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나사 풀린 철도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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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역 사령(화물열차 기관사에게):"고모~경산 간 통신식 시행합니다. 정상운행합니다." (8일 오전 7시2분)

▶경산역 사령:"하행선을 통신식으로 운행합니다."

화물열차 기관사:"아니, 정상운행인데 신호를 무시하면 됩니까." (8일 오전 7시5분)

▶무궁화호 차장:"말씀하세요."

경산역 사령:"속력을 줄여서 가주세요."(8일 오전 7시9분)

▶경산역 사령:"좀 빨리 들어오세요. 뒤에 차가 밀려 있습니다."

화물열차 기관사:"지금 뒤에 충격이 와서 확인해 봐야겠습니다."(8일 오전 7시10분)

▶무궁화호 차장:"6호 객차에서 사람이 객차 사이에 많이 끼어 있다고 합니다. 절단기 부탁합니다."

경산역 사령:"지금 연락하고 있습니다."(8일 오전 7시18분)

여름날 아침, 출근길 시민들을 참변으로 몰아 넣었던 경산 열차 추돌사고. 이번 사고도 여느 철도 사고처럼 일부 철도원의 얼빠진 근무자세에서 비롯된 인재(人災)인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화물열차는 두차례나 차량 운행방식이 통신식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통보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관사는 두번째 통보를 받은 뒤에도 '웬 통신식이냐'는 식의 반응이다.

녹취록을 검토하던 한 수사관은 "기관사들이 운행방식 개념조차 모르는 것 같다"며 어이없어했다.

무궁화호는 사고 직전 속력을 줄이라는 지령을 흘려들은 것으로 드러났다. 추돌 전 시속이 1백5㎞로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화물열차가 고모~경산 구간을 빠져 나가기도 전에 무궁화호를 진입시킨 고모역의 조치는 지난 2월 대구지하철 화재 당시 "조심 운전 하세요"라며 1080호 전동차를 불구덩이로 몰아넣은 당시의 사령실을 떠올리게 한다. 한 시민은 "이런 상태에서 고속철도시대를 맞으면 사고도 첨단.고속화할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기환 전국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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