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여기서부터<11>|금융은 금융인에게 맡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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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작년8월부터 지난 6월까지 10개월 사이에 7개 시중은행장중 5명이 바뀌었다.
이중 임기만료에 맞추어 물러난 사람은 2명뿐이고 3명은 임기중 물러났다.
지방은행장도 10명중 7명이 바뀌었는데 K은행같은 경우는1년3개월만에 물러나기도 했다.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어 임기중 도중하차 했지만 거의 모두가 주총에서의 결정이전에「외부」의 「뜻」에 따라 보따리를 쌌다.
S은행의 K행장 같은 경우는 측근에게 「유임을 보장받았다」고 「비밀」을 털어놓은지 며칠만에 물러나는 「불운」을 당하기도 했다. 임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주총전날까지 이사승진후보로 내정됐다가 하루밤사이에 바뀌는 촌극이 벌어진 일도 있다.
그런데 묘한것은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뽑아야할 은행장에 대한 내정인사 기사가 관변소식통을 인용, 훨씬전에 보도되고 그것이 그대로 들어맞는다는 점이다.
현재 시은이나 지방은행은 정부소유주식이 하나도 없다.
주주가 아니므로 정부가 민영화된 시중은행의 인사에 간여한다는 것은 법적으로 원천적인 문제를 안고있다.
한주도 갖고있지 않으면서 「정부」가 은행인사를 좌지우지하는 현실, 「모처」로부터 전화 한통화에 거액의 대출이 이루어지는 금융풍토, 이것이 오늘날 관치금융의 실상이다.
서강대 김병주교수(경제학)는 『60년대이래 정부주도의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면서 그것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그때그때 정책금융을 만들어 내고 인사에 직접 간여하다보니 관치금융의 풍토가 고질화됐다』고 지적하고 『이제는 우리 경제가 선진국권에의 진입을 바라보고 있느니 만큼 더 이상 관치금융의 정당성은 합리화될 수 없다』말한다.
임원인사가 은행 「외부의 입김에 의해 이루어지고 정부「지시」나 모처 전화에 의해 거액대출이 이뤄지니 「금융부실화」는 당연한 귀결이다.
은행감독원에 따르면 이자를 제때 못 받고 있는 5개 시중은행의 부실채권은 은행에 따라 18∼37%, 모두 5조∼7조원규모나 된다.
금융자율화와 관련, 지시금융이나 인사간여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는 오늘날의 중앙은행-한국은행의 위상이다.
원론같은 얘기지만 중앙은행은 통화가치의 안정이란 중요한 임무수행을 위해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강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우선 재무장관이 한은총재 추천권을 갖고있는 것은 물론 통화신용의 최고정책결정기관인 금융통화운영위원회 결정사항을 다시 심의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있다.
이러니 중앙은행마저 일일이 재무부의 눈치를 봐가며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은을 재무부 남대문출장소라고 부르는 판이다.
외국어대 민병균교수는 『한은은 그동안 자율화·중립화가 아니라 정부예속화가 가속되는 길을 걸어온 것이 사실』 이라면서 금융자율화를 위해선 중앙은행의 독립 또는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50년 미국의 「브룸필드」박사와 「젠슨」씨가 기초해 만들어진 한국은행법은 중앙은행으로서의 독립성이 엄격히 보강되도록 되어있었지만 그 같은 한은법은 5·16후 정부가 의욕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면서 정부의 경제정책 뒷받침기능으로 변질됐다.
민교수는 『이때부터 한은이 재무부산하기관으로 예속되면서 경제정책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으로 한은의 역할은 전락됐다』고, 지적했다.
김병왕 교수는 『정부조직법상 재무부장관이 화폐금융에 관한 포괄적인 권한을 갖도록 규정하고있어 한은법상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운영에 관한 권한을 갖고있는 금통위와 업무분장이 모호하고 한은의 인사·예산·조직등에 관한 정부의 간여마저 제도화되어 있는 것』이 현제도의 기본적 문제점이라고 지적한다.
금융·통화에 관해 최고정책결정기관인 금통운위가 「금융통과위원회」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는 현실이 현재의 실상을 말해준다.
이에 따라 1, 2차 대전후 각국은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에 고심해왔다.
1차대전직후 엄청난 인플레를 경험한 서독은 2차대전무중앙은행을 아예 헌법기관으로 만들어 버렸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의회에만 책임을 질뿐 완전히 행정부로부터 독립돼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연세대 김학은교수는 『중앙은행이 완전 독립되고도 독일은 2차대전후 물가안정속에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며 중앙은행독립에 따른 정부 경제정책과의 심한 마찰우려를 일축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대열에 도전할만큼 경제규모가 커지고 발전해 과거와 같은 관치금융을 벗어날 때가 되었다.
이를 위해서 우선 시급한 것이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이요 금융자유의 확립이다.
민병균교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보장을 위한 몇가지 제안을 한다.
민교수는▲금통위원추천은 각계에서 하되 추천사무는 한은총재가 맡고▲금통위의장은 한은총재, 정부는 참여만 하고▲금통위권한에 외환업무 및 특수은행통할권을 추가하고▲재무장관의 감사임명권은 폐지하고▲한은총재는 대통령이 총리추천을 받아 임명하도록 한은법을 개정할 것 등이다.
시중은행등 일반은행도 주시소유만의 민영화에서 인사와 여·수신 업무등이 모두 명실공히 자율화가 이뤄질때 시장경쟁원리에 따라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부실채권도 생기지 않는다.
금융의 정상화·현대화 없이는 경제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명실상부한 금융자율화, 그리고 중앙은행의 독립성보장은 절실한 과제로 제기되고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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