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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쓰는 자전거, 노숙인 손 거쳐 책상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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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두바퀴희망자전거’ 김연설 이사장
녹슬고 버림받은 것들 생활용품으로 재탄생
노숙인 출신 직원 21명, 도색 장인으로 새 삶

김연설씨는 “노숙인들이 자립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박종근 기자]

김연설씨는 “노숙인들이 자립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박종근 기자]

강아지가 서 있는 모습의 탁상용 철제 스탠드. 전원을 연결하면 엉덩이 부분에 수직으로 연결된 꼬리 모양 전구에 불이 켜지는 앙증맞은 디자인이지만, 전구를 제외하고는 버려진 자전거를 이용해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이다. 자전거의 두 바퀴를 연결하는 파이프는 강아지 몸통과 다리가 됐고, 사람이 앉아 페달을 굴리는 안장은 강아지 머리가 됐다. 서울시에서 버려지는 폐자전거를 수거해 책상·행어·조명으로 재탄생시키는 사회적기업 ‘두바퀴희망자전거’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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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문을 연 두바퀴희망자전거는 5년 전까지만 해도 폐자전거를 수리해 중고 자전거로 만들어 판매하는 업체였다. 2012년 김연설(44) 이사장이 오면서부터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김 이사장은 식당·커피숍 등 체인점을 운영·관리하는 회사에 다녔던 경험을 살려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를 바라봤고, 중고 자전거 수리·판매만으로는 회사를 유지하기 힘들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1년 동안 수거되는 폐자전거는 약 8000대였는데, 그중 수리해서 다시 탈 수 있는 자전거는 1000대 정도밖에 안 됐다. 나머지 7000대는 형태가 비틀어지는 등 제 기능을 상실해 폐기물 업체에 보내졌다. 직원들이 부품을 교체하거나 도색작업을 해 새것처럼 만든 중고 자전거도 대부분 고아원 같은 소외계층에 기증했고, 나머지 제품도 보통 10만원을 넘지 않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됐다. 김 이사장은 “당시 연 매출인 5000만~6000만원으로는 직원 15명 월급 주기도 빠듯했다”며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폐기되는 자전거 7000대를 활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이후 디자인을 전공한 직원을 고용해 제품 개발에 힘썼다. 현재 판매 중인 책상·행어·샹들리에 등이 이때 탄생한 제품들이다. “서울시 등에서 대당 1515원에 매입하거나 기증받은 폐자전거를 이용해 72만원짜리 책상, 38만짜리 조명을 만들어 판매했어요. 연 매출은 5억~6억원으로 예전보다 10배 이상 껑충 뛰었죠.”

업사이클링으로 낡은 자전거만 새 생명을 얻은 게 아니다. 두바퀴희망자전거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이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두바퀴희망자전거의 직원 24명 중 21명은 거리에서 생활하던 노숙인이었지만, 이곳에서 일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쓸모없어진 자전거를 자신의 손으로 고치거나 새로운 제품으로 만들어 내면서 그들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고, 이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일주일에 세 번꼴로 결근하던 사람은 지난해 단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았고, 한 곳에서 한 달 이상 근무하는 게 불가능해 정착하지 못했던 사람도 자전거 도색의 장인으로 거듭났다.

김 이사장은 더 많은 노숙인이 이곳에서 자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노숙인과 버려진 자전거는 서로 공통점이 많습니다. 한때는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달렸지만, 녹슬고 부서져 세상으로부터 소외됐다는 점이 비슷하죠. 버려진 자전거가 책상이나 조명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노숙인들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들이 희망을 얻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글=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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