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장외 여론전 그만두고 특검 수사 성실히 임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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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는 거짓말로 쌓아 올린 거대한 산”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는 누군가의 기획인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자신과 사인(私人) 최순실씨가 한 몸이 돼 자행한 국정 농단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음모설까지 덧붙인 것이다. 설 연휴를 이틀 앞둔 25일 저녁 보수 논객이 진행하는 인터넷 팟캐스트와 인터뷰를 통해서다.

박 대통령, 설 직전 기습 인터뷰
혐의 부인하고 음모설까지 제기
수사 응해 진실 밝히는 게 정답

박 대통령의 인터뷰는 형식도 내용도 대단히 부적절했다. 그는 지난 1일에도 신년하례 명분으로 기자간담회를 했다.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한 것부터 문제였다. 게다가 온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국정 농단에 대해 반성 한마디 없이 “특검에 낚였다”는 표현까지 써 가며 무죄를 주장했다. 대통령의 일방적 언론플레이에 국민은 공분했고, 청와대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자숙은커녕 24일 만에 또다시 보수 성향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검찰과 특검 수사로 드러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특히 국정 농단 사태의 핵심인 최순실씨에 대해 “심부름을 해 주고 도와줄 일이 있을 때 도와준 사람” 정도라고 주장했다. 최씨가 대통령을 업고 자행한 국정 농단에 대해선 “몰랐다”며 “(그런) 불찰에 마음이 좀 상한다”고만 했다.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이란 차은택·박관천씨의 공통된 증언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장이다. 박 대통령은 또 “정유라도 어릴 때 한 번 본 적밖에 없는 사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헌재에서 “박 대통령이 정유라를 콕 집어 도와주라고 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국민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국정 농단 수사가 개시된 이래 검찰의 대면조사 요구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대신 설 연휴를 앞두고 보수 성향의 인터넷매체를 콕 집어 일방적인 자기 변호를 했다.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자신을 정조준하기 시작한 특검 수사를 뒤흔들고 헌재의 탄핵 절차를 지연시키는 한편 명절을 활용해 동정심리를 불러일으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실제 박 대통령의 인터뷰가 방송된 25일 그의 변호인단은 헌재 심판의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전원 퇴진 가능성을 흘렸다.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을 가능성을 보도한 본지에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제기했다. 헌재와 특검에 대해 박 대통령 측이 조직적 반격에 나선 분위기다.

그러나 이런 장외 여론전은 상황을 뒤집기는커녕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붓고, 헌재의 판단에도 악영향을 끼쳐 박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헌재는 박 대통령 측의 비협조와 시간 끌기에 경고를 보낸 데 이어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이전에 탄핵 여부를 결정할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헌정사상 두 번째로 탄핵을 당한 비극은 본인이 자초한 것이다. 정말 자신이 무죄라고 확신한다면 장외에서 일방적으로 특검을 비난하고 헌재 심리를 지연시키며 근거 없는 음모설이나 유포할 것이 아니다. 특검 수사와 헌재 심리에 당당히 응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