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최은희의 춘향이 김지미의 춘향을 이긴 까닭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9호 32면

저자 : 이영미 출판사 : 인물과사상사 가격 : 1만8000원

저자 : 이영미 출판사 : 인물과사상사 가격 : 1만8000원

최은희(91)와 김지미(77)는 둘 다 1960년대를 풍미한 배우지만 스타일은 달랐다. 김지미가 아담한 키에 인형 같은 얼굴을 지녔다면 최은희는 큰 키에 시원스러운 이목구비로 서구적인 매력을 뽐냈다. 외모로만 보면 김지미가 당시 대중들의 이상적 여성상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60년대 초반은 최은희의 시대였다. ‘쌀’ ‘상록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으로 스크린을 장악했고, 61년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에 출연해 같은 해 개봉한 김지미 주연의 ‘춘향전’에 압승을 거뒀다. 이유가 뭘까.

『동백아가씨는 어디로 갔을까』

대중문화를 통해 사회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계속해온 저자가 이번엔 61년에서 79년에 이르는 ‘박정희 시대’를 돌아본다. 흔히 박정희 시대의 대중예술 하면 금지곡이나 대마초 사건 같은 문화 통제 정책을 떠올리지만, 저자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시대가 있었다니!”라는 인상평에서 더 나아가 당시 대중문화속 사람들의 욕망과 정권의 통제 정책을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대중예술이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으며, 이런 대중의 사회심리는 그걸 즐기는 수용자 대중이나 인기작을 생산한 창작자도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박정희 시대를 61~63년, 63~67년, 67~71년, 71~75년, 75~79년의 다섯 시기로 구분한다. 61년은 5·16 군사쿠데타로 박정희가 집권한 해고, 63·67·71년은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75년에는 긴급조치가 발효돼 이른바 유신 말기로 접어들게 된다. 대통령은 같았지만 사회 분위기에 따라 대중 문화도 조금씩 변화한다. 저자는 당대를 풍미한 드라마·영화·노래와 이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 그리고 이에 대한 정권의 대응을 씨실과 날실로 당시의 사회상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60년대 초반은 대중문화 전반에 건전함과 희망이 들끓던 시기였다. 당시 크게 히트한 가수 김용만의 회전의자는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인데 /()/아아아 억울하면 출세하라 / 출세를 하라”며 신분 상승의 욕망을 민망할 정도로 드러낸다. 요즘 세대에겐 거의 속담처럼 자리잡은 ‘억울하면 출세하라’가 바로 이 노래에서 나왔다. 

 이 시기는 대중문화 속 여성상이 크게 변하는 때이기도 하다. 50년대에도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이 드라마에 등장했지만 대부분 과소비와 향락의 주체로 그려졌다. 하지만 전쟁과 전후 혼란기를 지나 60년대가 되자 강한 여성 ‘또순이’(62년 KBS 라디오드라마 ‘행복의 탄생’ 주인공)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꿋꿋하고 실행력이 있으나, 결국 본인이 성공시킨 남편의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남성의 권위까지 넘보지는 않는 여성. 서두의 질문 ‘최은희 vs 김지미’의 답이 여기서 나온다. 이런 주인공을 연기하는 데 여리여리한 외모의 김지미보다 강한 이미지의 최은희가 더 어울렸던 까닭이다.

 이런 긍정적인 분위기는 6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꺾여 67~68년에 이르면 신파성이 부활해 ‘미워도 다시한번’(68) 같은 영화가 크게 인기를 끈다. '희망있는 세상'에서 '울고 싶어지는 세상'으로의 이동이다.

 정권의 통제 역시 복잡하고 치밀해진다. 64년 나온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한일수교 반대여론으로 들끓던 사회 분위기에 밀려 ‘왜색’ 딱지를 달고 방송을 금지당한다. 하지만 한일 수교와 함께 대중문화 교류까지 계획했던 박정희 정부는 국내 방송 금지와는 별도로 이미자의 일본 진출을 지원하는 이중 정책을 취한다. 70년대 싹이 튼 청년문화를 꺾어버린 대마초 사건 역시 가수들의 ‘저항’에 대한 탄압이라기보다 마약을 매개로 사회 전체에 ’군기’를 잡는 의미가 컸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20~30대 독자라도 제목은 알 법한 전설의 작품들이 계속 등장하는 덕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포착하는 저자의 시각은 더없이 날카롭고 명쾌하다. 책을 덮을 무렵이면 이런 질문이 저절로 떠오른다. 지금 우리는 어떤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미래 세대는 과연 이 시대를 어떻게 읽어낼까. 마음이 무거워지는 질문이다.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