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업 경영 감시 ‘청지기’ 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9개 금융투자사 참여 예정, 힘 받는 스튜어드십 코드

“산업은행이나 한국증권금융 등 금융 유관기관이나 연기금 등이 위탁 운용사를 선정할 때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에 참여하는 운용사에 인센티브를 부여할 겁니다.”

기관투자가들 역할 강화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

일본, 도입 후 닛케이 상승
국내 증시도 긍정 역할 기대

기업들 “경영활동 침해” 우려
국민연금 참여가 남은 과제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13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예정기관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이날 간담회에는 삼성·미래에셋자산운용 등 9개 금융투자회사 등이 참석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토록 유도하는 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지침이다. 원래 스튜어드(청지기)의 의미는 주인이 맡긴 자산을 주인의 뜻대로 관리하는 위탁인을 말한다.

이 청지기의 역할을 기관투자가가 하라는 의미다. 기관투자가는 단순히 주식 보유와 의결권 행사만 하는 게 아니라 돈을 모아준 투자자의 뜻을 받들어 청지기처럼 기업과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고객의 이익 극대화에 기여하라는 뜻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른바 ‘월스트리트 룰(소극적 주주권)’ 대신 기관투자가들의 적극적인 경영 감시를 통해 투자 수익을 높이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2010년 영국을 시작으로, 네덜란드·캐나다·말레이시아·일본 등 10여 개국이 도입했다.

국내에서는 금융위원회 주도로 도입을 검토했지만 기업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이 주도하는 민간 자율 협약 방식으로 지난해 12월 제정·공표됐다. CGS는 한국거래소·금융투자협회 등이 돈을 대 만든 민간 기관이다. 이 때문에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코드 참여를 강제하기 어렵다. 의무도 아닌데 별도의 책임과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기업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기관투자가들은 그동안 코드 참여를 주저해왔다. 국내 주식에 100조원을 투자하는 국민연금조차 참여를 주저하고 있다. 이날 금융위가 나서 인센티브 방식으로 코드 참여를 독려한 이유다.

기업 지배구조의 후진성은 국내 증시가 저평가받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Asian Corporate Governance Association)와 크레디리요네증권(CLSA)이 격년으로 발간하는 아시아 기업 지배구조 평가 보고서에서 한국은 지난해 12개국(호주 포함) 가운데 9위에 그쳤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국가는 중국·인도네시아·필리핀이다.

기업 지배구조가 낙후된 탓에 국내 증시는 실력에 비해 제값을 못 받는다는 평이다.

각국 대표 지수를 기준으로 산출한 주가수익비율(PER) 가운데 코스피 지수는 언제나 꼴찌다. PER는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PER가 낮을수록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의미다. 12개월 예상 이익을 기준으로 코스피 지수의 PER는 9.7배에 그친다. 호주 증시의 PER는 16.4배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돼 국내 증시가 선진국 수준으로만 평가받아도 주가가 오를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곳이 일본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주가 부양 차원에서 2014년 6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이후 닛케이 지수는 1만5000 선에서 1년 만에 2만 선으로 뛰었다. 임 위원장은 “기관투자가들의 요구에 일본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을 늘리고 배당 같은 주주 환원정책을 늘리면서 일본 증시가 20년 박스권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업들의 부정적 반응이다. 고유의 경영 활동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지난해 5월 전국경제인연합회·중소기업중앙회 등 5개 경제단체는 공동의견서를 내고 “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가 기업 가치를 높일지 불확실하다”며 “단기 차익 실현을 목표로 하는 기관투자가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악용해 상장사에 무리한 요구를 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연기금 등을 통해 기업 경영에 간섭할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전삼현(숭실대 법학과 교수) 글로벌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은 “연기금은 헌법 126조에 따라 준정부 기관으로 봐야 한다”며 “이런 연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면 민간 기업이 공기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 효과에 더 기울어 있다. 국내 첫 행동주의 헤지펀드를 출시한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는 “기관투자가가 단기 차익만 노리는 건 아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는 그간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기업의 독단적 경영 활동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펀드매니저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정착되면 주가가 100포인트 정도는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란·김경진 기자 neor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