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World] '이란 핵 문제' 왜 시끄럽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1. 이란은 왜 핵을 개발하려고 하나요.

겉으로는 전력부족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란의 인구는 현재 7000만 명이 넘어요. 게다가 피임과 임신 중절을 금지하는 이슬람법 때문에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죠. 여기에 도시화.산업화도 빠르게 진행돼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소를 짓겠다는 게 이란 정부의 주장이지요. 또 이란은 핵확산금지조약(NPT.키워드 참조) 가입국인 만큼 평화적 핵 이용권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속내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무엇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 의해 '악의 축'으로 몰린 상황에서 가장 확실하게 '이란'이라는 국가를 지켜줄 버팀목이 바로 핵무기라고 판단한 듯해요. 이란 정부가 지금까지 핵무기 개발 의사나 계획을 드러낸 적은 없어요. 어디까지나 평화적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점만 강조하고 있죠. 서방 국가들의 압박을 피해가기 위한 은폐 전술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강대국을 향해 "우리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큰소리치는 북한과 전혀 다른 모습이죠.


<그래픽 크게보기>

2. 그럼 서방 국가들이 이란을 압박하는 이유는 뭔가요.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이란이 평화적 목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몰래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더욱이 이란은 예전에도 각종 테러 활동에 연루된 적이 있어 미국으로부터 '테러 지원 국가'로 분류돼 있어요. 미.유럽은 이란의 핵 보유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한마디로 "이란이라는 나라를 믿지 못하겠다"는 거죠. 미국의 생각은 좀 더 복잡해 보입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여 왔어요. 그런데 '불량 국가'인 이란의 핵 개발을 방치하면 다른 나라들도 잇따라 "우리도 핵을 갖겠다"고 나서지 않겠어요. 이 때문에 어떠한 예외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해요. 하루 400만 배럴이나 수출하는 이란의 석유도 미국이 쉽사리 물러설 수 없게 하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중앙아시아의 석유 공급선을 다져놓은 상황에서 이란의 석유마저 통제하게 된다면 금상첨화 아니겠어요. 그래서 더욱 이란의 무장해제를 꾀하는지도 몰라요.

3. 그래도 뭔가 타협점이 있을 듯한데, 협상이 왜 이리 지지부진한 거죠.

이란과 EU 3개국은 2003년 9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 핵 시설에서 고농축 우라늄(HEU) 흔적을 발견한 뒤 본격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협상은 잘 풀릴 때도 있었지만 답보 상태에 빠진 적이 많았어요. EU 3국은 최근 "이란이 자체 우라늄 농축을 포기하면 필요한 만큼의 핵 원료를 공급해 주겠다. 경제 협력도 대폭 확대하겠다"고 제안했어요. 하지만 이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핵 주권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만 반복했죠. 중국.러시아와 상당수의 비동맹 국가들이 이란 제재에 반대하는 것도 이란이 강경 자세를 뒷받침하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이들 나라는 초강대국 미국을 견제하려는 심리가 강해요. 지난해 9월 열린 IAEA 이사회에서 미국과 EU 3국은 이란 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35개 이사국 중 13개국이 기권 또는 반대표를 던졌어요. IAEA는 다음달 2일 다시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이란 제재 방안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미국은 이란 핵 문제가 조만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지 유엔 안보리에 정식 회부한다는 입장입니다.

4.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면 무력 충돌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나요.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우선 유엔 안보리에서 이란에 대한 제재 결의안이 통과될지 의문이에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이란 제재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밝히지 않고 있어요. 또 이란은 중동의 경제.군사대국이랍니다. 석유 매장량이 풍부해 적잖은 나라들이 이란의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최근에는 군사력도 꾸준히 강화해 왔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섣불리 군사력을 동원하기 힘든 상황이에요. 더욱이 이란은 79년부터 미국으로부터 각종 경제.금융 제재를 받아온 터라 추가 제재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강하답니다.

미국과 EU의 진짜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죠. 일각에서는 핵 시설만 골라 선별 폭격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다지 현실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결국엔 협상을 통해 문제를 푸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수많은 고비가 있겠지요.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박신홍 기자

◆ 핵확산금지조약(NPT)=핵무기가 세계 곳곳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국제조약입니다. 미국과 소련 등이 주도해 1970년 3월 발효됐지요. 핵무기 보유국이 핵무기가 없는 제3국으로 핵무기 및 관련 설비를 이전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죠. 대신 철저한 사찰을 조건으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보장해 줍니다.

◆ 경수로(輕水爐)와 중수로(重水爐)=원자력 발전을 하면 원자로에서 엄청나게 많은 열이 발생합니다. 이 열을 식히기 위해선 차가운 물이 필요해요. 이때 일반 증류수(H2O)를 냉각수로 사용하는 원자로가 경수로이고, 중수(D2O)를 쓰면 중수로입니다. 요즘 북한이 계속 갖겠다고 주장하는 게 바로 경수로죠. 그런데 경수로는 중수로보다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얻기가 기술적으로 훨씬 어려워요. 그래서 대부분의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는 경수로를 사용해요.

◆ 재처리=원자로에서 핵 연료를 태우고 난 뒤의 '사용 후 핵 연료'에는 플루토늄이 다량으로 섞여 있는데, 이를 화학적으로 따로 추출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플루토늄은 곧바로 핵무기 재료로 쓰일 수 있으니까 문제죠. 또 재처리 시설은 얼마든지 군사적으로 전용할 수 있죠. 따라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등 5개 핵 보유국 외의 국가가 재처리 시설을 도입하는 걸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요.

◆ 우라늄 농축=천연 우라늄(U)은 U235가 0.71%, U238이 99.28%로 구성돼 있어요. 그런데 핵 연료를 얻기 위해서는 U235가 훨씬 많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U235의 함유율을 인공적으로 높이는 작업이 필수적이죠. 이걸 우라늄 농축작업이라고 합니다. 농축은 U235와 U238의 질량 차이를 이용해 둘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요. 일단 우라늄 원광에서 불순물을 없애면 '옐로 케이크'라는 초기 단계 원료가 됩니다. 이어 '육불화우라늄(UF6)'이라는 이름의 기체로 전환된 뒤 1차 저농축 우라늄이 되지요. 이는 원자로의 연료로 사용이 가능해요. 그리고 이런 단계를 계속 반복하다 보면 고농축 우라늄, 즉 핵폭탄의 원료가 만들어집니다.

◆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목적으로 57년 창설된 국제기구입니다. 주로 핵무기가 없는 나라들이 핵 연료를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하는 것을 막는 일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57년에 가입했어요.

*** 바로잡습니다

1월 20일자(일부 지역) 12면 이란 핵 문제를 다룬 틴틴월드 그래픽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이란의 다섯 군데 핵시설 위치를 표시한 그림 중 ⑤번이 ③과 같은 나탄즈로 나갔습니다. ③번은 나탄즈가 맞으며 ⑤번은 부셰르로 바로잡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