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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집은 당신의 옷이다…공간에 패션을 입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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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 컬렉션으로 영역 확장하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

럭셔리 보석 브랜드 불가리가 2012년 런던에 문을 연 불가리 호텔 앤 레지던스. 에메랄드·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불가리 목걸이·귀걸이·반지를 착용한 이탈리아 배우 모니카 비티의 사진이 라운지에 걸려 있다. [사진 불가리]

럭셔리 보석 브랜드 불가리가 2012년 런던에 문을 연 불가리 호텔 앤 레지던스. 에메랄드·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불가리 목걸이·귀걸이·반지를 착용한 이탈리아 배우 모니카 비티의 사진이 라운지에 걸려 있다. [사진 불가리]


사치는 어쩌면 공간에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항공기 이코노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를 떠올려보자. 둘을 가르는 차이는 기내식이나 응대 서비스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가장 큰 차이는 점유하는 공간의 크기다.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든 이코노미석에 앉아 유명 셰프의 코스 요리를 먹는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공간의 중요성을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은 일찌감치 간파했다. 핸드백과 의류를 넘어서 소파·테이블 같은 가구를 비롯해 자기류·패브릭 제품 등 다양한 홈 컬렉션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이유다. 아예 럭셔리 브랜드 홈 컬렉션으로 꾸민 호텔도 늘고 있다. 좋아하는 브랜드를 이젠 몸이 아닌 집에 양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에르메스의 일반가정 장식용 판넬 ‘도시속에서의 산책’. 아일랜드 출신 삽화가 나이젤 피크의 작품을 세 폭의 판넬로 구성했다.

에르메스의 일반가정 장식용 판넬 ‘도시속에서의 산책’. 아일랜드 출신 삽화가 나이젤 피크의 작품을 세 폭의 판넬로 구성했다.

“당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집에 사는 것은 남의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다.”

프랑스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1905~ 1957)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당대 최고의 쿠튀리에(couturier·고급 여성복 디자이너)였지만 옷 뿐만 아니라 집안 인테리어와 정원을 가꾸는데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 요리책을 남길 정도로 요리와 미식을 즐겼다. 이런 철학 때문이었을까. 그는 1946년 파리 몽테뉴가 30번지에 디올 부티크를 열면서 한 쪽에 찻잔 세트와 리넨 등 홈 컬렉션을 놓고 판매했다. ‘삶의 예술(art de vivre)’ 취향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이후 줄곧 도자기류 같은 소품을 몽테뉴 부티크에서 소소하게 판매하던 디올은 2016년 런던에서 디올 메종(maison·집) 컬렉션을 공식 론칭했다. 고급 맞춤복과 핸드백에 주력하던 디올이 사업분야로 홈 컬렉션을 추가한 것이다.

디올은 본격적인 홈 컬렉션 사업에 늦게 뛰어든 축에 속한다. 디올의 행보를 보면 럭셔리 산업이 라이프스타일 분야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홈 컬렉션에 신규 진출하는가 하면 이미 진출해 있다면 품목과 가짓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보테가베네타의 소파 컬렉션인 ‘메타 라인’. 핸드백 안감으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고급 스웨이드 소재를 썼다.

보테가베네타의 소파 컬렉션인 ‘메타 라인’. 핸드백 안감으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고급 스웨이드 소재를 썼다.

가죽 장인들이 독특한 꼬임 기법으로 만드는 핸드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브랜드 보테가베네타는 2015년 밀라노 보르고스페소 거리에 가구 및 홈 컬렉션만 모아놓은 부티크를 처음 열었다. 18세기 지어진 성 내부를 일반가정 아파트처럼 꾸몄다. 다이닝룸, 거실, 침실 공간 구성에 따라 의자와 소파, 테이블과 조명, 도자기류와 실버 웨어 등을 골고루 선보였다. 홈 컬렉션을 처음 내놓은 건 2006년이지만 사업을 키워 아예 단독 매장으로 독립시킨 것이다. 카를로 알베르타 베레타 보테가베네타 전 회장은 2016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고객들이 핸드백이나 의류 뿐 아니라 집에서도 보테가베네타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고 싶다는 요청이 많았다”며 “홈 컬렉션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다루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은 성장 전략과 관련있다.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2013년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보고서에서 “럭셔리 브랜드들은 라이프스타일 분야를 성장의 기회로 본다. 특히 패션에 뿌리를 두고 있는 브랜드가 라이프스타일 분야로의 확산 속도가 빠르다”고 밝혔다. 아르마니·베르사체·미쏘니·펜디·랄프로렌·루이비통 등이 좋은 예다. 랄프로렌은 1983년 럭셔리 패션업계 가운데선 가장 먼저 홈 컬렉션을 선보였다. 침대보와 쿠션 등 패브릭 제품 위주로, 아메리칸 드림을 집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이후 80~90년대 럭셔리 브랜드들은 향수·주얼리·시계·안경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가구까지 포함한 홈 컬렉션은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야 비로소 추가됐다. 펜디가 89년, 베르사체가 93년 각각 홈 컬렉션을 론칭했다. 베르사체의 지안 쟈코모 페라리스 전 최고경영자(CEO)는 “우리의 비즈니스 전략은 안목있는 고객들을 유치하는 동시에 베르사체의 라이프스타일을 360도 만끽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이후 호텔과 레지던스·레스토랑·카페 등 소위 물건이 아닌 경험을 파는 비즈니스가 속속 도입됐다. 자산운용업체 샌포드 번스타인의 마리오 오르텔리 수석부사장은 패션 전문지 비즈니스오브패션과의 인터뷰에서 “경험을 통해 향유하는 럭셔리는 상품을 통한 럭셔리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홈 컬렉션과 호텔 사업은 경험과 상품의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보스턴컨설팅에 따르면 럭셔리 홈 컬렉션과 가구 시장은 2013년 600억 달러(약 68조6400억원) 규모로, 럭셔리 패션 시장 규모(약 57조2000억원)보다 100억 달러 가량 더 많다.

2011년 밀라노에 문을 연 아르마니호텔 안 레스토랑. 간결하면서 우아한 아르마니 특유의 스타일로 꾸몄다.

2011년 밀라노에 문을 연 아르마니호텔 안 레스토랑. 간결하면서 우아한 아르마니 특유의 스타일로 꾸몄다.

특히 럭셔리 브랜드의 호텔은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을 실제로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다. 일찌기 아르마니·베르사체·불가리 같은 럭셔리 브랜드들은 자사의 가구와 집기·침구류를 호텔 공간에 배치해 고객들이 브랜드 경험을 넓힐 수 있도록 히기 위해 호텔 사업을 시작했다. 보통 호텔업 노하우를 빌리기 위해 호텔업체나 부동산업체와 라이선싱 계약을 통해 사업을 진행한다. 베르사체는 패션 브랜드 가운데 처음으로 2000년 호주 골드코스트에 ‘팔라쪼 베르사체’라는 브랜드 호텔을 열었다. 이탈리아 보석 브랜드 불가리는 2004년 밀라노에 첫 호텔을 열었다. 이후 발리(2006년), 런던(2012년), 두바이(2016년)을 거쳐 올해는 상하이·베이징에 호텔을 개업한다.

2010년 두바이에 문을 연 아르마니호텔은 부(富)를 가장 미니멀한 방법으로 표현했다. 얼룩말 문양 의 목재 등 최고급 자재로 디자인한 욕실.

2010년 두바이에 문을 연 아르마니호텔은 부(富)를 가장 미니멀한 방법으로 표현했다. 얼룩말 문양
의 목재 등 최고급 자재로 디자인한 욕실.

패션 브랜드 호텔 붐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르마니가 2010년 두바이에 있는 세계 최고층 빌딩인 부르즈 칼리파에 호텔을 열면서다. 무채색 아르마니 수트의 절제된 느낌을 그대로 담은 이 호텔은 아르마니 팬들은 물론 일반 여행객들에게 단숨에 묵고 싶은 호텔로 떠올랐다. 펜디는 2016년 말 로마에 방 7개짜리 부티크 호텔을 열었다. 미국 디자이너 타미 힐피거는 마이애미에 회원제 부티크 호텔을 계획하고 있고, 토마스 마이어 보테가 베네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베를린에 레지던스 인테리어를 디자인하고 있다.

영국 리즈대학에서 패션 마케팅을 가르치는 앨리스 댈라보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호텔은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들이 유독 많은데 이는 아름다움과 최고급 품질, 동경할만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이미지를 활용해 이탈리안 특유의 ‘라 돌체 비타(la dolce vita·근심걱정 없는 삶)’ 무드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럭셔리 브랜드를 입혔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미쏘니는 영국 에딘버러에, 모스키노는 밀라노에 각각 2009년과 2010년 호텔을 열었지만 두 호텔은 각각 2014년, 2015년에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패션 디자이너들이 호텔과 홈 컬렉션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코코 샤넬(1883~1971)이 50여 년 전에 한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패션은 드레스에만 국한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패션은 하늘에도, 거리에도 있다. 패션은 아이디어에 관한 것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홈 컬렉션은 좋은 소재(패브릭)와 디자인이라는, 패션을 구성하는 두 축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2000년 아르마니 까사(홈 컬렉션)를 론칭한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홈 컬렉션은 내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의 자연스러운 연장이다. 내 집과 부티크, 사무실을 내 취향에 맞게 늘 꾸며왔는데, 이런 과정의 일환으로 가구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고 말했다. 라프 시몬스는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그만 둔 이후 본격적인 가구 디자이너의 길을 걷고 있다. 덴마크의 텍스타일 브랜드 크바드라트(Kvadrat)와 협업해 암체어 등을 디자인해 내놓았다.

루이 드 라 팔레즈가 디올을 위해 디자인한 피크닉 바스켓. 까나쥬 패턴의 러그, 리모주에서 제작한 접시와 볼, 은방울 꽃을 새겨 넣은 크리스털 잔, 테이블보, 자수 냅킨 등이 들어있다.

루이 드 라 팔레즈가 디올을 위해 디자인한 피크닉 바스켓. 까나쥬 패턴의 러그, 리모주에서 제작한 접시와 볼, 은방울 꽃을 새겨 넣은 크리스털 잔, 테이블보, 자수 냅킨 등이 들어있다.

아르마니는 “홈 컬렉션은 기존 패션 고객뿐 아니라 잠재 고객을 폭넓게 만나는 장으로서의 역할도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홈 컬렉션은 명품 브랜드에 입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엔트리 제품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디올 메종 컬렉션 가격은 까나쥬(디올 고유의 무늬) 장식을 한 찻잔, 크리스털 와인잔, 물컵 등이 20만~30만원대, 디저트 접시는 10만~20만원대다. 가격표에 ‘0’이 7개 붙어 있는 초고가 제품(피크닉 바스켓)도 물론 있지만 주요 제품은 10만~30만원대면 살 수 있다.

디자인 듀오 로우 에지스가 루이비통과 협업한 콘서티나 체어. 꽃잎을 겹쳐 만든 앉는 부분이 의자 안으로 접혀 들어간다.

디자인 듀오 로우 에지스가 루이비통과 협업한 콘서티나 체어. 꽃잎을 겹쳐 만든 앉는 부분이 의자
안으로 접혀 들어간다.

에르메스도 마찬가지. 문양을 고급 기술로 프린팅한 벽지를 판매하는데, 가격은 10m당 30만원대다. 핸드백·지갑·스니커즈·주얼리 같은 패션 소품은 가장 단순한 제품도 이 가격에는 살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홈 컬렉션은 명품 브랜드의 새로운 엔트리 상품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수 백만원이 넘는 럭셔리 브랜드 핸드백은 사지 못하더라도 디올 감성이 담긴 은방울꽃 찻잔, 에르메스의 기품이 느껴지는 벽지에는 보다 쉽게 지갑을 열수 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같은 사진 공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산도 럭셔리 홈 컬렉션 소비를 확산하는 요인이다. 핸드백처럼 들고 다니지 못하는 커피잔이나 접시라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다.

디올의 첫 ‘메종 컬렉션’을 선보인 런던의 플래그십 스토어. 메종 컬렉션은 세계에서 4번째로 2017년 1월 서울에서도 론칭했다.

디올의 첫 ‘메종 컬렉션’을 선보인 런던의 플래그십 스토어. 메종 컬렉션은 세계에서 4번째로 2017년 1월 서울에서도 론칭했다.

최근 디올 메종 컬렉션이 파리·런던·칸에 이어 네 번째로 서울에 론칭했다. 서울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 ‘하우스 오브 디올’ 3층은 커피잔·와인잔·접시 같은 테이블웨어, 베개·쿠션·담요 등 리넨 제품, 액자·향초 같은 홈 액세서리를 선보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까나쥬 장식 찻잔, 므슈 디올이 좋아했던 은방울꽃이 그려진 자기류, 디올의 조향사 프랑수아 드마쉬가 만든 로즈·아이리스 향초, 손으로 수 놓은 침대 리넨 등을 선보인다. 그레이와 핑크, 화이트 등 디올의 상징 컬러를 사용해 특유의 여성스러운 느낌을 풍긴다. 건축가 피터 마리노, 무대 디자이너 위베르 르 갈, 유리 장인 제러미 맥스웰, 홈 리넨 전문가 베로니크 타탕제 등 아티스트 11명과 협업했다.

루이비통의 가구 컬렉션 ‘오브제 노마드’를 위해 디자이너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가 만든 스윙 체어.

루이비통의 가구 컬렉션 ‘오브제 노마드’를 위해 디자이너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가 만든 스윙 체어.

루이비통은 2016년 디자인 마이애미 프리뷰에 세계 정상급 디자이너 11팀이 제작한 가구 18점 이 포함된 컬렉션 ‘오브제 노마드’를 선보였다. 아틀리에 오이가 디자인한 가죽 해먹과 오리가미 기법과 전통 트렁크 제작 기법을 접목한 접이식 스툴 등이 서울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에 있다. 루이비통은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접이식 가구와 독특한 디자인의 여행 소품을 한정판 또는 실험적인 시제품으로 선보인다.

보테가베네타는 2014년 10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 애비뉴엘에 부티크를 열면서 홈 컬렉션을 국내에 소개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토마스 마이어가 가죽제품·여성복·남성복 뿐 아니라 가구까지 총괄한다. 홈컬렉션은 해당 분야 고급 기술을 가진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제작한다. 의자와 소파 컬렉션인 ‘메타(META)’라인은 100여 년 전통의 이탈리아 최고급 명품 가구 브랜드인 폴트로나 프라우, 도자기류는 독일의 250년 전통의 도자기업체 KPM에서 생산한다.

2016년 밀라노가구박람회에서 에르메스가 선보인 주얼리 캐비닛.

2016년 밀라노가구박람회에서 에르메스가 선보인 주얼리 캐비닛.

안장과 마구(馬具)를 만드는 공방에서 시작한 에르메스는 사실상 브래드 DNA이자 뿌리가 메종 컬렉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차 여행을 위한 가방과 소품을 만들면서 브랜드를 확장했는데, 종착점은 결국 ‘집’에 대한 관심이었다. 버킨·켈리 같은 유명 핸드백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수납함·재떨이 등 마차 안을 꾸미는 용품, 추위를 막는 플레이드(담요), 휴양지에서 사용하는 비치 타올 등을 선보였다. 여기에 가구·벽지·패브릭·자기류·크리스탈·조명 등 집 한채를 온전하게 꾸밀 수 있는 모든 품목이 있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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