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추돌…또 어이없는 人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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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7시14분 대구시 수성구 사월동 사월보성아파트 앞 경부선 하행선(서울기점 3백37㎞)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신호대기 중이던 화물열차를 추돌했다. 이 사고로 이영경(34.여.수성구 범어동)씨와 이석현(4.경북 성주군)군 등 두명이 숨지고, 엄봉현(67.경남 밀양시)씨 등 승객 1백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부상자들은 대구 파티마병원.경북대병원.영남대병원 등 8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사고로 경부선 하행선이 불통돼 상행선만으로 운행하느라 경부선 열차 운행이 차질을 빚었으나 이날 오후 2시쯤 정상화됐다.

사고 열차는 오전 6시10분 김천역에서 출발, 7시4분 동대구역을 거쳐 8시38분 부산역에 도착할 예정이던 통근열차로 객차 6량에 1백72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 발생=부산 방면으로 시속 60㎞로 달리던 303호 무궁화호 열차(기관사 김기용.36)가 40m쯤 전방에 정차해 있던 2661호 화물열차를 뒤늦게 발견하고 급정거했으나 브레이크가 완전히 작동하기 전에 앞 열차를 들이받았다. 추돌 당시 충격으로 맨 앞쪽 객차인 6호차의 앞부분이 발전차에 부딪혀 찌그러들면서 이 객차에서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

◆ 현장=사고 열차는 폭격을 맞은 것 같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특히 기관차.발전차와 직접 연결된 6호 객차의 경우 앞부분 5m 정도가 무게가 나가는 발전차에 부딪혀 음료수 캔처럼 찌그러져 3~4개열 좌석이 완전히 포개졌다. 이 바람에 이 곳에 탔던 승객들이 의자 사이나 철도 연결 부위 등에 몸이 끼여 참변을 당하거나 크게 다쳤다.

◆ 원인 및 수사=경찰 조사 결과 이번 사고는 화물열차 기관사의 무선 교신 오해와 무궁화호 기관사의 전방 주시 태만, 지령실 직원의 안전수칙 위반 등이 겹쳐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 지점은 내년 4월 경부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선로 개량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신호를 무시하고 고모역 근무자와의 무선 교신에 따라 운행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화물열차 기관사 최모(50)씨는 고모역 역무원 정모(30)씨가 내린 '정상 운행'지령을 신호를 지키라는 지시로 오인해 신호등 점멸에 따라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또 철도청 부산사무소 운전사령 박모(37)씨는 화물열차가 경산역에 도착하지 않았는 데도 정씨에게 무궁화호 열차의 고모역 통과를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궁화호 기관사 金씨도 기상 상황과 선로 휘어짐 등을 감안할 때 화물열차를 1백50여m 앞에서 목격할 수 있었으나 전방 주시를 게을리 해 화물열차 후방 40여m 지점에 이르러서야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으로 밝혀졌다.

◆ 구조=사고 직후 열차의 전기가 끊겨 자동 출입문이 열리지 않자 승객들과 승무원들은 유리창을 깬 뒤 빠져나오거나 부상자를 구조했다. 접근 도로가 없어 사고 발생 30분 뒤에야 본격 활동에 들어간 구조대원들은 파손된 열차 잔해와 승객들의 몸이 엉켜 유압펌프.절단기 등을 동원해 구조물을 하나하나 잘라내며 구조활동을 펼쳤다.

대구=정기환.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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