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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자신감, 새 시대 여는 동력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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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만 중앙일보 사회1부 기자

윤석만 중앙일보 사회1부 기자

“간악한 도둑이 백성의 땅을 빼앗는 경우가 많았다. 그 규모는 한 주(州)보다 크고 산과 강을 경계로 삼기도 했다. 남의 땅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땅이라고 우기며 주인을 내쫓았다. 땅마다 주인이 대여섯 명이나 됐고 각자 세금을 걷어갔다.”

1451년 문종 때 편찬된 『고려사(高麗史)』는 14세기 고려 말의 시대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간악한 도둑’은 기득권층인 권문세족을 뜻한다. 이들은 과거(科擧)가 아닌 음서(蔭敍)로 벼슬을 대물림하고 토지를 독점했다. 세금을 못 낸 백성은 노비로 만들었다. 당시 고려는 대들보가 모두 썩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오래된 기와집과 같았다.

60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 사회도 어찌 보면 별반 다르지 않다. ‘헬(hell)조선’이란 말처럼 신분이 고착돼 젊은 세대는 꿈과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통계청 조사 결과 ‘노력해도 계층이 상승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1994년 5.3%에서 2015년 62.2%로 급증했다.

‘돈도 실력’이라는 정유라의 말은 부모가 물려준 수저에 따라 자신의 운명까지 결정될 수 있다는 부조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대를 이은 최태민 일가의 농단은 온갖 불법과 비리를 자행하는 기득권층의 ‘갑질’이 평범한 시민의 일상까지 얼마나 깊게 지배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했다. 성실히 원칙을 지키며 살아온 시민들은 자신의 삶이 농락당한 것에 대해 분노했고 촛불을 들었다.

지난 두 달간 광장에서 보여준 촛불의 속마음에는 이런 ‘헬조선’을 이젠 정말 끝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지금의 나라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어린 아들·딸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2016년이 구시대의 마지막 장이길 바랐다. 그렇게 분노는 촛불이 됐고 혁명의 횃불로 타올라 ‘앙시앵 레짐’의 붕괴를 외쳤다.

하지만 촛불혁명의 의미는 단순히 ‘앙시앵 레짐’의 붕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창조적 파괴’다. 그리고 그 창조력은 ‘시민의 자신감’에서 나온다. ‘헬조선’에 짓눌려 있던 시민들은 촛불혁명을 계기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신감’을 회복했다. 사상 초유의 인간띠로 청와대를 두른 시민들은 대통령을 압박하며 정치권의 탄핵 결정을 이끌어 냈다. 시민들의 마음속에선 ‘하면 된다’는 믿음이 ‘해도 안 된다’는 자조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광장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분노는 뜨거웠지만 행동은 쿨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폭력은 성숙하지 못한 자의식의 자해(自害)다. 그러나 촛불을 든 시민은 평온했고 집회는 축제였다. 경찰 차벽을 꽃 스티커로 수놓더니 집회가 끝나면 의경들이 고생한다며 다시 뗐다. 시위대 중 한 명이 쓰러지자 차벽 위의 의경들은 핫팩을 던져주며 서로를 따뜻이 감쌌다. 평화시위를 넘어 관용과 배려까지 보인 시민의 행동은 전 세계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성숙한 자의식이 없었다면 모두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이런 ‘자신감’은 시민을 재탄생시켰다. 분노의 표출에서 대통령 처벌, 민주주의의 복원을 요구하며 스스로 진화했다.

사실 그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는 시민의 부재로 불완전했다. 80년대 운동으로서 민주화가 끝나고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제도로서 민주주의가 정착됐지만 그 내용까지는 완성하지 못했다. 성숙한 의식과 시민적 교양을 갖추고 일상적으로 공동체 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하는 시민 문화의 토양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4·19와 6월 항쟁 때도 시민은 있었지만 혁명이 끝나면 시민은 사라지고 구체제로 회귀했다. 국민은 투표 때만 주인이었고, 선거가 끝나면 돈과 권력을 가진 특권층이 또 다시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서서히 ‘헬조선’이 돼 갔다.

그러나 2016년 촛불혁명은 민주주의 내용을 완성했다. 제도로서 민주주의를 다져왔던 것에서 한 발 나아가 시민 스스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헬조선’처럼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자기비하와 집단 우울감을 걷어내고 시민들은 힘을 합치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무엇보다 청춘이 다시 꿈을 갖게 된 것이 큰 수확이다. 최근 광장을 수놓는 10대들 사이에선 ‘헬조선이 아닌 갓(god)조선으로’라는 구호가 유행한다. 집회에 참여했던 한 고교생은 “우리 힘으로 살기좋은 세상, 갓조선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역사의 발전은 청년의 희망에서 시작되기에 우리의 미래는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제 주목해야 할 것은 끓어오르는 시민의 자신감을 한국 사회의 발전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슴팍까지 차오른 시민의 에너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리더가 필요하다. 혹자는 촛불혁명이 직접민주주의의 발현이라고 말하지만 시민의 본심은 대의민주주의가 더욱 성숙하길 원한다. 일부 세력이 ‘시민의회’를 만들자는 주장을 내세웠다 시민 다수가 ‘국회를 놔두고 왜 또 다른 비선을 만드냐’고 항의해 무산된 것처럼 말이다. 검증받지 않은 민간인이 국가의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독단적인 대통령 1인이 국정의 모든 걸 좌지우지 못하도록 의회가 제 기능을 발휘해주길 바라고 있다.

2017년 새해엔 새 시대를, 새로운 정치 리더를 기다린다. ‘민본’을 기치로 썩은 기와집을 허물며 조선을 세웠던 신진 사대부처럼 말이다. 얼마 남지 않은 2016년은 구시대의 마지막 장이 될 것이다. 온갖 병폐와 부조리가 가득했던 구체제와는 이제 결별할 때가 왔다. ‘이제 남은 것은 덧없는 이름뿐인’ 권위주의 시대의 향수와 그림자를 모두 버려야만 새 시대를 시작할 수 있다.

윤석만 중앙일보 사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