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엄격한 종교와 융통성 있는 현실의 불안한 공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1호 11면


“아메리카 배드(bad), 코리아 굿(good).”


지난달 9일(현지시간) 이란 남부의 도시 시라즈 외곽에 자리 잡은 한 전통식당.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정원을 둘러보다 마주친 식당 주인 후세인은 한국인이라는 말에 친근한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손님을 환대하는 것은 고대 페르시아부터의 전통”이라며 “미국 정부에 반대할 뿐 미국인은 언제나 환영”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진행한 언론 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일주일간 이란을 방문하면서 여러모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정부의 공식 입장과 현실적인 사회 운영이 미묘하게 달라 보였다. 모든 것이 이중적이다. 정부 구성부터 그렇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부터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다. 하지만 실제 권력 서열 1위는 이란혁명을 이끈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후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다. 그는 매주 금요일 생중계되는 설교를 통해 “미국을 믿지 말라”는 메시지를 반복하지만 이란 어디서나 미국 달러는 환영을 받는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는 “이란은 중동에서 유일하게 민주적 절차에 따라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국가지만 실제로는 종교 지도자가 헌법수호위원회를 통해 입법·사법·행정부를 통제하는 신정체제”라고 설명했다. 하산 로하니 현 대통령은 개혁파로 분류된다.


법률 체계 역시 샤리아(쿠란을 바탕으로 한 이슬람법)와 세속법이 혼재돼 있다. 범죄를 다루는 일반 법원 외에 샤리아가 금지하는 신성모독 등을 다루는 혁명재판소와 성직자재판소 등이 따로 존재한다. 유엔은 지난 10월 “이란은 지난해에만 966건의 교수형을 집행했으며 태형·체포·구금 등이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있는 로하니 대통령은 이달 19일 검열 없는 인터넷, 초·중교 무상교육, 정치 활동의 자유 등을 명시한 시민권리헌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외신들은 이란 인권 탄압의 대부분이 보수 강경파가 포진된 사법부와 혁명수비대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만큼 권리헌장이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한다.


엄격한 종교 규범과 융통성 있는 현실의 괴리는 사회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공식적으로 술을 마실 수 없는 이란에서는 실제로 호텔을 포함한 거의 모든 곳에서 무알콜 맥주만 판매한다. 공항에서는 짐 검사를 통해 술을 압류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화 한 통이면 30분 안에 집으로 술을 배달해 준다고 한다.


여성 정책도 마찬가지다. 가이드인 모센 박티아르는 “이란은 실질적으로 모계사회나 다름없을 만큼 여성의 권리가 잘 보장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결혼한 뒤에는 처가 근처에 살며 자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외삼촌과 이모가 아이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되는 식이다. 여성이 운전조차 할 수 없는 사우디아라비아 등과는 달리 교육이나 사회활동에도 제한이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란 여성들은 공식적으로 머리카락을 노출하면 안 되고 가족 이외의 남성과 어울리는 것도 불법이다. 올해 5월 혼성 졸업파티를 하던 대학생들에게 태형 99대가 선고됐고, 인스타그램에 히잡을 쓰지 않은 사진을 올렸던 유명 모델 엘함 아랍 등 8명이 ‘비이슬람 문화’를 조장한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정부기관을 포함한 공공기관에서는 검정 또는 흰색 히잡을 착용해야 하며 식당도 남녀 좌석이 분리돼 있다. 여성은 축구장에도 갈 수 없고, 지하철에서는 맨 앞과 맨 뒤 칸만 이용이 가능하다. 테헤란대에서 만난 자린은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끔찍이 싫어한다”며 “미래의 내 딸은 히잡을 쓰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에 얽매인 엄격한 사회로 보이겠지만 의외로 이란인들은 외국인에게 친절하다. 치안도 안정된 편이라 여행하기에 나쁘지 않다. 타스닌통신의 아바스 아슬라니 국제부장은 “페르시아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만큼 이방인들에게 관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5일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모살라에서 열린 언론박람회에서 이란 문화종교부 호세인 엔테자미 차관은 “언론의 가장 큰 역할은 이슬람혁명 정신을 젊은 세대에 가르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는 차단할 수 있다는 의도로 읽혔다.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서도 구글을 비롯한 많은 해외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다. 익명을 요청한 한 지방 신문사 부장은 정부에 비판적인 몇몇 언론은 폐간당하면 다른 이름으로 다시 등록해 발행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고 전했다. 박람회장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이란 언론에는 ‘딥 인포메이션’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란인들은 무엇이 진실인지는 고사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란은 올해 초 미국과의 핵 협상 타결을 계기로 경제성장과 국제사회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이중적인 사회 구조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이란 기업인은 “머지않아 신정체제가 진퇴양난의 곤란한 지경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개발에 성공할 경우 더 많은 자유와 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이슬람 율법으로 제어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패할 경우 힘겨운 현실에 대한 불만이 정부뿐 아니라 종교 분야에까지 확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경제제재로 원유 수출 등이 막히면서 79년 달러당 70리알이던 환율이 최근에는 3만 리알 이상으로 치솟았고, 물가도 매년 30%씩 올랐다. 한·이란 상공회의소의 호세인 탄하이 회장은 “제재가 풀린 뒤 아직까지 체감경기가 좋아지는 것을 느끼지 못해 국민들의 불만이 쌓이는 상황”이라며 “기술력과 자본력을 갖춘 한국이 적극적으로 이란에 진출해 한국식 성장 모델을 재현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테헤란·이스파한·시라즈=김창우 기자changwoo.kim@joongang.co.kr

Copyright by JoongAng Ilbo Co., Ltd. All Rights Reserved. RSS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