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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당 100원짜리 고스톱은 도박일까, 오락일까

중앙일보

입력

점당 100원짜리 고스톱은 도박일까, 오락일까. 가족이 둘러 앉아 보내는 시간이 많은 명절 연휴 때면 한 번쯤 떠올리는 질문이다.

지난해 7월 강원도의 한 마을회관, 마을 사람들끼리 1점당 100원짜리 화투판을 벌였다. 모포에 깔린 판돈은 2만~3만원. 이 정도면 '친선 도모'를 위한 고스톱 판이라 주장할 만하다. 그러나 누군가 경찰에 신고했고, 화투판에 참여한 A씨는 결국 기소됐다. 점당 100원 짜리 고스톱판이지만 도박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A씨는 억울했다. ‘어디까지나 친선 도모용일 뿐 돈을 따겠다고 참여한 도박은 아니다’라고 자신을 변론했다.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 "누구나 출입이 가능한 공개된 장소에서 판돈 2만~3만원은 도박성이 미약하고, 노인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고스톱을 친 것까지 도박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담당 판사의 판결이다. 이 정도면 도박보다는 '일시적인 오락'에 가깝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고스톱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마을회관 인근에 거주하는 노인"이라는 점도 참작했다. 평소 친분 관계가 있던 주민들이 모인 점도 도박성이 없는 근거로 작용했다.

도박죄 여부에 대해 대법원은 도박 시간과 장소, 도박을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 및 재산 정도, 도박을 하게 된 경위 등을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판돈 규모와 모인 사람들의 친분 관계 등도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

2015년 9월 수원지법 판결도 같은 맥락이다. 동네 주민 5명이 모여 소위 '훌라' 게임을 했다. 판돈은 약 10만원 가량이었다. 법원은 "돈을 따거나 잃은 금액을 볼 때 일시적 오락에 불과하다"며 "도박죄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판돈이 더 커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2015년 1점당 500원씩 40여 차례에 걸쳐 고스톱 판을 벌인 가정주부, 무직자 등에 대해 전주지법은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가정주부, 무직자 등에게 점당 500원은 고액인 점과 처음 만난 사람이 섞여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오락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1983년 3월 대법원은 "도박죄를 처벌하는 이유는 정당한 근로에 의하지 않은 재물의 취득을 처벌해 경제에 관한 건전한 도덕법칙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 처벌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고 제시했다. 또 "도박죄 입법취지가 건전한 근로의식을 배양 보호함에 있다면 일반 서민대중이 여가를 이용해 평소의 심신의 긴장을 해소하는 오락은 국가정책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허용된다"며 "일시 오락에 불과한 도박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후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1점당 100원에 해당하는 화투판에 대해서는 오락으로 인정하는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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