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등 소재 이색신작시 "첫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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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분명한 사건』 『사랑의 기교』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이땅에 씌어지는서정시』 등의 시집을 통해물신사회의 거짓삶을 비판해온 중견시인 오규원씨가 2년여 공백을 깨고 「상품적 메시지」를 대상으로한 9편의 신작시를 한꺼번에 발표, 문단의 화제가 되고있다.
「문예중앙」 여름호에 실린『해태 들국화』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슈발리에』 『NO MERCY』『자바자바셔츠』 등의 시는 제목처럼 광고·영화포스터·안내문·상표등을 시적대상으로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념해체· 형식파괴 등오규원 특유의 시적 문법을 보여주고 있으나, 우리 시단에서는 거의 볼수 없었던 극단적인 사물시라는 점에서 황지우와는 또다른 충격을 전해주고 있다.
『당신이 쥐어박아도/옷을벗겨도 물을 먹여도/미미는 웃는다고 전해지지요/모가지만 그대로 두면』(『MIMI HOUSH』중에서)같은 시는 인형을 통해 「무엇인가」 를 말하고 있으며,『여자들은 우뚝 선 이씨무릎아래 엎디어/자아바,쿵/ (잡는다) /고올라, 자바/짝짝/ (골라잡는다) /고올라 고올라/(잽싸게 고른다) /자바자바 (끌어당긴다)』(『자바자바셔츠』중에서)같은 시는 셔츠장수 이씨의 호린행위를 통해 「무엇인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이「거짓 행복에 대한 분노」 라든가, 「마취된(특히 성적으로)삶에대한 야유」 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규원은 짐짓 「인용적묘사」 라는 시방법에만 관심이 있다는 듯이, 시의 의미는 자신이 알바 아니라는듯한 냉정한 사물시적 입장에 서있다.
문학평논가 김병익씨는『시인은 없어져버리고 상품(행위) 들만 남겨둔것은 물신주의에 대한 극단적이고 노골적인 분노를 역설적으로 드러낸것』이라고 보았으며 시인 장석주씨는 『산업화시대 세속주의의 상징인 광고를 통해 자본주의적 대중조작에 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어 『이들 시들은 물신주의에 대한 분노에 찬 야유임과 동시에, 시와 광고문안을 등가시함으로써 전투력을 상실한 시자체를 야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시적방법자체가 메시지」 라는 인식을 과격하게 밀고나간 오씨의 이번 시들은 80년대 시단에 또하나의 전위적 징후로 평가되고 있으며, 올가을 펴낼 그의 신작시집에 대한 기대에 주목할만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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