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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인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천재지변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천재란 말과 지변이란 두말의 합성어다. 천재는 큰 바람, 큰 장마, 큰 가뭄으로해서 일어나는 재앙이고, 지변은 화산이 터지거나 지진 때문에 지각이 갈라지고 바다와 육지의 모양이 돌변하는 등의 재앙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와 같이 이것은 엄연한 두말임에도 불구하고 국어사전에 보면 천재를 태풍·홍수·가뭄·지진등 자연의 재앙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여 지변까지를 싸감아 풀이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는 지진보다 태풍이나 장마나 가뭄의 피해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재란 말은 국어사전에 올라있지 않다. 이 말은 최근에 만들어진 새말이다. 이 말은 최근의 민주화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말임에는 틀림없는데, 어찌하여 이 말이 빨리 등장했으며 누구에 의하여 또 무슨 까닭으로 이 말이 널리 쓰여지게 되었을까? 나는 어려서 소위 을축년 장마를 겪어 보았다. 1925년의 대홍수 말이다. 그때의 장마가 지난주의 우리가 겪은 장마에 비하여 얼마나 더 처절한 것이고, 얼마나 더 약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이때까지 사상 최대의 홍수로 알려졌던 대홍수이며, 나는 그때 우리 동포들이 얼마나 정성을 다해 구호의 손길을 폈던가를 잘 알고있다.
자고로 우리 국민은 천재가나면 두가지 차원으로 대처했던 것이다. 하나는 민간 차원에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발벗고 나서서 구호활동을 했고 다른 하나는 국가적 차원에서 했다. 그러나 일제 침략하에서는 국가적 차원의 구호활동은 기대할 수 없었다. 을축년 대홍수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가뭄이 심할 때에는 하느님께 기우제를 드렸다. 지방민은 지방민대로, 임금은 임금대로 자기반성을 하면서 각각 기우제를 드렸다. 그때 제주는 하느님께 이렇게 반성을 했다. ①우리정치가 한결같지 못해서 노하셨습니까 ②백성들 중에 실직자가 많아서 노하셨습니까 ③뇌물행위가 너무 심해서 노하셨습니까 ④백성들끼리 서로 헐뜯어 인화가 안돼서 노하셨습니까…등 여섯 가지의 축문을 읽으면서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이것이 곧 육사자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큰 홍수 때문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은 보기 드물다. 다만 1636년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남한산성에 피난 갔을때의 제사는 유명하다. 인조는 때아닌 찬비가 쏟아져 장병들이 얼어죽게 되자 후원에 나아가 맨땅에 엎드려 찬비를 맞으면서 향불을 피우며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그 제문에 이르기를 『이 고성에 들어와 믿을 것은 하느님밖에 없는데, 때아닌 찬비가 웬일입니까. 모두 다얼어 죽게 되었습니다. 나 한몸은 죽어도 아까울 것 없지만 백관과 만민이야 하느님께 무슨 허물이 있습니까. 비옵건대 비가 그치고 날씨가 개는 혜택을 내려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했던 것이다. 이때 인조는 울고 또 빌고 하여 어의가 다 비에 젖어도 빌기를 그치지 아니하자 세자와 신하들이 안으로 들어갈 것을 간청했으나 듣지 않고 날씨가 개도록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맹조실녹의 기사 그대로다. 그만큼 우리 국민은 자고로 천재를 당하면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자숙하고 반성하는 국민이었다. 오늘날 우리 애국가 중에도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민주화 과정에서의 우리 국민은 얼마나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자숙하고 반성하는 국민인가. 그러나 참다운 민주화는 그 국민이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사실을 우리는 「에이브러햄·링컨」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다 알다시피 그는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국민이 주인이 되고 국민에 의해서 만들어지고국민을 위해서 존재한 정부는 지구상에서 소멸되지 않는다』고 하여 민주주의의 정의를 내린 사람인데 그는 이 말을 하기 직전에 미국이 자유의 나라가 되려면 먼저 하느님을 경외할 줄 알아야 된다는 말을 강조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자유와 자제를 동시에 강조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참다운 민주화는 양보의 정신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시비를 가리느라고 개에 물리느니보다는 차라리 개에게 길을 양보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했으며 이쪽에 반쯤의 타당성 밖에 가지고 있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크게 양보하고, 타당성이 많고 자신만만한 일일지라도 조금은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우리의 정치인들은 이 말을 경청해야할 것이다. 다행히도 민정당 노대표의 6·29선언과 큰 양보의 결과로 우리 정치풍토는 많이 순화되는듯 싶었다. 그리고 연이은 태풍과 폭우를 겪는 동안 우리 국민이 보여준 동포애와 자숙의 정신은 참말로 흐뭇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태풍과 폭우가 지나간 뒤 개헌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암초에 부닥치는 것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인재가 고개를 드는구나 싶어 적이 걱정이 됐던 것이다.
사실 나는 6·29선언 3일전에 여당에 대하여 야당될 각오로 크게 양보할 것을 촉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야당에 대해 승자의 입장에서 아량과 겸양의 정신을 발휘해 줄 것을 촉구한다. 그래야만 인재를 막을 수 있고, 인재를 막아야만 참다운 민주화가 이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겸허하고 자숙하지 않고서는 자유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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