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언론통제는 성공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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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저명한 미디어학자 존 메릴은 일찍이 정부가 언론을 견제하는 세 단계 방법을 얘기했다. 첫째가 공개적 비판이고 두 번째는 선택적 정보공개에 의한 통제, 그리고 미디어 사업에 직접 뛰어드는 것이 그 마지막 방법이다.

최근 한국 정부는 기존의 여권 매체에 더해 11개 부처가 참여하는 인터넷 국정홍보신문을 발간하기로 했다. 존 메릴이 말한 마지막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정부와 주요 유력지 간 소리 없는 전쟁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비정상적으로 가까웠던 과거의 정부-언론 관계에서 벗어나는 과정의 몸살일 수 있어 반가운 마음도 없지 않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백발을 휘날리며 활동하는 기자를 찾기 어렵다.

언론인으로 평생을 마치는 사람이 많지 않고, 특히 정치계로의 진출이 두드러지는 것은 한국 언론이 유난히 권력지향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는 또한 언론인 스스로 자신의 전문성을 낮게 평가한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언론은 이번 기회를 권력과의 힘겨루기로보다는 고통스러운 자기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이미 크게 바뀐 언론 시장 조건과 안팎의 비판은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언론환경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오히려 자꾸 불편해지는 것은 참여정부의 지나치리만큼 적극적인 언론관이다.

대통령 비서실은 지난 3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투명한 국정을 실천하기 위해'청와대 브리핑을 창간했다. 이 신문은 대통령과 청와대 안팎의 동정에서부터 남북관계와 같은 주요 정책 현안까지 폭넓은 내용을 직접 발표하고 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 내용 중 오보 대응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3~5월에 이미 이틀에 한 번 꼴로 특정 언론 보도에 반박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언론비판이 등장하고 있다.

6월과 7월 기간 중 청와대 브리핑에서 왜곡보도 비판이 등장하지 않은 날은 각각 사흘과 하루밖에 없었고, 8월에 들어서면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특히 청와대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 접할 수 있는 브리핑지의 기사는 지난 사흘 동안 전부 일부 언론의 논평이나 기사에 대한 반박이었다.

청와대 브리핑지의 기사 비중으로만 본다면 참여정부 국정업무 최우선 순위는 단연 대(對)언론관계, 특히 오보 대응에 편중돼 있다. 이대로라면 정부를 감시하는 언론 대신 언론을 견제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정부라는 인상을 씻기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목적지가 어딘지를 고민할 때다. 설령 처음에 언론비판에 대한 이유가 정당했더라도 이렇게 비생산적인 싸움을 계속할 수는 없다. 어둠 속에서 손잡고 있는 정부와 언론이 문제였듯, 소모적인 갈등으로 우리 사회 전체가 정작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외면하는 것 역시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바라는 건강한 긴장관계 조성 의도와 목적이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제 그것은 애초의 목적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사설.해설.칼럼 등 의견성 기사에 대해서도 오보 대응을 하겠다고 나선 것도 그렇다. 이는 애초의 의도와 달리 자칫 의견 자체를 통제하는 결과가 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이제 감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대응 대신 정책과 청사진의 제시에 주력하고 이를 통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개방형 브리핑제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으로 국정홍보의 특성을 이해하고, 원칙에 근거한 정보전달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발전적 방향의 정책이었다.

언론계에서 원론적 반론이 줄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70%가 넘는 공보관들이 사전 공보업무 경험이 전무한 실정에서 이뤄진 성급한 시행을 칭찬만 하기는 어렵다. 지방의 공보관들은 이전과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도 원인이 무엇인지 좀더 고려해야 한다.

어쨌든 정부는 정책을 통해 평가받는다. 이는 언론사가 뉴스를 통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점과 마찬가지다. 참고로 존 메릴은 통제를 위한 정부의 언론 공격은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 했다.

조정열 숙명여대 교수.언론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