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권력기관들 갈등과 노 대통령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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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고된 권력분산의 후유증=권력기관끼리의 갈등은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이미 예고됐던 것이라고 여권 주요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2002년 12월 대선 직후 노무현 당선자는 주변 인사들에게 "권력은 잡고 나면 남용하기 마련"이라며 "남용의 유혹을 뿌리칠 유일한 방법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수위 시절 노 당선자는 문재인 변호사와 오랜 참모인 이호철씨에게 민정수석과 민정비서관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내가 권력을 놓아버리기 위해 두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무장관직 제의를 위해 시내 모처에서 강금실 변호사를 만난 노 당선자의 일성은 "법무부와 검찰을 분리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검찰에 기대어 특권을 누리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권력기관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대신 코드로 대변되는 파격 인사로 해당 조직을 흔들었다. 권력기관이 민주적 문민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그 결과 대통령과 검찰 사이에 예전에 없던 갈등상황이 빈번하게 조성됐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검찰인사안에 대해 검사들이 집단 반발한 이른바 '검란'사태(2003년 3월)가 첫 사례였다. 노 대통령이 '검사와의 대화'를 통해 해결에 나섰지만 서로 간에 앙금만 쌓였다.

◆ 갈등의 원인은 엘리트체제 해체=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이번 사태는 '엘리트 독점체제 해체'라는 노무현 정권의 정책기조에도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이전이 서울의 독점을 깨는 것이라면, 각종 위원회의 설치는 관료사회의 독주를 막자는 취지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이미 참여정부의 각종 인사에서 외교부 미국 라인과 '모피아'라 불리는 재경부 내 금융통들에 대한 견제가 이뤄져 왔다. 요약하면 기득권.주류사회의 해체가 끊임없이 시도돼 왔다는 해석이다.

여권 핵심 인사는 "엘리트 독점세력의 해체는 참여정부의 원칙이며 이 과정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라며 "대통령이 권력을 놓은 상황에서 권력기관들이 그 권력을 선점하기 위해 다투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경 갈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 권력누수냐, 분권의 정착이냐=여권 관계자는 "검.경 갈등의 불씨가 권력누수로 이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집권 후반기 증후군'을 거론했다. 김대중 정부도 집권 3년차인 2000년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사건을 겪으면서 누수 조짐을 보였고, 권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2001년 언론 세무조사로 통치권의 누수는 오히려 빨라졌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 역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6월 지방선거 연기 문건 공개' 등의 파문을 거치면서 중간평가로 여겨지던 '6.27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 레임덕을 맞았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시기를 맞은 것 아니냐고 그는 걱정했다.

그러나 분권의 정착에 무게를 두는 인사들은 "과거엔 제왕적 권력이 서서히 무디어지면서 어느 순간 급속하게 권력누수가 왔지만, 현 정부는 처음부터 권력기관을 독립시켰기에 임기 마지막까지 심각한 레임덕은 없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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