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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민우의 블랙코드

연극 ‘개구리’와 블랙리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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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문화부 차장

최민우
문화부 차장

2013년 9월이었다. 공연담당 기자로서 국립극단 제작, 박근형 연출의 연극 ‘개구리’를 보러 갔다. 작품은 꽤 노골적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욕을 입에 달고 다녔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뇌하는 인간으로 묘사했다. “우리 딸애 작년에 기말시험 본 거 있잖아. 그걸 가지고 커닝했다, 점수 조작했다 염병을 떨어요”라며 대선 자체를 냉소하더니 “왜놈 앞잡이가 되고파”라며 친일 행각도 부각했다. 당시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풍자는 필요하지만 작품성이 떨어져서…”라며 아쉬워했다.

문득 같은 해 초 잡음이 일었던 ‘한강의 기적’이라는 연극이 겹쳐졌다. 작품은 정주영·이병철·박정희 등을 등장시키면서 근대화 과정을 조명하려 했다. 연출자는 보수 성향이었다. 공연 전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다고 공공극장에서 박정희 찬양하는 연극을 올리냐”는 비판이 거셌다. 결국 문화체육관광부는 개막 6일을 앞두고 대관을 취소했다.

문화 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두 사건을 접하면서 “국립단체가 박정희 미화 연극이라고 극장을 빌려주지도 않으면서, 박정희 비하 연극은 직접 제작까지 하는 게 정상인가” 싶었다. 직후 연극 ‘개구리’를 토대로 ‘박정희·박근혜 풍자냐 비하냐, 국립극단 연극 논란’이란 기사를 썼다. 몇 개월 뒤 문체부 공무원에게 “괜히 그런 걸 써서…. 에휴, 말도 말아요. (청와대한테) 완전히 찍혔어요”라는 하소연을 들었지만 무심히 넘겼다.

연극 ‘개구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그로부터 2년 뒤였다. 박근형 연출이 정부 지원금을 받기로 했다가 ‘개구리’ 전력 때문에 탈락했다는 폭로였다. 그때도 ‘담당 직원이 알아서 긴 거겠지, 설마 정권이 조직적으로 움직였겠어’ 싶었다. 순진한 발상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집요했다. 그리고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거치며 블랙리스트의 전모는 하나씩 드러났다.

지난주 특검은 “블랙리스트의 시발점은 2013년 연극 ‘개구리’”라고 전했다. 만약 ‘개구리’가 공연되지 않았다면, 아니 보도라도 없었다면 블랙리스트는 작성되지 않았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시대착오적 공작정치에 젖은 정권이기에 무슨 이유를 찾아서라도 반대편의 주장과 사상을 입막음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개구리’의 편향성과 완성도를 처음 지적한 기자로서 씁쓸함이 들었다. 무엇보다 언론의 건강한 문제 제기를 권력이 자기 입맛대로 악용할 경우, 언론은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최민우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