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표준화 주도권 놓고 평창과 도쿄서 한 판 승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5호 18면


“5G는 단지 다음 세대의 네트워크가 아니다. 인류가 보지 못한 혁명이다.”


지난 1월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7’에서 퀄컴의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몰렌코프가 한 말이다. 몰렌코프가 5G를 혁명이라고 정의한 이유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와 끊김 없는 연결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로봇·자율주행차 등 수십억 개의 모바일 장치가 5G라는 새로운 차원의 네트워크 상에서 구현되는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시작되고 있다.

5G는 5세대 이동통신의 정식 명칭이다. LTE로 불렸던 4세대 이동통신보다 전송 속도는 약 270배, 지연 시간은 30분의 1 수준이다. 전송 속도가 빠르면 대량의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20기가바이트(GB) 용량의 초고화질 영화 한 편을 8초 만에 전송한다. 지연 시간은 데이터가 상대방에게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기존 이동통신이 사람 간의 연결 중심이었다면, 5G는 사람뿐 아니라 사물까지 연결한다. 그래서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자율주행차·가상현실(VR) 같은 서비스에 5G 네트워크는 필수적이다.


20세기폭스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하노 바세는 “화성 생활을 체험하는 가상현실(VR) 콘텐트를 제작하려면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사용자 움직임을 감지해 그에 맞춰 주변 영상을 전송해야 한다”며 “5G는 미래의 석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천, 수만 대의 자동차가 얽혀 돌아가는 자율주행 도로에서도 실시간으로 도로 상황을 파악해 안전하게 운전하려면 자동차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식으로 5G의 효과는 산업 전반에 광범위하게 확대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의 5G 표준을 둘러싼 주도권 경쟁은 더욱 더 치열해지고 있다.


올해에는 5G 국제 표준의 토대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2020년 상용화를 목표로 국제표준화단체인 3GPP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표준화 작업을 추진 중이다. 3GPP는 올 6월까지 내놓을 ‘릴리즈 14’에서 5G의 기본 요건을 정의하고, 7월부터 1차 표준을 개발해 내년 9월에 확정할 계획이다. 3GPP에서 결정된 사항들은 그대로 2019년 세계전파통신회의(WRC)에서 각국 정부가 수용 여부를 논의한다. 이 때문에 세계 40여개국, 400개 이상의 통신업체들이 3GPP 프로젝트에 참여해 경쟁 중이다. ITU는 올해 10월 쯤 5G 후보 기술을 접수하고 2019년에 5G 주파수 대역을 결정한 후 2020년 공식 표준을 채택한다는 로드맵을 세우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와 업계가 손을 잡고 2018년 평창 올림픽을 ‘5G 올림픽’으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5G 시험국을 운영하고, 봅슬레이 등 일부 종목에 실감 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소형 카메라에 이동통신 모듈을 탑재해 선수 시점에서 생생한 영상을 볼 수 있는 ‘싱크 뷰(Sync View)’, 원하는 방향과 각도에서 경기를 관전할 수 있는 ‘360도 VR’, ‘홀로그램 라이브’ 등이 기대되는 서비스다.

[5G 표준 토대를 마련하는 원년]
성공적으로 시범 서비스를 선보일 경우 그만큼 우리 기술이 국제 표준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미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지난해 12월 스위스 제네바 ITU 본부에서 열린 국제 회의에서 한국이 개발한 5G 통신망 관리 기술이 5G 망관리 국제 표준안으로 채택됐다. 제안 채택 수준이 아니라 국제 표준안으로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기술은 6개월간 193개 ITU 회원국들의 회람을 거쳐 올해 안에 최종 공표될 예정이다. 한국이 5G 국제표준에 한걸음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일본·중국 역시 5G 주도권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7월 연방통신위원회(FCC)가 5G 통신에 사용할 주파수 할당 정책을 승인하면서 총 4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인프라 투자를 강조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AT&T와 버라이즌 등 미국 이동통신 업체들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5G 시험망 운영 등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FCC가 5G 표준이 확정되기도 전에 전용 주파수 대역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할당하면서 미국 업체들은 다른 나라 경쟁사보다 일찍 5G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유럽연합(EU)과 중국 등이 또 다른 대역을 5G 주파수로 지정할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중국·EU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 지 전략적 대응이 필요해진다.


총무성 주도로 5G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5G 상용화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일본 1위 이통사인 NTT도코모는 여기에 발맞춰 2019년 6월 ITU에 5G 기술 사양을 제출할 예정이다. 일본은 5G 서비스 조기 안착을 위해 신규 시장 발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총무성은 스포츠·엔터테인먼트·의료·스마트하우스·교통 등 9개 분야를 선정해 5G를 활용한 신규 서비스 마련을 독려하고 있다.

[실시간 VR, 자율주행차 등 우리 곁으로]
4G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차세대 통신 수요가 확대된 중국도 5G 기술 선점에 적극적이다. 투자 규모만 5000억 위안(약 85조원) 이상이다. 3G와 4G에서 한국·미국·일본 등에 밀렸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중국의 강점은 거대한 내수시장이다. 미국과 유럽이 5G 표준을 만들어도 13억 인구의 중국이 채택하지 않으면 진정한 글로벌 표준이 되기 어렵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와 IMT-2020 태스크포스(5G TF)는 올해부터 5G 테스트에 들어가 2019년 통신망을 개통한 후 2020년부터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특히 모바일 가입자 8억명에 달하는 차이나모바일이 설립한 5G 공동혁신센터에는 화웨이 등 전기통신 장비 제조업체와 칩 제조업체, 아우디·비야디(BYD) 등 자동차 회사, 하이얼과 하이센스 등 가전업체, 기타 스타트업 등 총 42개 회사가 파트너로 참여했다.


2020년 5G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가입자수의 증가와 함께 관련 시장규모도 점차 커질 것이다. 전세계 5G 가입자수는 2020년 100만명을 시작으로 급속하게 늘어나 한국·일본·미국 등을 중심으로 2022년에는 1억명에 다다를 전망이다. 이에 따른 세계 5G 시장 규모는 2020년 378억 달러에서 2년 후에는 그 4배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LTE가 활성화된 국내에서는 5G 시장규모가 2020년 3조1000억원에서 2022년 약 10조원, 2025년에는 약 35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기술만으로 시장을 지배할 수 없다. ITU가 제시한 5G 요건만 맞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구현할 서비스도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 5G는 앞서 언급한 자율주행뿐 아니라 미디어·관광·보안 등 여러 분야에서 기반 인프라로 활용될 것이다. 일본 NTT도코모는 게임회사인 DeNA와 제휴해 자율주행차 원격관제 실험을 추진하는 한편, 토부철도와는 VR 관광 콘텐트를 기차·버스 승객에게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보안업체 ALSOK은 실시간으로 행사장 방문객 표정에서 공격성·긴장도·스트레스 등을 측정해 범죄를 방지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 서비스는 4K 초고화질(UHD)급 영상 분석이 필요해 대용량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5G가 필수적이다.


사실 CES에서 보여준 5G의 미래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진짜 5G의 모습은 아직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5G로 인해 우리 사회는 편리함을 넘어 새로운 차원의 혁명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다.


김재필KT 경제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Copyright by JoongAng Ilbo Co., Ltd. All Rights Reserved. RSS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