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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2위 서적 도매상 '송인' 부도 소식에 출판인 반응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내 2위 규모의 서적 도매상 송인서적(대표 이규영)의 부도가 새해 벽두부터 출판가를 강타했다. 손해를 봤다는 출판인이 한둘이 아니다. 그만큼 출판 유통 분야에서 송인서적의 비중이 커서다. 송인서적의 매출 규모는 전체 서적 거래량의 10% 정도다. 이번 부도로 인한 피해액이 전체 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출판계는 전망한다. 몇 개월 후에 실제 대금 집행이 이뤄지는 어음을 사용하는 전근대적 유통구조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송인서적은 2일 지난해 8월에 발행한 50억원대의 어음을 막지 못해 1차 부도를 낸데 이어 3일 이를 막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됐다. 페이스북에는 송인서적 부도 파장을 우려하는 출판인들의 글이 잇따라 올라온다. 그 글들의 일부를 소개한다.

│마음의숲 권대웅 대표
출판도매상 송인이 부도가 났다. 1998년에도 부도를 내고 망했다가 주변 출판계 도움 및 자력으로 다시 갱생 했다가 결국에는 또 두번째 부도를 낸 것이다.

그에 따라 거래처인 수 많은 중소 출판사들이 송인에 책을 주고 받은 5개월짜리 어음들이 줄줄이 부도가 난 것이다. 열심히 책 만들어 만 원짜리 책을 송인 도매상에 60% 심지어 5,500원에 내보내던 중소 출판사의 피해가 만만치 않다. 출판계는 아직도 전근대적인 결재 방식인 어음(발행하는 사람이 미래의 일정한 금액을 일정한 시기와 장소에서 무조건 지급할 것을 약속하는 쪽지) 주고 받는다. 부도를 한 번 냈음에도 불구하고 5개월짜리 문방구 어음을 여전히 발행해온 곳이 송인이다.

작년 8월에 송인에서 받음 어음이 현금으로 돌아오려면 5개월 후, 그러니까 작년 12월 31일이다. 12월 말에 받은 어음이 현금화 되려면 올 5월 말까지 기다려야 한다. 8월부터 12월 동안 매월 송인에서 받은 어음이 부도(不渡 어음이나 수표 따위에 적힌 기한에 지급인으로부터 지급액을 받지 못하는 일) 무효 되어 부도가 난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우리도 송인에 물렸다. 기분이 몹시 나쁘다. 매일 괴상한 일이 벌어지는 괴상한 국가도 화가 나는데 송인 때문에 또 화가 난다.

도매상으로서의 고충도 있었겠지만 또다시 부도를 낸 송인 대표와 송인을 상징하는 송 전무에게 세 번 다시 출판계로 돌아오지 말고 딱지 장사나 하라고 말하고 싶다.

│1인 출판사 북인 조현석 대표
새해 출근 첫날부터 새해 다짐을 실천할 일이 터지고 말았다. 전국 서점유통의 수위를 다투는 도매서점 송인이 1차부도를 냈다. 벌써 서너 차례 부도를 낸 전력이 있는 상습범이다. 10여 년 전에도 여러 출판사의 도움으로 회생해놓고 또다시 부도를 냈다. 소규모 출판사인 나도 연매출의 10%를 허공에 날리게 생겼다. 당장 그 업체에서 받은 어음을 현금으로 물어주게 되어 새해 벽두부터 타격이 이만저만 아니다.

세상은 자기자신만 잘한다고 제대로 살아남는 게 아니란 사실을 또 깨닫는다. 두 번 연이어 대통령 잘못 뽑아 십 년 가까이 고생했고 지난해 후반부터는 희대의 막장 드라마를 몸소 보고 겪어야 하는 국민들은 뭔 잘못인가. 그런데 아무 생각 없는 어르신들과 보수세력들은 대통령 피선거권조차 없으며 허울 좋은 유엔 사무총장을 했다는 이유로 기름장어 반기문을 치기 대통령으로 생각하고 있다니 아연실색할 일이다.

어제 저녁 퇴근길에 맞은 부도나 신년맞이 7개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 투 톱을 이룬 반기문. 험난한 2017년의 예고편이랄 수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아침이다. 아무튼 올해도 버티고 버티고 또 버텨야 한다. 이가 없는 잇몸을 앙 다물며 잘 버티자고 다짐해본다.

│상상스쿨 대표 오연조
송인 부도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되어…밤새 끙끙거리다 장부 확인하러 일찍 출근했다. 잔고에 비해 하도 수금을 안해줘서 2015년에 거래정리를 했었는데, 마케터님이 책 주지 말라고 여러번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반품이 어렵다는 이유로 오랜 거래의 옛정으로 작년에 다시 책을 공급하며 잔고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매달 송인에서 받은 어음으로 인쇄비며 물류비를 결제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왜그랬을까 머리를 쥐어박고 있다. 어제도 도서관 납품이라며 그림책 50부 주문이 들어와 좋아라했었는데 새해 첫날부터 이게 먼일이람;;;

│청색종이 김태형
송인서적 부도 소식으로 가득하네요. 18년인가 19년 전에도 대형 도매상 부도 소식이 출판계를 강타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무렵 이레 출판사에 잠시 다녔던 기억도 나는군요. 도매상과 거래하는 게 싫어서 첫 책 이후에는 보낼까 말까 미루기만 했네요. 직영책방을 너무 믿어서 그랬을까요. 책의 절반은 창고에 보내지 않고 책방으로 가져와 쌓아놓고 있습니다. 직영책방을 맹신하나봅니다. 그래서 책방이 점점 비좁아집니다. 그래도 도매상과의 거래를 영 하지 않을 수는 없지요. 피해액이 상당한 것으로 들립니다. 중소출판사에게는 큰 타격이 되겠네요. 힘내시고, 꼭 견뎌내주세요. 그리고 또 좋은 책을 내주세요. 중소출판사는 출판의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니까요.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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