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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 대표악당은 대한민국 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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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더 킹

더 킹

부패하거나 권력에 취해있거나. 지금 한국 영화 속 ‘검사’ 캐릭터는 둘 중 하나다. 개봉 6일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더 킹’(한재림 감독)에는 스스로 대한민국의 ‘왕’이라 여기며 정권을 주무르는 ‘정치 검사’가 등장한다. “소신? 자존심이나 정의, 촌스럽게 그런 거 좀 버리자. 그냥 권력 옆에 있어”라는 대사로 대표되는 부장검사 한강식(정우성). 그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판을 짜는 인물이자, 후배 검사인 박태수(조인성)로 이어지는 악의 연대기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이들의 권력을 향한 일그러진 욕망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수라

아수라

대한민국 악의 지옥도를 표방한 ‘아수라’(2016, 김성수 감독)의 김차인(곽도원) 검사는 어떤가. 그는 수사를 위해서라면 폭력을 행사하고 각종 불법적인 방식을 동원하는 ‘조폭 검사’다. 970만 관객이 본 ‘검사외전’(2016, 이일형 감독)의 우종길(이성민) 차장검사 역시 정치 진출을 위해서라면 살인까지 저지르는 악한이다. 재개발 강제철거현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그린 ‘소수의견’(2015, 김성제 감독)에서 검사 홍재덕(김의성)은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하는 인물로, 이 모든 것이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확신범’이었다. ‘부당거래’(2010, 류승완 감독)에서 류승범이 연기한 주양이란 인물 역시 ‘스폰서 검사’의 전형을 보여준다. 지난 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최승호 감독)에도 검사가 등장한다. 2년 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유우성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탐사 보도한 이 작품은 유우성씨를 국가보안법 혐의 등으로 기소했던 검사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비판의 수위를 높인다.

왼쪽부터검사외전, 부당거래, 소수의견.

왼쪽부터검사외전, 부당거래, 소수의견.

검사 캐릭터를 향한 풍자와 조롱의 강도는 점점 거세지는 중이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악당은 아니었다. 2010년대 이전만해도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그들은 정의의 편에 있었다. 드라마 ‘모래시계’(1995, SBS)의 청렴한 검사 강우석(박상원)이 있었고, 영화 ‘공공의 적2’(2005, 강우석 감독)의 정의 검사 강철중(설경구)이 있었다. 대신 한국영화의 악당은 조직폭력배나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였다. 이들의 폭력성이나 모럴 해저드는 검사 캐릭터에 그대로 이식된 듯 보인다. ‘더 킹’에서 한강식 검사는 조직폭력배 1인자 김응수(김의성)와 짝패처럼 묘사된다.

영화 ‘자백’. 최승호 감독(오른쪽)이 70년대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묻고 있다.

영화 ‘자백’. 최승호 감독(오른쪽)이 70년대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묻고 있다.

정의의 사도가 ‘만인의 악당’으로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힘을 실어줬다고 평가받는 박근혜 정권과 ‘검사 악당의 탄생’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검찰 권력이 비대해질수록 국민들의 반감은 커지고, 그것이 영화로 표출됐다는 것.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로 검사 출신인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거론되고 있고, 여기에 일련의 사법 비리, 갑질 검사, 전관 예우 논란 등이 화력을 더했다. ‘모래시계 검사’의 실제 모델인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지난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것도 공교롭다.

시대상 반영하는 악역 세대교체
‘더 킹‘ 정치검사 ‘아수라’ 폭력검사 …
조폭·사이코패스 역할 이어받아
“범죄 엘리트로 전락한 사법 엘리트
단죄 모습 보며 소시민들 대리만족”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예전엔 사회 지도층에 대한 막연한 존경이나 권위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사법 엘리트’가 ‘범죄 엘리트’가 되는 수많은 사건을 지켜보면서 풍자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며 “지금 미국의 경우,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4, 마틴 스콜세지)처럼 악덕한 부자들이 권위를 잃고 영화 속에서 비판 받는다면, 우리나라는 검사를 비롯한 공권력이 그 대상”이라고 분석했다. 또 “죄를 지어도 법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영화에선 이들을 단죄하며 소시민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사법부를 견제 감시해야할 언론 등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검찰 조직에 대한 불만이 극 영화나 다큐멘터리 영화로 분출됐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런 영화들도 검사 전체에 대한 불신은 경계한다. ‘더 킹’은 99%의 검사가 성실하게 정의를 위해 일한다면, 1%의 권력을 잡은 정치 검사가 문제라고 강조한다. 현재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특검에 대한 국민적 응원 열기도 이를 증명한다. 허남웅 평론가는 “검사를 악당으로 그린 영화 대부분이 결국 정의구현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상업적 판단도 있겠지만, 검사 조직이 제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관객의 바람 아니겠는가”라고 설명했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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