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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국 함정, 남남갈등 극복 못하면 아버지보다 못사는 자식세대 나올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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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홍석현 중앙일보· JTBC 회장은 9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매우 엄중해지고 있다”며 “나라 안팎으로 위기가 중첩돼 비상시국, 대위기 국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홍석현 회장, 원광학원 특별강연
“태풍전야 위기지만 국가 개조 기회
나라부터 바로세우는 일 가장 중요
소통 위해 구중궁궐 청와대 바꾸고
경제는 국민과 기업에 희망 줘야”
경청에서 얻은 10가지 소망도 전해

홍 회장은 대명리조트 변산에서 원광학원 보직자 2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 특별 강연에서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와 서울광장의 태극기집회를 보면서 많은 반성과 함께 서로 다르지만 함께하는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태풍전야의 위기이지만 모두 힘을 모아 국가를 개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며 “분노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분노한 다음 날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분노의 열기를 하루빨리 상생과 번영의 활력으로 전환시켜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홍 회장은 선진국 문턱에서 10년째 맴돌고 있는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대표적인 과제로 중진국 함정(Middle-income trap)과 남남(南南) 갈등, 두 가지를 꼽았다.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이 9일 오후 대명리조트 변산에서 원광학원 보직자를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강정현 기자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이 9일 오후 대명리조트 변산에서 원광학원 보직자를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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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회장은 “대한민국은 GDP(국내총생산) 1조4000억 달러의 세계 11위 경제대국이지만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8000달러로 3만 달러의 벽 앞에 벌써 10년 넘게 정체해 있다”며 “관행이나 행태, 문화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지 못해 3만 달러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중진국 함정은 무섭다.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오랜 세월이 가면 다시 후진국으로 전락한다. 아버지보다 못사는 자식 세대가 출현하고 청년층은 무력감과 자포자기로 절망적 삶을 맞게 된다”며 “우리 사회의 3대 부조리인 불공정·불균등·불확실은 불신·불만·불안을 낳고 이런 절망을 더 깊게 만들 것이다. 하루속히 국가를 개조해 해결해야 할 난제”라고 말했다. 홍 회장은 중진국 함정에 빠진 원인 중 하나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의 결여”를 거론한 뒤 최순실 게이트의 예를 들며 “검사가 기소하면 뭔가 정치적 이유가 있을 거라 의심하고, 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이 9일 오후 대명리조트 변산에서 원광학원 보직자를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강정현 기자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이 9일 오후 대명리조트 변산에서 원광학원 보직자를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강정현 기자

남남 갈등의 폐해에 대해선 “우리 사회 곳곳에 이념·지역으로 갈라선 진영 논리가 판을 친다. 줄서기를 강요하는 패거리 문화가 상존한다”며 “남남 갈등의 뿌리에는 남북 문제에 관한 견해차가 큰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독일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건 좌우 정권이 일관되게 동방정책을 20년 이상 추진해 온 덕분”이라며 “우리도 여야가 합의하고 국민이 추인하는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회장은 “우리 아이들을 후진국에서 살게 할 순 없다. 이번에는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 지긋지긋한 정쟁을 끝내고 국가 통합이 생존 전략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분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 나라의 미래는 더 어두워질 뿐이며,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것보다 중요한 게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호소했다.

이날 강연 앞부분에서 홍 회장은 몸을 낮추고 귀를 기울여 마음을 열고 듣는다는 의미인 ‘경청(傾聽)’이란 단어를 수차례 사용했다. “요즘 중앙일보와 JTBC에서 진행하는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를 비롯해 여러 학자, 전문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며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의 지혜를 얻고자 원로분들과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었다”고 전했다. 그런 뒤 ‘경청에서 얻은 나라를 위한 10가지 소망’을 열거했다. <그래픽 참조>

소망들 중 첫째로 홍 회장은 대선주자들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 있는 행보가 중요하다는 목소리를 전했다. 특히 미래를 위한 대화와 실천을 꼽았다. 홍 회장은 “여야 모두 필요성을 인정하는 몇 가지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는 대선 일정과 무관하게 2월 국회, 3월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해 달라는 요구가 있다”며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신산업의 규제 철폐 및 육성 방안 등 몇 가지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헌과 대연정으로 대통합을 이뤄 국가 시스템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이 9일 전북 부안에서 원광학원 보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위해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신순철 원광학원 이사장(법명 신명국), 홍 회장, 김도종 원광대 총장. 강정현 기자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이 9일 전북 부안에서 원광학원 보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위해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신순철 원광학원 이사장(법명 신명국), 홍 회장, 김도종 원광대 총장. 강정현 기자

대통령에서부터 정당·정치인들까지 권력을 덜어내는 개혁을 해야 한다는 기대감도 전했다. 홍 회장은 “소통을 위해 구중궁궐과 같은 청와대도 개조해야 한다” “백악관처럼 대통령과 참모들이 가까이서 어깨를 맞대고 일할 수 있도록 재배치해야 한다” “이 쉬운 결단을 진보·보수 어느 대통령도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정치인들에 대해선 “지난해 영국 하원의 조니 머셔 의원은 런던의 비싼 집값을 감당할 수 없어 보트에서 숙식을 해결한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국회의원은 특권을 버려야 한다는 게 국민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경제를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한 뒤 “국민과 기업을 분열시키는 게 아니라 국민과 기업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목소리가 크다”고 강조했다. “한시도 통일을 잊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전했다.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한다”며 남북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4대 강국의 지도자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심이 많은 교황에게도 호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이 9일 오후 대명리조트 변산에서 원광학원 보직자를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강정현 기자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이 9일 오후 대명리조트 변산에서 원광학원 보직자를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강정현 기자

강연이 끝난 뒤 문답 과정에서 강남호 원광대 경영대학장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등을 예로 들며 “우리의 제도·법·문화가 신뢰를 역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으냐”고 우려한 데 대해 홍 회장은 “한 세대 만에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뤄내는 압축 변환 과정이었다”며 “조선시대의 좋은 점인 예의나 염치 같은 게 살아나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모윤종 원광보건대 기획부처장이 “10개 어젠다 중 세 가지를 꼽아달라”고 하자 “교육이 1번 아닌가”라며 “우수한 교사들이 마음을 열고 주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동시에 교육이 교육자에게만 맡기기엔 너무나 중요한 과제란 걸 인정하고 함께 개혁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머지 두 가지는 대통령의 권한 축소, 그리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혁신 생태계 만들기를 꼽았다.

부안=고정애·박진석·조진형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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