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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만 장군 “조종석에 앉으면 무념무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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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김두만 장군이 자신의 평전인 『항공 징비록』을 들고 있다. [사진 공군]

김두만 장군이 자신의 평전인 『항공 징비록』을 들고 있다. [사진 공군]

“제일 침착할 때가 출격이다. 조종석에 앉으면 그때부터는 무념무상이다.”

『항공 징비록』 낸 전 공군참모총장
한국전쟁 100회 출격 ‘전설의 파일럿’

공군의 ‘살아 있는 전설’ 김두만(91) 전 공군참모총장(예비역 공군 대장)이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1월 11일 F-51D 머스탱 전투기로 100회 출격을 기록한 뒤 한 말이다. 그는 대한민국 공군 창군 멤버다. 전투기 출격 100회 기록은 그가 처음 세웠다.

그의 항공 인생을 다룬 평전 『항공 징비록』 출판기념회가 25일 서울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열렸다. 김 전 총장을 비롯한 역대 공군참모총장과 저자 김덕수 공주대(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김 전 총장은 자서전을 남길 생각이 없었지만 공군 후배들과 저자 김 교수의 끈질긴 설득 덕분에 자서전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지난 14개월 동안 김 전 총장을 인터뷰하며 책을 썼다. 아흔이 넘었지만 김 장군은 또렷한 기억으로 공군 선·후배들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우리 공군은 전투기 한 대 없이 6·25를 맞았다. T-6 텍산 훈련기 조종사였던 김 전 총장은 적진에 맨손으로 폭탄을 투하하며 북한군과 맞서 싸웠다. 후에 공군 첫 전투기 부대 창설 요원이 됐다.

김 전 총장도 처음부터 죽음에 초연하진 않았다. 그는 평전에서 “나도 언젠가 적의 대공포에 맞아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유령처럼 따라다녔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미 공군의 딘 E 헤스 중령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목사 출신인 헤스 중령은 늘 자신의 운명을 신에 맡기고 출격에 나섰다. 헤스 중령은 한국 공군 재건을 도왔다.

1952년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 기록을 세워 동료들의 축하를 받던 모습. [사진 공군]

1952년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 기록을 세워 동료들의 축하를 받던 모습. [사진 공군]

공군 지휘부는 100회 출격을 마친 김 전 총장에게 후방 교관을 맡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김 전 총장은 위험한 임무를 자원했다. 평양 인근의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이었다. 미 공군이 500번을 폭격했는데도 끄떡 없는 목표물이었다. 그는 두 차례 출격에 나섰으나 기상 악화로 실패했다. 결국 그의 동료들이 작전에 성공했다. 김 장군은 “오직 조국 수호라는 목표 하나로 사력을 다해 적과 싸웠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제11대 공군참모총장에 올라 공군 발전을 이끌었다. 2015년엔 6·25 65주년을 맞아 89세의 나이로 최초의 국산 전투기인 FA-50에 시범탑승 하기도 했다. 그는 “어렵게 배운 조종술을 동족을 죽이는데 사용하는 비극이 후배들에게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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