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는] 天災가 人災로 바뀐 물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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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해마다 여름이면 민.관.군의 수해복구작업이 한창이라는 기사가 신문을 장식한다. 올해는 봄부터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그러나 아직은 이렇다 할 큰물 피해가 없는 것을 보면 여간 다행이 아니다. 1998년과 99년 대홍수로 엄청난 피해를 봤던 경기도 북부의 연천.포천.파주 등 임진강 유역의 주민들은 아직도 가슴을 졸이며 여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와 같이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홍수는 사전에 대비만 잘하면 막을 수 있는 재난이다. 요즈음은 비교적 기상청의 예보도 정확하다. 그럼에도 해마다 같은 비 피해가 재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에서도 늘 지적하고 있듯이 인재(人災)가 문제다.

물난리가 날 때마다 항구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법석을 떨지만 결과는 늘 형식적이다. 인재는 지방정부.중앙정부를 가릴 것도 없다. 경기도 북부 임진강 유역에 들어간 수해복구비만도 지금까지 1조원이 넘었다. 그럼에도 돈을 들여 설치한 제방과 빗물 펌프장이 제 구실을 못했다.

경기도의회는 2001년 '임진강 수해지역 대책에 관한 건의안'을 채택하고 연천.파주지역의 수해피해를 줄이기 위해 물관리 행정체계 개선을 주장했다.

중앙정부는 그 건의안을 받아들여 임진강 본류에 홍수조절지를 건설하고 다섯 군데의 천변 저류지계획과 연계해 제1지류인 한탄강에 홍수조절용 댐을 건설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발표 때뿐, 2002년 또 다시 태풍 '루사'가 닥치고 경기 일원에도 비피해가 발생하자 피해 원인을 태풍에 돌렸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도 다시 목격했지만 주범이 후진국형 사고(思考)인 인재는 어떻게 해야 막을 것인가. 그저 세월이 흘러 선진 국민이 되는 수밖엔 없는 것인가. 무슨 재난이든 예방이 최선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경기도 재해대책본부가 지난해 8월 초 나흘간 집중호우에 의한 재산피해액으로 발표한 금액은 16억원이다. 대책본부는 이 금액이 부천시 등 12개 시.군의 3백81가구 침수, 파주.연천.고양 등의 4백61ha의 농경지 침수, 가평 등지의 도로.교량 유실 피해액이라고 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집계다.

이재민에게 지원되는 취사도구, 생필품, 가구당 60만원의 지원금, 자원봉사자들의 노고, 공무원들의 추가근무, 언론매체들의 캠페인, 수재민들의 고통, 모든 피해의 원상복구비 등 이른바 사회적 비용(social cost) 발생액은 단순하게 집계될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배수로.제방.배수펌프장 공사에 투입되는 비용은 가장 최소의 재산 피해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한 원시적인 방법으로 재해대책본부를 가동할 것인가. 그 같은 단순계산이 바로 천재(天災)가 인재(人災)가 되게 하는 원인이다.

물난리를 겪었던 지역의 주민들을 제외하곤 일반 국민은 비 피해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비가 오면 멀쩡한 사람들이 가로등 누전에 의해 몇 사람쯤 비명횡사하고, 가옥 몇천 채가 침수되면 그때서야 수재민을 돕자는 TV 캠페인, 신문 사설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뿐 긴급예산 지원이 필요한데 자연재해대책법이 문제라는 등의 지적이 뒤따른 후엔 다시 잊혀진 일이 돼버리기 일쑤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정부에선 시정이 안 되고 해마다 물난리는 반복해 일어난다. 재난은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는 두려움이 한시바삐 정부과 국민의 의식 속에 정착돼야 할 때다.

이윤규 경기경실련 정책위원장.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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