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살아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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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16강전 2국> ●·이동훈 8단 ○·커제 9단

4보(47~57)=우하귀 쪽 47, 49로 머리를 내밀고 나와 이동훈의 ‘난장판’ 전략은 그럭저럭 통한 것 같다. 일단, 백의 텃밭을 흐트러뜨리고 빠져나왔으니까. 문제는, 48로 점잖게 늘고 49로 젖혔을 때 가만히 50으로 밀어 올린 커제의 침착한 태도. 이 장면에서 대부분의 프로들은 51의 곳을 두텁게 꼬부릴 줄 알았는데 그런 곳을 외면하고 50으로 손을 돌렸다.

이 수는, A의 약점을 부각시켜 보강하게 하고 선수를 뽑아 상변을 정리하겠다는 의도다. 여기에는 ‘상·하변 합쳐 50집 정도만 확보하면 무난한 승리’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동훈의 처지에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하변 쪽 백 세력을 향해 하나 더 눌러간 51은 고육지책. 52와 교환돼 흑▲의 준동 가능성을 없애버렸으니 자체로는 작지 않은 손해인데, 그만큼 상변 53의 선착이 절실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당연해 보이는 53, 55 다음 빳빳하게 따라 올라선 56에 이동훈의 손길이 딱 멈춘다. 56을 예상하지 못한 걸까? 검토실의 손들도 일제히 분주해졌으나 좀처럼 흑이 좋은 변화가 나오지 않는다. 이 장면의 최종 결론이 된 ‘참고도’의 진행은 흑의 생불여사(生不如死). 살아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형태인데…(12…△).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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