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1만개「미사」전에 동나|명동농성 해산·촛불행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농성해산=명동성당 농성자들은 해산성명발표에 앞서 30여분동안 성당정문∼중앙극장∼로열호텔앞까지 이르는 3백여m의 도로에서『선구자』등의 노래와 구호를 외치며 마지막 (?) 시위.
시위대는「독재타도」라고 쓴 머리띠에 주변상인등 시민들이 전해준 카네이션을 각각 한송이씩 꽂은 채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위를 하다가 주변건물창가·옥상등에서 내려다보던 시민들이 꽃을 뿌리고 박수를 보내자 손을 흔들어 답례.
학생들은 하오1시 성당으로 다시 들어가 정문앞 비탈길에 앉아 한동한 시위를 계속했다.
○…농성학생들은 버스를 타고 학교로 떠나기 직전 성당구내에서 천막생활을 해온 상계동철거민들과 고생스러웠던 농성을 되새기며 서로 위로.
○…농성학생들은 버스로 떠나기 앞서 차앞에 둘러서서『출정가』『선구자』 등을 불렀으며 차에 오르기전 서로 악수를 나누며 『18일 연동교회에서 만나자』고 약속.
학생들이 떠난 뒤 문화관 입구에는 농성학생중 의료부소속 4명이 남아 자신들이 쓰던 머큐러크롬·식염수등 의약품 20여종1백여개를 정리.
한편 학생들은 문화관을 떠나기전 2층 실내의 담배꽁초·휴지등을 말끔히 청소한 뒤 『우리들이 6일동안이나 민주화투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성당측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농성학생들이 성당을 떠나는 모습을 동료 신부와 함께 지켜보던 함세웅 신부는 기자들이 몰려가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이것이 민주주의의 표본 아니냐』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함신부는 수녀와 신부·학생등으로부터 『그동안 수고 많았다』는 인사를 받고 『학생과 시민들이 민주적인 절차로 결정한 내용에 승복해주어 기쁘다. 이것이 민주주의 아니냐』며 밝은 표정.
○…농성학생과 시민들은 15일 농성을 풀면서 그동안 시민과 동료학생들이 보내온 2천여만원의 성금을 ▲명동시위로 부상한 1백90여명의 치료비 ▲시위로 피해를 본 상가에 대한 보상비 ▲최루탄을 맞고 사경을 헤매는 연대생 이한열군의 치료비 ▲명동성당구내에서 천막생활을 하는 상계동철거민 지원금등에 쓰기로 결정.
이들은 또 성금과 함께 남대문시장상인·시민· 수녀등으로부터 받아 사용하고 남은 의류와 식품등 물품은 상계동철거민과 성당관리인에게 전달.
농성기간중 학생들에게 전달된 성금은 일요일인 14일하루에만 1천3백여만원에 이르는등 시민과 상인·신도·수녀등의 격려와 성금이 끊이지 않았으며 농성을 풀고 귀가한 뒤에도 한 시민이 37만원을 보내오는등 성금전달이 이어졌다.
◇학교도착=명동시위학생·시민등 50여명을 태운 계성국민학교 버스는 하오3시산분 명동성당을 출발, 동국대∼단국대∼고속버스 터미널∼사당동∼총신대∼숭실대를 거쳐 하오4시15분쯤 서울대 정문에 도착.
그러나 서울대측이 『서울대학생이 아니면 출입시킬 수 없다』고 완강히 버티는 바람에 인솔했던 박희원신부등이 명동성당과 연락을 취하는 사이 버스는 관악산입구 유원지 주차장에서 20여분을 기다렸다.
이때 버스안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학생·시민등 20여명이 『농성을 풀때 약속한 것과 다르다』며 항의하자 신부들은 『우리가 끝까지 여러분의 안전 귀가를 책임지겠다』고 간곡히 설득, 인근중앙대등으로 버스를 돌렸다.
○…한양대·서울시립대·외대등 서울 동부지역 7개대학생과 시민등 5명은 15일하오 3시10분 명동성당에서 마련해준 계성국교 스쿨버스를 타고 명동성당을 출발, 각 대학을 차례로 돌며 학교에서 내린 뒤 모두해산.
학생들은 시가지를 통과하는 동안 버스유리창에 「호헌철폐, 독재타도」라고 써붙이고 반정부구호를 외쳤으며 각 대학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수천명의 학생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학생들은 성당을 출발한 뒤 하오3시25분쯤 첫 번째로 한양대에 도착해 하오2시부터 집회를 갖고 있던 3천여명의 학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으며 이어 서울시립대·외대·서울여대·건국대 순으로 학교를 돌며 환영을 받은 뒤 이 날밤 귀가했다.
◇특별미사=성당측은 15일밤 미사에서 8천여명의 신도가 모인데 이어 성당입구에도 1만여명의시민·학생들이 집결하는등「예상했던 것 이상으로」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자 일부 미사일정을 수정하는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성당측은 미사시작 30분전 이미 3천명규모의 본당이 메워지자 구내마당에 제단을 설치, 임시 야외 미사장소로 지정했으나 이도 모자라 일부 신도들은 가톨릭회관앞 마당에까지 모여 미사를 보았으며 당초 미사가 끝난 뒤 「촛불평화대행진」을 벌이려 했으나 출입구가 비좁아 계성여고 뒷문으로 귀가할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미사에 앞서 성당측은 꽃초1만개를 준비, 성당입구에서 1백원씩에 팔았는데 미사 시작전에 이미 동이 나기도.
○…15일밤 교문앞 시위도중 머리에 돌을 맞아 중상을 입고 뇌수술을 받은 연세대생 이종창군(21·도서관2)은 지난9일 교내시위를 벌이다 최루탄파편에 뒷 머리를 맞고 8일째 사경을 헤매고 있는 이한열군을 부상현장에서 병원까지 옮겼던 학생.
뇌수술을 마친뒤 이군이 입원해 있는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중환자실 2층 이군침대 한칸건너에 누워 있는 이종창군은 이한열군과 동향인 광주출신으로 재수까지 같이한 사이라는것.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