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특정 후보 지지"아니라 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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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현 한국정치과정을 한국민 자신들 못지 않게 비상한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는 워싱턴도 처신하는데 나름대로 고민이 있다. 17일 미하원 외무위 아시아-태평양소위의 한국문제청문회에 정부측 증인으로 출석한 「월리엄· 클라크」국무성동아-태평양 담당부차관보가 그 단면을 소개했다.
『우리가 취한 행동이 지지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리 평형을 유지하려 노력해도, 한국내정에 개입한다는 비난을 받는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비슷한 얘기로, 미국사람들은 그들이 한국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간여할 수 있는 폭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문제는 한국 쪽에 있다는 얘기다.
미국 쪽의 조그만 몸짓이 한국에서는 생각보다 크게 투사된다는 것이다. 하긴 워싱턴의 일개. 차관보나 부차관보 같은 실무책임자의 한마디가 서울에서는 마치 민주주의 교과서나 교본처럼 셀 수 없을 정도로 인용돼 「봉견」되는가하면 하원소위의 청문회가 과분한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노태우 민정당총재의 이번 워싱턴방문과 관련해 백악관대변인·국무성대변인이 글자한자 안 틀리는 목 같은 문구로 노총재를 맞이해 주는 것은 절대 그를 특별히 지지하는게 아니고 수차 합창을 했던 것도 이해 할 만은 하다. 그걸로 모자란다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같은 신문은 노총재가 떠나간 후 17일 사설로 『만약 한국사람들이 이번 회담을 전학팀에 대한 미국지지로 인식한다면 「불행한 일」이 될 것』이라고까지 크게 우려(?)했다.
한국지식층, 특히 젊은 지식층의 반미 감정확대를 우려의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이번 방문의 부작용이 그런 방향으로도 커질까 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노총재 방문이 실제로 정부간 외교채널이나 정당차원을 피해 다소 엉End한 창구를 택했던 데서도 미정부가 비난의 화살을 피하려 고심했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하긴 한미관계가 특수하고 현 국내 정치상황이 극도로 민감해서 그렇지, 대권경쟁에 나선 후보의 외국방문이 부자연스럽게 보일 이유는 없을 것이다. 3년 전 미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선언한 후「게리·하트」 상원의원이 외교분야의 경험이 부족한 인물이라는 공격가능성에 대비, 외교실력 보강 차 한국·소련 등을 방문한 바도 있는 것이다. 영국노동당 당수도 얼마 전 워싱턴을 방문, 「레이건」대통령을 위시한 각계 실력자를 두루 만나고 돌아갔다.
그러나 이 같은 얘기는 어디까지나 일반 논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국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노총재가 돌아간 후 미 정부측이 벌써부터 한국 대사관 쪽에 만약 김영삼 또는 김대중씨가 오더라도 이번처럼 울 코트 프레싱으로 나서서 접대하겠느냐고 걱정 겸한 궁금증을 나타내고있다는 얘기만 들어봐도 미국 생각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미 정부는 이번 일과 관련해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민주화과정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해명해왔지만, 속셈까지야 차치하고라도, 특정인에게 유리한 효과가 발생한다는 결과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미 정부 사람들은 그의 방문결과를 상당히 괜찮았던 것 (Fairly good)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총재 수행팀 발표로는「레이건」 대통령을 만나 30분 동안 한국민주화 과정의 설명뿐 아니라 통상문제에까지 의견을 나누고 부통령·국무장관 등 주요 행정부 사람들을 만났다.
리셉션·만찬 등 의전상으로 불가능했던 공식행사가 빠져 그렇지 갖출 것은 다 갖춘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의사당방문, 주미대사관저 리셉션 등을 통해 「크랜스턴」상원의원· 「포글리에터」 하원의원 등 진보적 의원부터 「솔로몬」의원 등 보수적인 인물 등 공화·민주 양당의원도 두루 만났다.
다시 말해 이번에 미 측은 한국야당 및 재야와의 관계를 의식해 조심하긴 했어도 한국정세의 안정측면에서 결과적으로 노총재의 입장이 올라갈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준 셈이라고 해도 미 측으로서는 크게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게 된 것 같다.
지나간 얘기이고, 그때도 국무성 대변인이 특정인·특정정당지지가 아니라는 해명이 있었지만 노태우 대표위원의 총재선출을 위한 민정당 전당대회에 「제임즈·릴리」 주한 미국대사가 잡음을 무릅쓰고 참석하는 성의를 보인바 있다.
미국인도 포함, 미국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가운데 하나는 전후 미국외교정책의 특징은 현상유지정책이라는 점이다.
어느 곳을 예로 들어보더라도 미국은 기존질서의 변화나 사회적 변화 쪽 보다는 기존 권력구조 폭을 택함으로써 안전한 게임을 해봤다는 것이다.
특히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에서 그랬다.
미 외교정책의 패턴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온「찰즈·케글리」미노드캐를라이나 대학교수는 『미국은 혁명적 시대 속에서 반혁명적 국가가 됐다』고까지 꼬집은 바 있다.
그런 기준에서의 「현상타파적」인토가 어쩌면 멀지않아 한국으로부터 미국을 방문하게 될지 모른다.
김대중씨가 미AFL-CI0 (노총) 에서 수여하는「조지·미니」 (전회장)인권상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가상 이지만 수상식이 예정된 10월26일 만약 김대중씨가 워싱턴을 방문할 경우 미국이 어떻게 행동할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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