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이란 핵문제, 정치적 타결이 유일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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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란은 70년 2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고 2년 후인 74년 5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보장조치협정을 체결했다. 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성공으로 한동안 중단됐던 핵 개발은 84년 재개됐고 90년대 러시아와 부셰르 핵발전소 완공 계약을 하면서 더욱 가속됐다.

이란의 주변국들인 러시아.파키스탄.인도가 모두 핵보유국이며 이스라엘과 미국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란은 자신들의 핵무기 개발 추진이 생존권 수호 차원이라고 강변한다. 핵무기가 없던 이라크는 침공당했지만, 핵무기 보유 가능성이 있는 북한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 또한 강조하고 있다.

79년 이슬람 정권 수립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 강경파 지도자들이 강조하는 "이슬람 신정 정권교체" 주장은 이러한 이란의 우려를 더욱 정당화했다.

2004년 들어 더욱 격화된 이란 핵개발 의혹 공방은 이스라엘.미국 강경파의 선제공격설, 이란 군부 내 강경파의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 디모나 핵시설 공격과 이스라엘 전역의 전략 시설 초토화 위협 공방으로 확산되는 경향이다. 디모나는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곳으로 알려졌으며,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최소 200기의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란 내 분위기는 고위 성직자 하메네이가 "이란은 어떤 종류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슬람 성직자 그룹의 강한 반미주의와 항전자세로 경직돼 있다. 지금까지 이란의 어떤 대통령도 신정체제 하에서 최고위 성직자 아야톨라들의 정책에 도전할 수 없었던 것처럼 새로 출범한 아마디네자드 정부 역시 그들의 핵개발 강행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란은 석유를 무기화하여 핵주권을 확보하면서 자국의 안보는 물론 중동의 강국으로 부상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극구 부인하는 북한과 달리 핵 프로그램의 강행이 어떤 경제적 보상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이란의 생존을 위한 정치.군사적 안전판으로서의 필요이자 자신들의 이슬람 정권 안보에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중동의 지정학적 위치와 비중으로 인해 이란 핵문제는 중동 정세 전반은 물론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외치는 미국으로서도 명분론뿐 아니라 안정적인 원유 공급이라는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이란 핵문제를 초기 단계부터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다.

이 때문에 이란이 핵개발을 계속 강행할 경우 미국과 이스라엘은 좌시하지 않고 이란과의 전면전에 돌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이란의 핵무기 개발 능력이 축적되면서 중동평화와 안보를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간다는 이유에서다.

이란 핵문제 해결은 이해당사국들의 정치적 타결 외에는 평화적 해법이 없다. 만약 미국이 테헤란의 이슬람 정권을 인정하며 위협을 멈추고 대량살상무기를 통제한다면 핵문제 해결에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이다. 결국 미국과 테헤란 당국의 직접 접촉만이 해법이다. 이는 한반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시사해주는 점이 많다.

장병옥 한국외대 교수·중동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