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서 체포된 암살 용의자, 짙은 립스틱 20대 여성

중앙일보

입력

김정남 암살사건의 용의자인 베트남 국적 여성이 15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체포됐다.

말레이시아 경찰당국은 “김정남 암살 현장 인근의 폐쇄회로TV(CCTV)에 포착된 여성으로 간주되는 도안티흐엉(29)을 체포했다”며 “도안은 베트남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체포 당시 혼자였다”고 밝혔다. 영상에서 짧은 치마 차림에 짙은 립스틱을 한 도안은 1988년 5월 31일생으로 출생지가 '남딘(Nam Dinh, 南定)'이라고 적힌 신분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남이 김철이라는 명의의 가짜 여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도안의 여권도 가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국내 전직 정보 당국자는 “북한이 실제 베트남인을 고용했거나 비밀공작원의 언어·태도·습관 등을 오랜 기간 교정시켜 베트남인으로 신분세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은 도안과 함께 범행을 한 여성 용의자 외에 남성 용의자 4명이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이들의 뒤를 좇고 있다. 남성 4명이 망을 보고 도주로를 확보하는 동안 여성 2명이 암살에 나섰다는 것이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도주중인 남녀 용의자 5명이 북한과 베트남 국적이라고 보도했다.

현지 경찰에 체포된 도안은 북한과의 관련성이나 암살 의도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중화계 매체인 중국보는 "여성 용의자들을 태워준 택시기사에 따르면 이들 중 한명이 자신이 베트남에서 유명한 인터넷 스타이며 단편영화를 찍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왔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또 동방일보와 영국 신문 텔레그래프는 도안이 경찰에서 "같이 여행하던 사람들이 나보고 스프레이를 주면서 '저 남자(김정남)에게 장난삼아 뿌려보라'고 했다. 그게 사람을 죽일 정도인지는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5년전인 2012년부터 이복형인 김정남에 대한 암살을 시도했으며, 김정남이 김정은에게 “저와 제 가족을 살려달라”는 서신을 발송한 적도 있다고 국가정보원이 15일 밝혔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정남 피살은 (김정은의)'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로, 반드시 처리해야 되는 명령이었다. 정찰총국 등은 지속적으로 암살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오랜 스탠딩 오더가 집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보고했다고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이 전했다. 스탠딩 오더란 명령권자가 한 번 내린 명령에 대해 직접적으로 '명령 취소'를 언급할 때까지 유효한 명령을 뜻하는 군사용어다.

이 원장은 “2012년부터 본격적인 (암살) 시도가 한 번 있었으며, (이후) 김정남은 김정은에게 서신을 발송해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응징명령을 취소해주기 바란다. 저희는 갈 곳도, 피할 곳도 없다, 도망가는 길도 없다’고 하소연했다”고 전했다.

쿠알라룸푸르=신경진· 김준영 특파원, 서울=차세현 기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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