 결정된 이후 판단해도 된다”면서 “지금은 NCND(긍 정도 부정도 하지 않음)”라고 말했다.
현재 2위 후보인 안 지사가 1차 관문인 경선을 통과하는 데는 선결과제가 있다고 정한울 교수는 강조한다.

“안 지사의 지지율이 오르고, 탄핵도 인용 가능성이 높아져야 하며, 문 전 대표 쪽의 실책까지 더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3박자 가 맞아 들어가야 반문(反文, 반문재인) 정서가 흐르는 호남, 대망론에 목마른 충청에서 안풍(安風, 안희정 바람)이 분다 는 분석이다. 안 지사의 지사직 사퇴가 역전 드라마의 첫 페이지를 장식 할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한도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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