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포커 게임, 체력 달려 졌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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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쉽다. 이길 수 있었는데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다.”

재미 한인 프로 갬블러 김동규씨
“속임수도 쓰는 AI 균형감각 좋아”

바둑 기사들처럼 그도 승부가 끝나면 복기를 한다고 했다. 지난달 11일(현지시간)부터 30일까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AI 리브라투스와의 포커 대결에 참가한 한인 2세 프로 포커플레이어 김동규(28·사진)씨. 하와이에서 태어난 그는 지난 2009년 워싱턴주 벨뷰 칼리지를 중퇴하고 포커판에 뛰어든 8년차 프로 포커플레이어다. 지난 2015년 일명 ‘일대일 맞포커’로 알려진 헤드업 방식의 텍사스 홀덤 포커 토너먼트인 ‘스쿱(Scoop)’ 대회에서 33명의 전 세계 도박사들을 누르고 우승하면서 포커계의 혜성으로 떠올랐다. 같은 해 리브라투스의 전 AI 모델인 클라우디코와의 승부에서도 이겨 유명세를 탔다. 본지와 전화 인터뷰는 대회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이뤄졌다.

패배를 예상했나.
“2년 전 클라우디코에 이겼던 터라 이번에도 이길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AI 개발자인 투머스 샌드홈 교수를 만나보니 상당히 성취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첫날부터 AI가 블러핑(Bluffing·패를 속이는 것)을 많이 해서 상대하기 어려웠다. 사람과의 일대일 승부에서는 상대가 블러핑을 할 때 감정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는데, AI는 불가능했다. 블러핑인지 정말 좋은 패를 가졌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패인을 분석한다면.
“대회는 20일간 계속된 마라톤 대결이었다. 매일 평균 11시간씩 수만 번 승부를 해야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무엇보다 승부를 복기할 시간이 없었다. 보통 나는 1시간 경기 분량을 4시간 동안 분석한다.”
AI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최고 강점은 균형감각이다. AI가 좋은 패를 들었을 거라고 인간에게 믿게 만드는 플레이를 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좋은 패에서 큰 돈을 걸고, 나쁜 패에서 카드를 접는다. AI는 그런 성향이 없었다. 다만, 인간의 실수를 기다리는 듯한 AI 플레이는 사람이 파고들 수 있는 약점이다.”
이번 대회의 의미는.
“우린 졌지만 인간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AI가 인간을 완전히 이기는 것은 시간 문제겠지만 포커에서는 아직 인간이 이길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이세돌과 AI 대국이 화제였다.
“마침 한국에 있을 때여서 잘 알고 있다. 이세돌의 1승은 인상적이었다.”
프로 갬블러가 된 계기는.
“대학 진학 후 피자 배달, 자동차 세일즈 등 10여 가지 직장을 전전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게 힘들어 한 학기씩 휴학을 했는데, 그때마다 온라인 포커를 조금씩 했다. 확률과 수싸움에 내가 재능이 있는 것을 알게 됐고,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결심했다.”
승률과 수입은 얼마나 되나.
“프로 갬블러 평균 승률이 51%인데, 나는 55%다. 수입은 일곱자리는 된다.(백만 달러 단위)”
도박에서 따는 사람과 잃는 사람의 차이는.
“도박은 확률의 게임이다. 도박 종류마다 통계학적 개념인 ‘기댓값(expected value)’이라는 것이 있다. 룰렛을 예로 들면, 기댓값은 94.7%다. 100달러를 걸었을 때 내게 돌아오는 돈은 94.70달러라는 뜻이다. 하면 할수록 확률적으로 질게 뻔한 게임이니 100달러보다 더 땄다면 그때가 그만둘 때다.”

미주중앙일보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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