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군자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에 맹지반이란 사람이 있었다.
싸움터에선 늘 앞장서서 달렸지만 퇴각할 때는 언제나 뒤처져 갔다.
달아날 때 재빨라야 목숨을 건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패전군의 뒤처리를 하며 동료들을 위해 늑장을 부렸다.
그런데도 맹지반은 성안에 돌아온 후에야 자기 말에 채찍을 가하며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뒤 처지려고 한 건 아닌데 이놈의 말이 뛰어주지를 않는단 말이야.』
두말할 것 없이 공자는 『논어』에서 맹지반의 용기와 겸손을 아울러 찬양하고 있다.
『군자는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되 태연하지 않다.』 유대인의 교훈서『탈무드』에는 겸손의 미덕을 찬양한 대목이 나온다.
『너에게 적당한 자리보다 낮은 자리를 잡아라. 남한테서 「내려가시오」란 말을 듣느니보다 「오르시오」란 말을 듣는 편이 낫다. 하느님은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는 자를 낮은 곳으로 떨어뜨리고 스스로 겸양하는 자를 높이 올린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도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손님들에게 겸양하기를 가르쳤다.
『너는 초대를 받거든 맨 끝자리에 내려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사람이 「저 윗자리로 올라앉게」할 것이다. 다른 손님들의 눈에도 당신은 명예롭게 보일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겸손이 반드시 손해는 아닌 모양이다. 크게 보면 더 큰 이득이 있는 것 같다.
『역경』에도 「겸손의 덕을 가지고 있으면 어디를 가나 만사가 형통하고 끝을 잘 맺게 된다」(겸형. 군자유종)고 밝히고 있다.
거기에 공자가 『수고하고도 자랑하지 않고 덕을 세우고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니 이야말로 지극히 독실함이 아닌가? 덕이란 그 풍성한 것을 말하고, 예란 공손함을 말하며, 겸이란 공손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다』고 덧붙이고 있다.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단일화를 위한 협상이 「서로 양보를 요구」하는 모양이 되고 있어 국민의 마음은 답답하다.
군자라면 겸형을 알아야하거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