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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사랑을 바꿀 수 있다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81호 20면

일러스트 김옥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이런 대사가 있다.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이 남자에게 말한다. “감독님은 왜 맨날 자기 얘기만 해요? 창피하지도 않아요?” 그가 말한다. “내 얘기도 잘 모르는데 남의 얘길 어떻게 해요?” 아마 그래서인지, 홍상수의 영화는 내겐 미리 쓰는 자서전처럼 읽힌다. 만약 그가 소설가였다면 그의 모든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직업 역시 소설가 아니었을까.


홍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2부로 이루어진 영화다. 1부에서 영화감독 함춘수는 ‘관객과의 대화’를 하기 위해 하루 일찍 수원에 도착한다. 그는 수원 화성에 갔다가 ‘복내당’에서 그림 그리는 여자, 윤희정을 만난다. 햇볕을 쬐며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있던 여자에게 그는 ‘당연히’ 반하고 마는데, 결국 그렇게 희정의 작업실까지 따라간다. 희정이 작업 중인 그림들을 보며 연신 감탄사 내뱉듯 “좋다”라는 말을 반복하다가, 결국 이렇게 말한다. “희정씨는 정말 외롭고 어려운 길을 가는 것 같네요.”


춘수의 말에 그만 먹먹해진 희정은 그에게 마음을 연다. 하지만 희정의 선배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그가 유부남에 바람둥이라는 걸 알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희정은 춘수가 작업실에서 자신에게 했던 말이 실은 자신이 한 인터뷰의 반복이라는 걸 알게 된다. 절망한 희정은 춘수를 뒤로 한 채 자신의 집으로 들어간다.


2부에서의 춘수는 희정을 수원 화성의 ‘복내당’에서 똑같이 마주친다. 희정은 똑같은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춘수는 그녀의 작업실에 다시 간다. 하지만 그는 희정의 그림을 보고 1부와는 전혀 다른 말을 한다. 타인과 자신에게 위안을 주고 싶어 그림을 그린다는 희정의 말에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위안이라는 말! 너무 상투적인 것 같아요.”


그는 1부에서 끝까지 숨기려 했던 결혼 얘기를 희정에게 전부 해버린다. 자신은 23살에 이미 결혼했다고 말이다. 춘수는 희정을 빤히 바라보다가 너무 예쁘다고 말했다가, 한숨을 내쉬며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그런데 자신은 이미 결혼했기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춘수를 연기한 정재영의 연기는 혀를 내두를 정도인데, 보는 사람 쪽에선 그저 ‘주접’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작업 멘트’를 그는 전혀 거슬리지 않게, 자신의 몸에 착 달라붙은 듯 연기하고 있다. 뭐랄까. 시인 백석이 기생집에서 처음 자야를 보고 홀딱 반해 술 취한 듯 쏟아내는 투정 어린 고백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희정은 결혼했다는 춘수의 말에 “섭섭하다!”는 말로 응대한다. 1부의 반응과 전혀 다르다. 1부의 ‘사기꾼 함춘수’는 ‘솔직한 함춘수’로 돌변한다.


모텔 간판이 등장하지 않는 홍상수 영화서운함을 표현한 희정의 말에 좋아하는 춘수의 얼굴은 ‘희비극’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교본 같다. 나로선 ‘울다 웃는 함춘수’라는 단편을 하나 쓰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 이상의 기적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그렇게 그들은 통했다. 하늘도 도왔는지 길 위에서 주운 반지로 이들은 서로의 진심까지 확인한다. 그래서? 하룻밤의 사랑은 기적처럼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홍상수 영화의 수순처럼 침대로 향하는가.


“저는 이제 가려구요. 안녕히 계세요.”


모텔 간판이 등장하지 않는 홍상수 영화를 보게 될 줄이야! 이들은 헤어진다. 희정은 춘수의 뒷모습을 보고, 그의 영화를 보러 간다. 이쯤 되면 우리는 질문할 수밖에 없다. 뭐가 맞은 건가? 어떤 게 틀린 거지? 틀린 건 새드 엔딩이고, 맞는 건 해피 엔딩인가? 이 영화의 끝은 같다.


1부와 2부, 이들이 두 번 다 ‘헤어진다’. 하지만 어떻게 헤어지느냐에 관한 느낌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어둑한 극장 안에서 춘수의 영화를 홀로 보며 희정은 예감했을 것이다. 한 번도 던져보지 못했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남을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그것은 다시 오지 않을 사랑이다.


홍상수 영화를 혼자 보는 건 내 오래된 습관 같다. 매번 같은 직업(감독), 비슷한 배우(김상경, 유준상, 정유미 등), 비슷한 장소(대한민국의 온갖 모텔)와 설정(흥신소적 연애와 섹스 활극) 때문에 나처럼 기억력이 신통하지 않은 사람은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와 장소를 전부 다 헷갈린다. 말하자면, ‘하하하’에 등장하는 유준상이 ‘다른 나라에서’나 ‘극장전’에도 등장했는지 아닌지,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용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영화가 그의 영화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왜냐하면 결국 영화를 보고 나면 배우는 겹쳐지거나 사라지고, 어느새 홍상수라는 이름만 남기 때문이다.


과거의 의미는 현재에 의해 역동적으로 변해개봉관에는 대부분 사람이라곤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매번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나가다가 그를 직접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속 상황이 실제 벌어질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드는 것도 참 별난 감정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보다 더 맞는 말들이 많아요. 나는 지금 너의 이런 부분이 좋아. 그런데 다음날이 되니까 그게 아니라 다른 점이 좋아. 너의 손을 만지고 싶어. 너의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마워. 너랑 있으니까 마음이 따뜻해지고 몸이 편안해지네. 외로웠는데 네가 같이 있으니까 참 좋다 등등이라며, 고백의 다양성을 고백한 적이 있어요.”


이 영화에도 그의 다른 영화에서처럼 ‘예쁘다’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의 거의 모든 영화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예쁘다’ ‘착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예쁘다, 정말 예쁘다, 너무 착하다, 진짜 예쁜 것 같다…. 이 정도로 착하고 예쁘다는 말을 반복하는 걸 보면, 정말 좋아서 저러지 싶다.


나는 이제 대단하고 거창한 캐치프레이즈를 믿지 않게 되었는데, 결국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증시’나 ‘국제 관계’도 밑바닥을 보면 전부 다 ‘감정’과 관련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돼서인지도 모르겠다. 도미니크 모이시가 『감정의 지정학』에서 말한 것도 그런 것들이다. 거칠게 말해, 이성적으로 운영될 것 같은 경제나 국제관계가 역시 실은 감정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증시는 정확한 수학이라기보다, 호르몬이 창궐해 주체하지 못하는 사춘기 청춘 남녀의 감정(그녀는 나를 사랑해, 아니 사랑하지 않아, 아냐 사랑해!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과 훨씬 더 유사하다. 감정이 과대평가된 게 아니다. 감정이 거의 전부다!


‘사랑이라는 말’보다 조금 더 정확한 고백은 어떤 걸까. 결국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사랑에 이르는 길인 걸까? 만약 삶을 두 번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수정하고 싶은 과거의 사랑이 있는지 가늠하다가, 스스로에게 여러 번 질문했다. 그때가 맞고 지금이 틀린 걸까? 아니면 지금이 맞고 그때가 틀렸던 걸까. 아마도 같은 질문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던진다면 내 대답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는 분명 바꿀 수 있다. 정확히 말해 과거의 의미는 내가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역동적으로 뒤바뀐다. 이것이 내가 살면서 직접 체득한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시간’ 개념이다. ●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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