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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인준 거부, 장외로 간 민주당…“멍청이들” 막말한 공화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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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회의 보이콧, 막말, 장외 집회….

반이민·반오바마케어 정책에 맞서
민주, 재무·보건장관 표결 보이콧
세션스 법무 후보자 놓고도 파행
트럼프는 야당 설득 않고 되레 조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열흘 남짓 만에 미 의회가 한국의 여의도식 정치판으로 바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 강행에 맞서 야당인 민주당은 장관 인준 보이콧 카드를 꺼냈다. 장외 집회 투쟁도 불사했다. 공화당도 이에 맞서 “멍청이(idiot)”라고 막말을 날렸다.

상원 재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오전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 후보자와 톰 프라이스 보건복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준투표 참여를 거부했다. 표면적으론 이들 후보자의 재산 형성 과정에서 새로운 의혹이 드러났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속내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기를 든 샐리 예이츠 법무장관 대행을 전격 경질한 데 대한 맞불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바마케어’폐지를 지연시키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 오린 해치 재무위원장이 주재한 회의에 전원 불참했다. 공화당 의원 3명만 참석한 가운데 해치 위원장은 “(표결을 거부하는) 민주당 의원들은 멍청이들(idiots)”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예의도 없고 위원회 규칙도 무시했다”고도 했다. 미치 매코넬 원내대표도 “민주당은 선거에서 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어리석다”고 비난했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상임위 회의장 대신 복도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로널드 와이든 상원의원은 “프라이스 후보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의회과 국민을 속였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해 의료기기업체 주식 매입과정에서 공직자 윤리에 어긋나는 이익을 얻었던 사실을 숨겼다는 주장이다.

미 의회는 전통적으로 정부가 바뀐 뒤 첫 내각의 장관 후보에 대해선 결정적 하자가 없으면 상원 인준을 해줬다. 공화당 패트릭 투미 상원의원이 이번 보이콧을 두고 “역사상 유례없는 훼방”이라고 비난한 이유다. 반면 민주당 측은 공화당이 야당이던 2013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선임한 지나 매카시 환경보호청(EPA) 장관 후보자 투표를 보이콧한 선례를 들었다.

장관 후보자는 상원 각 위원회 청문회와 찬반 투표, 상원 전체 투표를 거쳐야 임명이 확정된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여당이 된 공화당은 상원 전체 투표에서 과반 이상 의석을 확보하고 있어 표결이 진행되기만 하면 인준이 가능하다. 그런데 상임위에서 발목이 잡혔다. 상임위 표결이 가능하려면 소수당(민주당) 상임위원 최소 1명은 표결에 부치는 데 찬성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세션스

세션스

여야 간 충돌은 법사위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날 법사위에서는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준 표결이 예정됐지만 본안은 제쳐두고 ‘오바마 vs 트럼프’ 공방으로 치달았다.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거부해 경질 당한 예이츠 장관의 지난 24시간 동안 모습은 오바마 집권 8년 간 법무부가 했던 무법 행위와 일치한다”고 비꼬았다.

닉슨 지시 거부한 법무장관 거론하기도

이에 맞서 민주당의 다이앤 파인스타인 의원은 “예이츠 장관이 닉슨 대통령에 맞섰던 엘리엇 리차드슨 법무장관과 윌리엄 러클셔스 부장관의 용기를 다시 보여줬다”고 옹호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이들은 워터게이트 특별검사를 해임하라고 지시한 닉슨의 요구를 거부했다.

인준 표결 보이콧에 앞서 전날 밤 민주당 지도부는 연방대법원 앞에서 심야 장외 규탄집회도 열었다. 하원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 상원 원내대표 척 슈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1000여 명이 운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헌법을 따르지 않는다”(펠로시 원내대표) “미국 의회도 워싱턴도 더는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다”(워런 의원) 등 성토를 쏟아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꿈쩍도 않는 분위기다. 야당을 설득하긴 커녕 “연방대법원 계단에서 집회를 열었는데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더라. 민주당처럼 엉망이다”라고 트위터에 조롱조의 글을 올렸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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