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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독 브롬화네오스티그민 나온다면 북한 소행 ‘스모킹 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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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정남 피살

김정남 피살사건의 ‘스모킹 건(smoking gun)’이 나올까. 발사된 뒤 총구에서 연기가 난다는 뜻의 스모킹 건은 ‘결정적 증거’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스모킹 건을 잡는 건 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남성욱(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북한이 물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철저히 준비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남 피살 사건 주요 단서는
북, 주요 인물 암살 때 자주 사용
용의자들 여권 위조됐을 가능성도
일본 여권 KAL기 폭파범 김현희
뜨거운 물 뿌리자 “앗 뜨거” 한국말

일단 피살에 사용된 약물이 무엇인지가 주요 단서 중 하나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16일 김정남 독살 용의자를 추가로 체포했다. 앞서 잡힌 베트남 여권 소지자(왼쪽 원)와 인도네시아 여권 소지자(오른쪽 )가 호송되고 있다. [중국보]

말레이시아 경찰은 16일 김정남 독살 용의자를 추가로 체포했다. 앞서 잡힌 베트남 여권 소지자(왼쪽 원)와 인도네시아 여권 소지자(오른쪽 )가 호송되고 있다. [중국보]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독극물은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이라는 맹독성 부교감신경흥분제다. 북한은 과거 주요 인사들을 암살하면서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을 묻힌 독침을 쏘는 수법을 사용했다. 1996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의 달러 위조를 추적하던 최덕근 영사, 2011년 8월 중국 단둥(丹東)에서 대북 선교활동을 하던 김창환 선교사 모두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을 묻힌 독침 공격을 받은 뒤 사망했다. 실제로 이 맹독성 물질은 북한에서 많이 쓰인다고 한다. 북한에서 12년간 약제사(약사)로 일하다 탈북한 이혜경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짐승을 사냥하거나 할 때 화살촉에 묻혀 사용하곤 하는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부검에서 이 물질이 나온다면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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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가능성도 있다. 일본 NHK방송은 16일 “김정남의 시신 상태로 볼 때 신경성 독가스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맹독성을 띠는 ‘VX가스’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개발된 VX가스에 다량 노출되면 10~15분 사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94년 일본에서 오움진리교 신자가 오사카에서 VX가스를 사용해 회사원 남성을 살해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공중에 분사될 수 있는 VX가스는 공항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사용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약학 박사는 “VX가스였을 경우 같은 조의 다른 공작원도 위험에 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피마자 씨에 들어 있는 독성물질 리신(ricin)이나 복어의 독인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이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국적이 스모킹 건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16일까지 검거된 여성 용의자들은 베트남·인도네시아 국적자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권이 위조됐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 87년 11월 대한항공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도 당시 하치야 마유미(蜂谷眞由美)라는 이름의 일본 여권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의 정체가 마유미가 아닌 ‘김현희’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스모킹 건이 됐다. 김현희는 안기부(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범행을 자백했다. 김현희가 샤워를 하는 중 안기부 직원이 다가가 갑자기 뜨거운 물을 뿌린 것이다. 일본인이라면 본능적으로 ‘아쓰이(あつい)’라고 외쳤겠지만 김현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앗 뜨거’였다. 김현희는 북한 정찰국(현 정찰총국)이 80년대부터 여성 공작원 부대로 운영한 ‘모란꽃 소대’의 일원이었다. 모란꽃 소대는 외모가 출중하고 외국어 습득 능력이 뛰어난 20대 초반 여성 중에서 극소수만 선발했으며, 생포되더라도 신분을 철저히 숨기도록 훈련했다.

‘LOL 여성’ 페북엔 88올림픽 모자 쓴 사진

이번 김정남 피살 사건의 용의자들의 국적이 여권에 적힌 대로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라고 하더라도 북한과 연계됐을 가능성은 있다. 베트남인으로 ‘LOL’이란 글씨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도안티흐엉’이라는 이름의 여권을 가진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을 검색해 봤더니 이 여성은 프로필 사진에 얼굴을 반쯤 가린 채 88 서울 올림픽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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