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기미 탄광분규의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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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연4일째 과격농성시위를 벌이던 국내최대의 민영탄광인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의 노사분규가 일단 수습되고 석공 장생광업소도 파국을 막기 위해 노사양측이 우선 서로의 주장을 보류한 채 17일부터 채탄에 들어가는 등 태백·정선탄광지대의 노사분규는 잠시 가라앉는 듯한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수습은 「해결」이 아니라 잠정적인 「타협」일뿐 분규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광산분규의 뿌리깊은 불씨는 어용노조시비와 광원들에 대한 도급제 임금체도이며 7년 전의 사북사태를 비롯, 대부분의 광산분규가 바로 이 두 가지 문제 때문에 생긴 것으로 탄광분규의 문제점을 파헤친다.
◇어용노조시비=태백탄전지대 22개 탄광에서 발생한 노사분규가운데 2∼3개 업체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어용노조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광원들이 노조퇴진을 요구하는 이유는 간선제로 선출되는 노조집행부는 근로자들의 진정한 의사를 대변할 수 없는 데다 탄광주들과 밀착, 근로자권익대변 등 투쟁활동이 미약하기 때문.
임기3년의 노조위원장 선거는 노동규약에 따라 탄광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규모 탄광은 조합원 80∼1백50명, 중소탄광은 20∼50명당 대의원 1명씩을 선출한 뒤 과반수이상 찬성을 얻어야 선출된다.
때문에 회사측은 소수의 대의원들을 장악하기 쉬운데다 대부분 선거 때마다 회사측과 가까운 후보자를 당선시키기 위해 공공연히 향응과 금품지원을 하고있다는 것.
이 같은 광원들의 노조불신이 빚은 대표적인 노사분규는 85년3월2일 발생했던 석공 장생광업소 농성사건과 80년의 사북사태. 당시 노조위원장 김동철씨(39) 와 정용화씨(40) 등 2명이 입후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자 금씨는 대의원 28명중 자신의 지지파 18명만으로 선거를 실시해 만장일치로 재선 됐었다.
이에 격분한 정씨 지지자들은 날치기선거에다 회사측이 김씨에게 금품을 지원했다고 주장, 3일간 채탄작업을 중단한 채 격렬한 시위를 벌여 당시 광업소 소강 홍영표씨와 김씨가 끝내 퇴진했다.
또 도계 경동탄광도 지난해 7월28일 노조위원장 김영환씨(51)가 회사측의 비호아래 당선, 어용화됐다며 광원들이 퇴진을 요구, 김씨가 사퇴하자 보름쯤 뒤인 8월12일 단일입후보한 박진규씨(46)를 선출했으나 또다시 퇴진을 요구하며 4일 동안 농성시위를 벌였다.
특히 80년4월 이른바 사북사태로 불리는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의 노사분규는 당시 간선제로 당선된 노조의원장 이재기씨(36)가 어용화 돼 근로자들의 권익대변을 못한다며 광원들이 봉기, 폭동사태로 번졌었다.
이같이 어용노조시비가 노사분규의 쟁점이 되자 태백탄전지대 광업소들은 노조선거를 직선제로 전환할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태백·삼척관내 22개 모광중현재 노조직선제를 하고있는 6개 탄광외에 한보탄광·통보광업소가 오는25일 직선제선거를 실시할 예정이며 10여개의 다른 탄광들도 직선제를 실시하기 위해 노동규약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탄광은 여전히 간선제를 고집하거나 직선제에 소극적.
K탄광 관계자는 『광원들의 농성시위가 터져도 노조가 불신 당해 노사협상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근로자들의 대표성이 확실한 노조를 구성하려면 직선제가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임금개선 및 도급제 폐지=현재 태백탄전지대 광원들의 평균임금은 석공이 석산부 45만원, 후산부 38만원이며 민영탄광은 이보다 2만∼3만원, 군소탄광은 5만∼7만원이 적다.
광원들은 이 같은 적은 액수로는 생계보장이 어려운데다 매년 채탄작업이 심부화되면서 노동강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형편에 비하면 미흡한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임금산출은 모두가 도급제로 4∼5명이 한조를 이루는 막장도급, 2백∼3백명이 투입되는 갱별도급제로 구분돼 OMS (1인 하루 8시간당 생산작업량) 에 따라 기본급이 산정된다.
톤당 도급단가는 대형탄광이 1천4백∼1천7백원, 중소탄광이 1천2백∼1천4백원으로 이 단가에다 작업일수(공수)를 환산, 기본급을 정한 후 각종 수당을 가산해 임금을 정한다.
그러나 이 같은 도급제는 탄층의 매장량과 막장의 작업조건에 따라 작업능률에 큰 차이가 나는 데다 광원들은 작업능률을 높이기 위해 무리한 채탄을 강행, 갱내재해의 요인이 되고 있다.
Y탄광 광원 박모씨(48·선산부)는 『같은 광업소에 근무하는 동일한 경력자도 갱도에 따라 월 5만∼8만원의 봉급차이가 난다』며 『회사에 갈보여야만 작업환경이 좋은 갱에 배치돼 광원들의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또 J탄광 광원 이모씨(43·선산부) 는 『갑자기 몸이 아파 결근을 하면 도급일당을 받을 수 없어 손해가 많다』며 『생활안정이 보장되는 고정월급제가 바람직하다』 고 말했다.
◇새로운 요구사항=「사택입주개선」 「유급휴가확대」「퇴직금 누진제」 「직업병환자 노후대책보장」 「일요일 유급휴일실시」등 후생복지개선이 공통요구사항.
또한 석공의 경우 「인격적인 대우를 하라」「관리자 언어순화」등 인간적인 대접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삭막한 생활환경에 찌들려온 불만과 국영탄광일수록 권위주의에 젖은 관리자들의 홀대로 누적된 반발심이 일시에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예전엔 먹자주의였던 광원들의 생활형태가 점차 가정화되고 근검·절약추세로 변해가고 있어 이 같은 열악한 생활환경에 대해 불만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때문에 2∼3년 전부터 광원들의 농성시위대열에는 부녀자들의 참여가 부쩍 높아지고 있다.
주부 정모씨(36)는 『광산촌에 월1, 2회 모처럼 휴일이 와도 가족들과 함께 심신의 피로를 풀 수 있는 휴식공간마저 없다』고 말하고 『광원들이 언제쯤 이 같은 노사분규·처우개선문제에서 벗어나 땀흘린 만큼 편히 살게될지…』 하고 한탄했다. <사북·장성=거양명·권혁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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