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하얀 세상에 홀로 앉아 …'트랜스포머2'의 배경 화이트 샌즈 국립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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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2009, 마이클 베이 감독)에 등장한 화이트 샌즈 국립공원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2009, 마이클 베이 감독)에 등장한 화이트 샌즈 국립공원

영화 '와일드'(2014, 장 마크 발레)의 셰릴 스트레이드(리즈 위더스푼)는 지난 날의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4,285km에 달하는 극한의 공간 PCT(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를 걷습니다. 그리고 도보 여행객들이 쓴 방명록 문구들을 발견하죠.


"허나 내겐 지켜야할 약속과 잠들기 전 가야할 길이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

먼 길을 걷고 있는 여행자뿐만 아니라 같은 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와 닿는 말인 것 같습니다. 여행자든 비(非)여행자든, 우리는 모두 '지구 유랑자'니까요.

매거진M 고정코너 '지구 유랑자'들은 뮤직프로듀서부터 사진작가까지, 다양한 여행자들이 보고, 듣고, 느낀 단상들을 담고 있습니다. 200호에  실린 지구별은 영화 '트랜스 포머: 패자의 역습'(2009, 마이클 베이 감독)에서도 등장했던 아름다운 화이트 샌즈!

화이트 샌즈 국립공원(Vol. 200) 

[글=양지훈 뮤직 프로듀서, 싱어송라이터이자 여행작가. 아카펠라 그룹 ‘인공위성’ 창립 멤버. 10여 년의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 음반 레이블 ‘로드뮤직’을 설립했다. 자동차 미국 일주 이야기 『미국을 달리다』의 저자.]

사진=양지훈

사진=양지훈

해가 뜨기도 전에 길을 떠났다. 미국 뉴멕시코주(州)의 광활한 황무지 너머로 펼쳐지는 로키산맥의 장관에 카메라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끝없이 뻗은 외딴길을 얼마간 달리자 ‘화이트 샌즈 국립공원(White Sands National Monument)’ 팻말이 보였다.

매표소에서 10분 정도 더 들어가니, 마침내 새하얀 세상이 나타났다. 수만 년 전 지표로 올라온 석회질 성분 토양이 다시 오랫동안 풍화작용을 거치며 형성된 사막. 꿈에 그리던 화이트 샌즈 한복판이다.

내가 이 사막을 꿈꾸게 된 건 바로 한 곡의 노래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인기였던 R&B 보컬 그룹 ‘보이즈 투 맨(Boyz II Men)’이 부른 ‘워터 런스 드라이(Water Runs Dry)’. 우연히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 그 배경인 새하얀 사막에 사로잡혔다. 실제로 저런 곳이 세상에 있는 걸까?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당시 광고 대행사 대리 3년 차였던 나는, 이리저리 치이며 피곤에 찌든 ‘미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퇴근길에 한 뮤직 바에 들렀을 때, 나를 사로잡았던 그 뮤직비디오를 다시 만났다. 지친 맘과 영혼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이튿날 인터넷을 뒤져 이 뮤직비디오가 화이트 샌즈에서 촬영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혼잣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 그로부터 또다시 10년이 지난 후 화이트 샌즈에 발을 디뎠다.

나는 사람이 없을 법한 방향의 모래 언덕 쪽으로 혼자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하얀 모래와 파란 하늘뿐인 사구에 홀로 앉아 이어폰을 꽂고 보이즈 투 맨의 ‘워터 런스 드라이’를 틀었다.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감사와 행복의 눈물.

마흔 살의 나이에 모든 걸 버리고 이 먼 곳으로 훌쩍 떠난 내 용기가 고마웠고, 여행할 수 있도록 성원해 준 가족과 많은 친구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나를 이곳까지 이끌어 준 이 노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무언가에 이끌려 하루하루를 낯선 모험으로 살아가는 인생.

순간순간 불안이 엄습하고 희비가 엇갈리기도 하지만, 가끔씩 이런 감동의 순간을 만날 수만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인생은 새옹지마 로드 트립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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