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5)소설민족생활사 백두산-여명 제1장 하늘과 대지(35)|과욕으로 패전한 덕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어서 돌아가 예의 공격을 막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한배는 곧 대답하였다.
예는 바로 우리의 머리 위에 있으나 청구는 동호의 땅을 통하여 다시 그 머리를 짓누르고 맥을 밀어서 예의 옆구리로 찔러 들어갈수가 있소. 또한 청구는 우리가 뻗어나가야 할 동쪽의 진로를 막아서고 있는 셈이요. 나는 예를 버리고 청구를 택하였소. 청구는 이제 죽죽 뻗어 나가기 시작하는 새 가지요. 그가 동쪽길을 열겠지. 이제 예 맥 조선은 한 부족이 될게요.
청구는 어찌 됩니까?
그는 동쪽에서 우리와 만나면… 한 가족이 되겠지.
한배는 대 성읍의 단웅 검의 궁성으로 들어가 알현하여 변경이 진압되었음을 아뢰고 풍악을 울려 잔치를 벌였다.
우가 맥 읍에 당도하여 큰 한 덕이릍 찾아뵙고 한배의 간곡한 뜻을 전하니 상설은 반대하였으나 덕이로서는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었다. 설은 끝까지 말하였다.
지금 그와 분명하게 갈라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부족의 호족들로부터 고립되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힘을 보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신시 검의 선정입니다. 검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건만 모든 한들은 그에 복속하는 시늉을 해야만 합니다. 어찌 큰한께서는 이를 떨쳐버리지 못하십니까? 아니오, 그는 다만 강화를 원할뿐이요. 더구나 맥 읍에 와서 열겠다하니 이는 나의 평천 점령을 더욱 강대하게 굳혀주는 셈이요.
날짜가 정하여진 뒤에 평천의 맥 읍에서는 강화회의의 준비를 갖추었으며, 외성의 토성 위에는 수비군이 울라가 철통같이 방어하고 기병들은 토성밖의 들판에 오색의 깃발을 세워 두고 겹겹이 진을 쳤다. 청구 쪽에서는 조선에서 검이 직접 나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한배가 아무리 신시의 섭정이라 하지만 제각기의 큰한으로서 새상스럽게 구한의 주도권을 들고 나올수는 없다는 것도 알았다.
조선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 청구의 처사는 심히 못마땅한 노릇이었다. 애초에는 예맥 연합군의 난하 하류에로의 진출을 막아내기 위하여 맥의 측면을 견제하여 달라는 부탁을 하였으며, 청구는 예 맥군을 물리친 다음에는 다시 저들의 관경으로 되돌아갔어야만 했다.
그러나 조선은 막대한 군비를 들여서 겨우 북방으로 나가는 입구인 희봉 한군데만을 차지했고 아직도 예는 공격할 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청구는 혼자서 맥의 대읍을 점령한 뒤에 멋대로 새로운 맥의 큰한까지 선출하고서 동맹을 맺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섭정 한배는 조금도 내색을 않고 오히려 덕이의 평천 점령을 신시의 권위로써 인정해 주는 쪽을 택하였던 것이다. 청구쪽에서는 유족파발족의 한이 참가했고 조선에서는 고죽과 옥저의 한을 데리고 왔다. 진번 임둔 역시 작은 고을이었으나 조선에 기울어있었으므로 스스로 단웅 검의 신하임을 일컫고 있었다. 강화는 역시 단웅 검의 분부를 받드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맥에 새로운 질서가 생겨난 일을 기정 사실화하는 것과 함께 예와 맥의 군사적 행동에 대하여 맹렬히 질타하고 예의 큰한에게 구한의 바른 도리와 단웅 검님의 신시의 승통에 복종할 것을 촉구하였다. 또한 한배는 청구의 큰한 덕이에게 예의 큰한도 그가 새로운 호족 가운데서 새로이 뽑아낼 수 있음을 암시하여 주었다. 청구는 이제 맥을 점령하여 조선보다 더욱 강대해졌을 뿐만 아니라 구한의 검에 의하여 예까지도 마음대로 할수있는 권한이 생겨난 것과도 같았다. 강화회의는 이틀이 걸렸는데 조선폭의 각료들은 모두 불쾌하고 분한 마음을 누를 수가 없었고 청구쪽 호족들은 전리품 가운데서 선물을 준비하여 소부족의 호족들에게 푸짐하게 내주었다. 그러나 한배는 앙앙불락하는 막료들을 엄하게 꾸짖었다.
청구와 조선은 그들 큰한과 내가 막역한 벗이라는 관계와 같이 한 식구의 부족이다. 더구나 검님께서는 예의 큰한에 대한 권한까지 그에게 위임하셨다. 내가 어찌 시샘을 하며 뒷전에서 그를 헐뜯을 것인가.
한배의 이러한 태도는 각 소부족의 한둘에게도 자세히 전해졌고 덕이에게도 알려졌다. 덕이는 한배에게 조선이 희봉성에서 북상하여 검은강과 모래강 사이의 들판을 차지해도 좋을 것이며, 청구는 유족의 땅에서 평천을 잇는 곳까지에 그치겠음을 알렸다. 그러나 회의가 끝나고 각 부족들이 흩어졌을 때에 소문은 곧 예에도 자세히 전하여졌다. 한배는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생각을 막료들에게 전하였다.
이제 청구는 고립될 것이다. 그가 평천에 머물러 있는한 각 부족의 지파들은 다시는 그를 믿지 않게 될게다. 또한 그가 예의 큰한의 승계에 대한 권한까지 위임받았다고 자처할 것이니 예가 그대로 모른척할 리가 없다. 예에는 아직도 망명중인 전의 맥 큰한이 군사를 거느리고 틈을 엿보는 중이다. 예와 맥의 군대는 맥 땅의 내응을 받아 청구를 동북과 측면으로 협공하여 궁지에 빠뜨릴 수가있다. 우리는 청구가 선심을 쓴 모래강 쪽의 평야를 절대로 차지해서는 안되고 희봉성에서도 철수한다. 희봉성의 맥 군은 겉으로는 복속한체 하고 있지만 조선군이 철수하면 곧장 내응군으로 바뀐다. 그뿐 아니라 진번 임둔의 부족들과 고죽 옥저나 또한 청구의 심복인 유 발부족들까지도 청구를 믿지않으므로 원군을 내주지 않게 된다. 청구는 평천을 다시 잃을뿐만 아니라 저들의 대읍까지 잃을 것이다. 그뿐인가, 동호는 예와 오래전부터 교역해왔던 가까운 부족이다. 동호가 예에 가담한다면 청구는 발 디딜 곳이 없게될 것이다.
상이 한배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이번에는 공연히 예의 힘만을 키워 주는게 아닙니까? 예와 맥이 청구를 몰아내고나면 그들은 반드시 남하하여 바다쪽으로 진출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니까 실기를 해서는 안되겠지. 청구와의 싸움은 제법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동안에 우리는 소부족들과의 연계를 강화한다. 예 맥과 청구가 피로한 싸움을 끝냈을 무렵에 우리는 청구를 돕고 구한의 평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거병하여 예를 치고맥을 달랜다. 그리하여 예 맥 부족 연합을 이루고 예 맥 조선이 소부족들과 단합하여 난하일대의 어지러움을 정돈할수가 있게될것이다.
한배의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막료들은 그 큰 뜻과 깊은 계획에 입을 벌려 다른 의견을 낼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우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만약 청구가 예 맥과 동호의 압력을 받아 바다쪽으로 밀려내려오면 어찌합니까? 한배는 빙긋 웃었다.
청구는 아래로 내려오지 못한다. 그들은 북방의 새 대읍을 버리고 동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큰 강을 건너면 기름진 새 땅이 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래로 내려오면 청구는 강과 바다에 둘러싸여 단지속에 빠진 쥐와같은 형세가 된다. 우리는 이곳을 평정하고 나서 바다를 따라 나아간다. 그리고는 우회하여 청구보다 더욱 동쪽에 대읍을 세우고 드디어 한 식구를 이루게 될 것이다.
과연 한배의 예언대로 예의 큰한은 대로하였다. 그는 사자를 동호에 보내어 일찌기 그들이 잃었던 남쪽의 월동 숙영지들을 되찾을 좋은 기회라고 알렸고, 협공을 제의하였다. 마침 유목부족들이 모여드는 가을철이라 동호의 부족장은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예는 다시 군사를 일으켰고 맥의 큰한과 그의 군사는 물론 청구 정벌군에 편입시키되 따로 대를 나누어 은밀히 맥 땅으로 스며들게 하였다. 맥의 백장이나 소지휘자들은 맥 안에서 내응군을 편성해내기 위하여 먼저 떠났다.
한편 맥의 대읍 평천에서는 덕이와 훌이등이 아직 머물러 있었고 상 설과 다른 사람들은 먼저 청구의 대읍으로 돌아갔다. 덕이가 아직도 평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자신의 병력과 맥군이 힘을 합쳐서 예로 쳐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상 다루가 대읍에서 나와 있었으며 건창까지 진출해 있던 동호방면의 한 검바우에게도 명이 떨어져 그는 유족과 연합하여 예로 쳐들어갈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평천의 청구와 맥군은 거의 만여명이나 되었다. 또한 건창에도 오천여 병력이 대기중이었으니 청구로서는 예는 첫눈이 오기전에 휩쓸어 버릴 자신이 있었다.
예 쪽에서도 먼저 맥 땅에 들어간 자들로 부터 자세한 보고가 들어와 병력의 준비며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예는 동호에 재촉하여 먼저 검바우의 북방 요새가 있던 하얀 이리를 들이치도록 하였다. 동호는 물밀듯이 짓쳐 들어갔고 거의 텅 비어있던 요새는 한나절도 못되어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동호족의 소부대들은 청구의 새대읍 애터부근까지 진출하여 청구의 북방마을들을 노략질하였다. 건창의 검바우가 이끄는 병력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는 병력의 대부분이 청구 북쪽 지방장정들이었기 때문이다. 한 검바우는 할수없이 이천여 병력을 내어 동호의 땅으로 쳐들어가도록 하였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먼저 출병하였던 선진은 강을 건너 하얀 이리의 초원에 당도하기도 전에 동호족의 매복 역습을 받아 거의 궤멸되어버렸다.
검바우는 평천 대읍의 큰한덕에게 알리고 군사를 돌려 건창에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예에서는 북쪽 청구의 병력을 동호에게 맡기자 이제는 출병할 자신이 생겼다. 또한 평천의 남쪽인 희봉 성에서 조선 수비군이 철수하고 맥 군은 남쪽에서부터 새로운 큰 한에 반기를 들고 병력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예의 만여 대군은 더 이상 주춤거리지 않고 평천으로 곧장 쳐들어갔다.
예군과 청구군은 평천과 승덕 사이의 험한 산과 언덕이 밀집한 구릉지대에서 부딪쳤다. 이런 곳에서는 기병도 전차도 소용이 없었다. 활을 가진 궁수와 보병들이 긴요했고 기병은 소부대 단위로만 활용할수가 있었다. 청구군은 우선 지형지세에 어두웠고 데려온 맥군은 전혀 싸울뜻이 없어 오히려 언제 적으로 변할지 몰랐다. 그뿐 아니라 평천에서부터 실어 나르는 군량은 끊임없이 산간지역 맥군의 습격을 받았다. 큰한인 덕이 겨우 곡물을 갈아 만든 굳은 떡을 진중에서 씹을 형편이었으니 청구군은 굶주림과도 싸워야 했다. 예군은 청구군을 사방에서 괴롭히면서 승덕 근처의 긴 협곡까지 깊숙이 끌어들였다. 그리고는 내응군으로 맥의 대읍 평천을 들이치도록 하고 돌연공세로 나왔다.
청 구군은 대패하여 건창방면으로 빠져나가는 사이에 맥군은 전세를 돌이켜 청구의 남쪽 대읍으로 쳐들어갔고 예군은 일방 청구본진을 추적하고 일방은 갈래강 아래를 우회하여 새대읍으로 육박하였다. 청구의 패잔 병력은 말모루가 보이는 버들강 근처에서 동호에 쫓겨 내려오는 검바우의 병력과 합세하였다. 검바우가 눈물을 흘리며 큰한에게 아뢰었다.
동호에 두었던 모든 요새는 다시 빼앗겼고 마을은 모조리 불타고 파괴되었습니다. 유족의 읍은 점령되었으며 백성들은 거의 남쪽으로 달아나거나 소수의 병력만이 우리와 동행하였읍니다. 유의 한은 전사했읍니다. 또한 발족은 맥의 압박으로 북상하지 못하고 항복하여 강화를 이루었다 합니다.
비장 홀이 말하였다.
큰한께서는 이러한 때에 어째서 조선에 원군을 청하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일찌기 예맥의 침공이 있었을제 저들을 돕지 않았읍니까? 그러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덕은 그제서야 상 설의 작전계획이 과욕이었음을 알았고 눈앞의 실리에 팔려서 이러한 큰잘못을 저지른 것을 크게 후회하였다.
어서 말모루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백성들과 병력을 모아 예의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덕이가 함께 눈물을 홀리며 중얼거렸지만 상 다루가 말하였다.
말모루로 가셔서는 안됩니다. 그곳은 동호의 옛초원지대가 바로 건너다 보이는 곳입니다. 차라리 사자를 급파하여 모두들 남부여대하고 피난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갈래강에는 결사대를 보내어 예군의 침입을 방어하며 애터의 백성들과 우리 본진이 빠져나갈 틈을 벌도록 해야만합니다. 우리는 갈래강을 따라 남하하다가 대릉하를 건너가는 것입니다. 큰 강을 사이에 두고 예와 동호의 추격을 막아낼 수가 있읍니다.
더 이상 논의를 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청구군에서 결사대가 뽑혀 본진과 애터의 피난을 도울 방책이 즉각 실행되어야만 하였다. 비장 홀이 나섰다.
제가 큰한을 바로 모시지 못하고 패전하여 이에 이르렀습니다. 일찌기 저희 부자는 큰한을 만나 청구 구읍의 치욕을 씻을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제 누이를 거두어 큰한의 안해로 삼으시니 제가 아비와 식솔들을 위해서도 가겠습니다. 기필코 저들이 퇴로를 막지 못하도록 갈래강에서 묶어두겠읍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