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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재작년 북한 갔다왔다 했지만 김정은 얘기 일절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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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3일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피살된 김정남이 최근까지 거주했던 마카오 현지 교민사회는 피살 소식에 술렁이고 있었다. 평소 김정남과 스스럼 없이 교류했던 한인들은 지금도 마카오에 살고 있는 김정남의 부인과 자녀들의 신병을 걱정하고 있었다. 김정남 일가는 마카오 영주권을 가졌다고 한다.

10년간 친분 마카오 교민 인터뷰
아들 장래 논의차 마카오 오려던 것
아버지가 평생 먹고살 돈 준 듯
늘 풍족, 마카오에 집 5~6채 있어

여자 경호원 있지만 혼자 잘 다녀
최근 신변 위협 느낀다 한 적 없어
‘해품달’ 등 한국 드라마 보고 눈물도

김정남과 10년 정도 알고 지냈고 김정남의 집에도 여러번 가본 적이 있다는 마카오 현지 교민 A씨를 만나 김정남의 피살 직전까지 최근 근황을 들었다. A씨는 “김정남은 여기선 북한의 황태자가 아니라 평범한 이웃처럼 한인들과 어울렸다.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남이 2011년 아버지인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북한에 들어간 적 있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어떤 사람인가.
“김정남의 영어 이름이 존(John)이다. 한인들도 다 그렇게 불렀다. 현재 자기가 사는 모습에 만족하면서 살려고 했다. 아주 낙천적인 사람이다. 5개 국어를 능숙하게 한다. 일부러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나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장성택이 죽은 뒤 신세 한탄 같은 거를 한 적도 없다. 자신이 약점 잡힐 만한 얘기는 일절 안 했다.”
언제 북한에 갔다고 했나.
“재작년(2015년)에 북한에 갔다 왔다고 했다. 북한에 가서 뭘 했는지는 얘기를 거의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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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에 대해서도인가.
“(김정남과) 알고 지낸 지 10년 됐는데 김정은 얘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김정남과 만나면 주로 무슨 얘기를 하나.
“김정남은 정치 얘기는 일절 안 한다. 만나면 드라마 얘기를 많이 했다. 한국 드라마 얘기를 많이 하는데 ‘해를 품은 달’(2012년), ‘푸른 바다의 전설’(2016~2017) 등 드라마를 보면서 아줌마처럼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고 했다. 나한테 ‘형님, (한국 드라마) 작가에게 얘기해서 (드라마에 나오는 특정 인물을) 좀 죽이라고 전해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남의 집으로 알려진 마카오 의 한 빌라. 그는 마카오에 5~6채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중앙포토]

김정남의 집으로 알려진 마카오 의 한 빌라. 그는 마카오에 5~6채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중앙포토]

김정남은 마카오에서 뭘 하고 살았나.
“무역업을 했고 선물투자 등 금융업도 잘했다. 아버지가 평생 먹고살 돈을 준 것 같았다. 늘 풍족했다. 만날 때마다 밥값도 김정남이 계산했다.”
마카오에 재산이 많이 있나.
“내가 알기론 집이 5~6채 정도 있다. 한국 언론에 기사화되면 다른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부동산회사에 빈 집 관리를 맡겼다.”
여기에 북한 사람이 많나.
“마카오에 북한 무역일꾼이 한창 때는 250명 정도였는데 대다수가 북한에서 처형됐다고 들었다. 김정남이 ‘그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돈을 많이 벌어다 줬는데 도박이나 횡령 혐의로 북한에 끌려가 정치범 수용소에서 처형됐다’는 얘기를 하면서 매우 슬퍼하기도 했다. 그중 한 명이 조광공사 박자병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이곳 총책임자였다.”
김정남이 최근에 신변 위협을 느낀다는 말을 한 적 없나.
“걱정은 할 수 있었겠지만 한인들 앞에서는 티를 안 냈다. 등에 용 등의 문신을 새기고 싶어했는데 숨졌으니….”
혼자 다녔나.
“여자 경호원이 있긴 했는데 혼자 잘 다녔다. 그는 가족들 일도 돕는 듯했다. 장도 보고.”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얘기는 없었나.
“들어본 적 없다.”
가족들 모두 이곳에 있나.
“부인(이혜경)과 아들(김한솔), 딸(김솔희)이 모두 여기에 있다. 집에 놀러가서 본 적도 있다. 아들은 프랑스 정치대학을 졸업했고 딸은 이곳 국제학교 졸업반이다. 이번에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마카오로 돌아오려 한 이유도 아들의 장래를 논의하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다. 가족들은 마카오 경찰 당국에서 신변을 보호하고 있다.”

김정남의 피살 소식은 마카오에서도 주요 뉴스로 다뤄지고 있었다. 현지 언론에선 “카지노를 마음대로 갈 수 있어서 김정남이 마카오를 좋아한다고 생전에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A씨는 “MGM호텔에서 포커(서양 카드 놀이)를 즐겼는데 미화 100달러 정도로 한나절 노는 유흥 차원이었다”며 “이후 근처에 있는 일식집에서 한인들과 소주를 즐겨 마셨는데 주량은 한두 병 정도”라고 전했다. 또 “배가 많이 나왔지만 체력이 좋았다. 골프를 권했는데 끝내 안 쳤다. 대신 수영은 열심이었다”고 했다.

마카오 보안 당국은 15일 성명서를 통해 “마카오 정부는 법에 따라 마카오 주민의 안전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마카오=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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