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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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긴박한 시국 상황이 더 이상 방치돼서는 안된다는 국민적 우려가 비등하고 있다. 연일 전국적 시위와 불안 상황이 계속되는데도 정치권의 대응은 더디기만 하고 이렇게 나가다가는 누구도 원치않는 파국적 상황이 올것이란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난국의 수습 방안이 무엇인지 각계 인사들의 의견을 들어본다.<가나다순>

<서로잘못 용서를>
◇김성수주교<57. 성공회 서울교구장>오늘의 시국에서 분명히 밝혀진 민심의 소재는 국민 스스로가 자유롭게 정부를 선택할수 있는 민주적 정치구조를 개헌을 통해 조속히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림픽도 중요하고 대통령중심제냐 의원내각제냐의 권력구조문제도 중요하지만 우선 민주화라는 큰 집을 짓기 위한 기초 토목공사로서 개헌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4.13조치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역행한 무리수였고 결국은 전국적인 격렬한 데모를 유발한 가장 큰 원인이 되고 말았다.
또하나의 중요 원인은 힘을 가진 사람들이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똑바로 읽고 실질적인 민주화조치를 취하지 않은채 강경 일변도로만 밀어 붙인데 있다..
이제 민심의 소재는 명백히 파악됐다. 막힌 곳을 뚫고 귀를 보다 크게 열어 더 많이 듣고 말과 행동의 결단을 보이는 일만이 남아 있다.
민심이 원하는 바가 분명하고 원인이 명백한 오늘의 난국을 푸는 길은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기 전에 원수진 사람과 먼저 화해하라』 는 성서의 말씀을 깊이 되새겨 내 주장, 내 생각만 고집할게 아니라 상대방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해주고 상대방의 주장도 받아들이는 화해와 타협밖에는 없다.
물리적인 힘의 강경 일변도나 과욕의 아집은 이제 더이상 국민의 호응도, 박수도 받지 못한다.

<비상조치 안될말>
◇김영기씨<82.제헌의원>
여야를 막론하고 정권을 잡는 것만이 사태가 아니라 어떻게하면 개정을 펼수 있느냐를 곰곰이 생각해볼 시점이다.
이제 시국은 비상조치가 운위될 정도이나 그런 조치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여야 정치인들은 애국의 정열을 가일층 발휘, 사리사욕·당리당략을 벗어나 정말 「빈마음」에서 타협을 시도해야한다.
여야가 지난해 개헌 특위를 구성 했을때 우리 국민의 환호는 물론 전세계가 우리의 정치 성숙도가 높은데 놀랐을 것이다.
그동안 무릎 한번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를 못했지만 개헌 열망이 수포로 돌아가자 국민의.분노가 터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이제는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여야가 하루빨리 개헌 논의를 재개한후 한발짝씩 양보해 타협안을 도출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직선제와 의원내각제를 놓고 내용상의 절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볼때 제헌헌법의 토대위에 시대의 흐름에 맞게 몇몇 조항을 고치면 괜찮으리라고 본다.
제헌의원으로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당시 헌법은 물론 국회법까지 동시에 제정하는데 불과 42일밖에 안걸렸다는 점이다.
현 난국은 개헌논의의 봉쇄에 그 원인이 있으므로 개헌논의의 재개가 관건임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과격행동은 자제>
◇김은호씨<69.전 대한변협회장>
당장 개헌논의가 재개되어야한다.
이같은 어려운 시국을 맞이하게 된 원인은 개헌논의 유보라는 4·13조치 때문이다.
그동안 개헌논의는 민주발전을 위한 국민들의 여망이었는데도 야당과 합의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논의 자체를 중지한 것이 잘못이었다.
결국 이 난국을 풀기 위해서는「결자해지」란 말처럼 정부·여당이 4·13조치를 철회하고헌법을 개정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여당이 혹시라도 이같은 난국을 푸는 방법으로 비상조치를 내린다면 이는 일시적 처방에 불과할 것이다. 사람이 병이 났을때 근원적인 치료 없이는 완치가 안되는 것처럼 비상조치로는 이 난극을 풀수 없고 악화만 시킬뿐이라고 본다. 이것은 과거 4.13당시를 보면 쉽게 알수 있다.
일부에서는 학생들의 집단시위를 우려하고 있는 것 같고 물론 지나친 과격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학생들의 행동 역시 근본적인 원인이 제거된다면 과격행위는 사라질 것으로 본다.
정부·여당에서 구속자 석방및 사면·복권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나 이는 지엽말단적인 것으로 난국을 풀기에는 미흡하며 무엇보다 헌법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림픽 그 자체가 이 나라의 목적이 될수 없다는 점에서 개헌 성사 없는 올림픽 개최는 의미가 없고 개최 자체도 어려울것 같다.
그러므로 정부·여당은 지금 당장 개헌협상 테이블로 돌아앉아야 하며 이것이 국가와 민족을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사 존중을>
◇김태길씨(68.전 서울대 철학과교수>
무엇보다 정부·여당이 현재의 사태를 정확히 인식하는게 중요하다. 여야는 모두 마음을 크게 가지고 개인이나 당파보다 국민 전체를 위한다는 입장에 서야 한다.
이 나라 정치인들에게는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생각이 항상 부족했던 성싶다. 나라의 주인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니 국민의 의사를 존중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여당은 고집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4.13조치를 철회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체면이나 고집 때문으로 보이나 현 상황은 고집을 부리고 있을 차원이 아니다.
국민들에게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 폭력이나 과격행위는 당국의 최루탄 과잉사용, 무력 진압에 대한 반동으로 나오는 것으로 생각되긴 하나 아뭏든 폭력은 국가 전체를 위해 바람직스럽지 못하므로 좀더 냉정히 의사표현을 했으면 한다.

<굴복을 강요말라>
◇송월주 스님(52.전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오늘의 시국사태는 국민의 절실한 여망인 개헌을 통한 민주발전을 외면한데서 비롯됐다.또 경제성강의 결실이 고루 분배되지 않고 인권침해·부정부패가 근절되지 않는 등의 사회적비리도 시국상황을 가열화 시키는데 한몫을 했다.
문제의 해결은 정부·여당이 참으로 국리민복을 위한다는 겸허한 자세로 민주화 열망의 민의를 수렴, 개헌등의 제도적 장치와 시책을 강구하는 길밖에 없다.
안정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공권력에 의한 해결은 일시적인 미봉책이 될뿐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된다. 지금의 난국은 공권력의 한계를 드러내 보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깊이 통찰해야한다.
야권은 우리의 특수한 안보적 상황을 고려, 민중혁명적 방법을 통한 「급진적 해결」보다대화와 타협을 통한 점진적·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는 진지한 노력을 보여야한다.
국민적 당면 요청은 민주화를 실현할 개헌이다. 여권은 4.13조치를 즉각 철회하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한 개헌을 위한 과감한 조치를 하루속히 취해야 한다.
정국은 언제나 여권이 책임지고 주도해야 하는게 상례이기 때문에 현시국도 우선 여권의 성의있는 노력이 앞서야 할 것 같다.
권력구조라는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립하는 아집의 당리당략은 본말을 뒤바꾼게 아닌가싶다. 여야 정치인들은 뒷날의 역사적 심판과 민의를 참되게 읽지않은 죄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않도록 뜨거운 참회를 늦기 전에 해주기 바랄뿐이다.

<미봉책으론 곤란>
◇정헌주씨<72.전 국회의원>
매우 위태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금과 같이 많은 시민들이 장기간 투쟁을 벌인 예가 없다. 4.19는 학생들이 일시적으로 쏟아져 나옴으로써 성공했지만 지금처럼 국민적 감정이 비등한 것은 아니었다.
시의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도와 사회 전반의 흐름으로 볼때 이미 힘으로 해결하거나 제압할 시기는 지났다고 본다.
유일한 수습책은 정부가 솔선하여 국민 의사를 받아들이는 길뿐이다.
움직이고 있는 정치에 있어 하나의 원칙은 국민들의 생각을 뒤쫓거나 끌려가선 안되고 사전에 수용해 앞서가야 한다는 것이다. 뒤쫓다보면 국민들의 생각은 가변적이고 상승되게 마련이다.
원리원칙에 입각해 풀어가야지 기교나 일시적 무마책으론 곤란하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국민이 원하고 있는 4.13조치의 철회와 대통령을 내손으로 뽑겠다는 개헌 열망을 즉각 솔선 실시해야 한다. 이 길만이 국가의 불행과 정부· 여당 당사자의 불행을 막는 길이란 점을 헤아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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