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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굴을 '석화(石花)'라고 부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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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엄마는 굴을 따러 왜 섬 그늘로 갔을까. 봄에 알에서 깨어난 굴은 바닷물에 떠다니다 정 붙일 만한 곳을 찾아 달라붙는다. 갯벌에는 개펄과 모래, 자갈만 있는 게 아니라 돌무더기도 있다. 굴이 가장 좋아하는 환경이다. ‘섬집 아기’ 동요 속 섬 그늘은 돌무더기 중 가장 큰 선돌(돌머리)을 일컫는 말일 터. 달라붙을 곳을 못 찾은 굴 유생은 소멸한다. 섬 그늘은 섬마을 아낙의 일터이기 이전에 굴의 요람인 셈이다.

보랏빛을 발하는 굴 껍데기. 이래서 ‘돌꽃’ 석화라 불린다.

보랏빛을 발하는 굴 껍데기. 이래서 ‘돌꽃’ 석화라 불린다.

남해 연안의 밀썰물을 먹고 자란 자연산 굴을 석화(石花)라고 한다. 왜 ‘돌에 꽃이 피었다’고 표현했을까. 굴 껍데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처럼 나이테가 있다. 먹을 만한 크기의 굴은 4~5년생인데, 성장 기간만큼 겹을 확인할 수 있다. 일 년에 한 겹씩, 겹겹이 돋아난 굴 껍데기 끝에 ‘돌꽃’의 비밀이 있다. 갯벌에 박힌 굴이 햇빛을 받으면 새로 돋아난 연한 껍데기가 밝게 빛나는데, 이 모습이 꽃봉오리처럼 보인다 해서 ‘돌꽃’이다.석화는 하루에 두 번씩 왔다 갔다 하는 밀물과 썰물이 키워낸다. 만조에 잠긴 굴은 하루에 6~7ℓ의 물을 빨아들이고 뿜어내기를 반복하며 영양분을 섭취한다. 간조 때 갯벌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굴에 고소한 맛이 배게 한다. 썰물 때 바닷물이 ‘굴밭’을 빠져나가면 성장은 늦춰지지만 맛은 더 잘 드는 게 굴의 생리다. 바닷물에 푹 담가놓는 수하(水下)식 양식 굴보다 덜 비릿하고 단맛이 나는 이유다. 전라도 말로는 ‘개미지다’고 한다.

“자식들에게만 주고 싶은 전국 최고의 석화”

요즘 석화가 나는 곳은 많지 않다. 그중 전남 해남 내동리 앞바다는 남도에서도 최고로 치는 석화 산지다. 해남과 완도 섬 사이에 자리 잡은 개펄은 모래자갈이 적당히 섞인 사질토. 또 강진만에서 흘러드는 민물과 바닷물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영양분이 풍부하다. 내동리는 전국 최고로 치는 개불 산지이기도 한데, 이곳 개불이 맛있는 이유 중 하나는 연중 딱 한 번 개불 서식지를 개방하기 때문이다. 굴밭도 그렇다. 12월부터 3월까지 사리 때만 굴 채취 조업을 하는데, 연중 많아봐야 20차례 남짓이다. 굴밭이 열리는 날에는 인근 아낙 100여명이 운집할 정도로 큰 장이 선다.

전남 해남 내동리 굴밭. 멀리 석화를 채취하는 아낙들이 보인다. [사진 천기철 여행작가]

전남 해남 내동리 굴밭. 멀리 석화를 채취하는 아낙들이 보인다. [사진 천기철 여행작가]

내동리 김종원 어촌계장은 “해남장에 가져가면 내동 굴이 다 팔려야 다른 굴이 팔릴 만큼 인기 있다”고 자랑했다. 지난 17일 첫 조업을 했는데, 작년보다 굴 상태가 좋다. 작년엔 수온이 너무 높아 굴이 덜 자랐단다. 굴 채취 작업은 밀물과 썰물이 크게 들고 나는 사리 때만 가능하다.

‘개미지다’는 내동리 석화. 수하식으로 양식되는 굴에 비해 크기가 작다. [사진 천기철 여행작가]

‘개미지다’는 내동리 석화. 수하식으로 양식되는 굴에 비해 크기가 작다. [사진 천기철 여행작가]

아낙이 하루 종일 갯벌에 쪼그려 앉아 굴을 캐봐야 사발로 두세 그릇 남짓. 하루 5~10만원 벌이. 귀한 값어치에 비하면 부족하다. 그래서 대개 “아들딸에게나 주지 외지인 주문은 잘 받지 않는다”고 하지만 석화 작업에 맞춰 미리 어촌계장에 연락하면 얻을 수도 있다. 다음 사리 물때는 1월 12일 전후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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