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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월드컵 4강, 복 받으세요"

중앙일보

입력

닷새 후면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이다. 참 의미의 병술년의 첫날, 새로운 해오름이 시작된다. 새해는 월드컵 함성으로 지구촌이 들썩거릴 터이다. 벌써부터 세계인의 이목이 독일에 쏠리고 있다. 우리 국민의 마음 역시 '어게인 2002'를 꿈꾸며 게르만의 녹색 그라운드를 11인의 전사와 함께 달려갈 참이다. 중앙일보 프리미엄이 설날을 앞두고 임피리얼 팰리스호텔 총지배인인 독일인 홀거 헐리 부부를 만났다. 월드컵 개최국이자 한일월드컵 준우승국인 독일인들의 새해맞이 풍습과 새해소망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자연스레 월드컵으로 이어졌다.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20층 라운지에서의 첫 만남은 '선입견'의 공허함을 다시금 일깨웠다. 헐리(62)부부의 첫인상은 요즘 유행하는 사자성어로 생기발랄.다정다감했다. 이순(耳順)을 넘어선 노부부의 밝은 표정에 이른바 '독일병정' 이미지는 티끌만큼도 어리지 않았다.

인종과 피부는 달라도 세계는 하나요, 신년덕담은 세계공감 아이템인가 보다. 독일의 새해맞이 역시 우리와 별다를 바 없었다. 한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는 집안을 깨끗이 대청소하고, 가족이나 친구.연인끼리 모여 한해를 떠나보내는 카운트다운을 같이 한다. 10,9,8……. 이와 동시에 그들의 고유의식인 브라이지쎈(Bleigiessen)을 거행한다. '납을 붓다'라는 의미의 브라이지쎈은 숟갈에 납덩어리를 놓고 초에 녹여 액체가 되면 찬물에 붓는다. 이때 납이 굳으며 제각각의 모양을 이루는 데 이를 보며 서로에 대한 덕담으로 새해를 축복한다고 한다. 물론 희망찬 한해를 위한 '건배'도 빠지지 않는다. 1월 6일에는 성경에 나오는 세명의 왕 이름의 앞 이니셜을 따 교회의 분필로 집의 방문에 'K.M.B'를 쓰며 한해의 행운을 기리기도 한다. 마치 액운을 쫓는 우리네 부적과 닮아 있다. 또 우리가 보신각에 모여 제야의 종소리에 묵은 해를 보내듯 독일은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앞 광장으로 인파가 몰려나와 새해를 맞는다.

세배와 세뱃돈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솔깃해 귀를 기울이던 헐리 씨는 "싱가포르에도 비슷한 세시풍속이 있는 것 같다"며 "아주 좋은 풍습이다. 나는 돈을 좋아한다"고 농담을 던졌다. 기자가 "웃어른이 아랫 사람에게 세뱃돈을 줘야한다"고 설명하자 "난 아직 젊다"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웃음을 자아냈다.

헐리 총지배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이 궁금했다. "한국인과 독일인은 근면하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열심히 일하고, 목표를 성취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라는 헐리 씨는 1950년대 한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한국인 광부.간호원 등 두나라 간의 끈끈한 인연에 대한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질 즈음 축구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헐리 부부는 "미스터 박(박지성)과 차붐(차두리)을 좋아한다. 차붐은 아버지 대를 이어 독일의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어 독일에서도 인기가 높다"며 한국 축구선수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했다. 특히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본 붉은 악마의 응원모습은 "경이로웠다"며 그날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006 독일월드컵 얘기로 넘어갔다. "독일과 한국이 맞붙게 된다면 어느 팀을 응원하겠냐"는 다소 짓궂은 질문에 헐리 총지배인은 "잘하는 팀을 응원하겠다"고 재치있게 넘겼다. 하지만 월드컵 3회 우승국의 영광을 재현해 내심 FIFA컵을 거머쥘 것을 점치는 듯했다. 반면 김치찌개를 좋아한다는 부인 헬가는 "한국을 응원하겠다"고 해 남다른 한국사랑을 과시했다. 어쨌거나 두 나라가 모두 승승장구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 같았다.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은 인테리어 디자인이나 전시된 조각.미술작품 등에서 풍기는 앤틱한 느낌이 유럽의 호텔과 흡사하다. 하지만 다른 유명 체인호텔이 모던함으로 일관한데 반해 이 호텔은 한국적인 느낌을 상당부분 가미했다. 헐리 총지배인은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의 한국적 요소가 외국인 투숙객들에게는 호평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국제적 호텔로 이름을 알리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특급호텔로의 발돋움을 자신했다. 그는 새해엔 직원들의 외국어 교육에 치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활한 의사소통이야말로 외국인 투숙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시골에 가면 말은 안 통하지만 사람이나 음식이나 가장 한국적인 것을 만날 수 있어 여행을 좋아한다'는 헐리 부부. 2006년 소망은 우리네와 한치 다름 없는 '건강과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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