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거절하는 용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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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남이 베푸는 친절을 거절한다는 것은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일도 못되며 쉬운 일도 아니다. 친구가 권하는 담배한대, 코피 한잔, 점심 초대, 술자리등 어느 것 하나 거절하기도 어렵고 거절할 이유도 없다.
동료 교수중에 항상 바빠서 허둥대며 또 너무 바빠서 죽겠노라고 불평을 터뜨리는 사람이 있다. 이유는 담당 강의시간이 남들보다 훨씬 많은데다 원고를 써 달라, 강연을 해달라, TV에 출연해 달라, 결혼식 주례를 서 달라, 눈 코뜰 사이를 남들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절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 했더니 정색을 하면서 대답하기를 자기는 천성이 거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항상 예외가 있는 법이다. 나 같으면 얼씨구나 하고 승낙하고도 남을 일을 태연하게 거절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사르트르」는 1964년 노벨문학상수상자로 발표 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하였다. 구태여 이유가 있다면 자기보다 8년 나이가 아래인「카뮈」가 자기보다 7년 먼저 이 상을 수상하였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으나 약 2백년전 영국에서 계관시인으로 추대된다는 사실은 시인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1757년 영국 왕실은 「토마스·그레이」라는 시인을 계관시인으로 선정, 발표하였으나 이 시인은 이 타이틀을 태연히 거절하여 버림으로써 왕실과 귀족들은 물론 온 영국국민들을 경악시켰다.
대학교수를 해주십사는 간청을 거절해버린 용감한 사람도 있다. 화란태생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1673년당시의 독일군주로부터 하이델베르히대학에 철학교수로 취임하여 달라는 요청을 그 자리가 자기 사상의 완전한 독립성을 흔들어 놓을 위험이 있고, 마음의 평정을 깨뜨릴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당시「스피노자」는 국외추방중에 있으면서 유리를 갈아 렌즈를 만드는 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해 나갈 정도로 경제적으로 궁핍하였음을 감안하여 볼 때, 이 잘난대학교수 자리 달아날까보아 별의별 수모를 겪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입이 벌어져 닫히지 않을 뿐이다.
친구의 점심이나 저녁초대 정도는 당신도 거절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초대가 대통령으로부터 왔다고 하였을 때 당신은 과연 거절해 버리겠는가. 거절 못하기 보다는 안할 것이다. 평소에 대통령에 대하여 삐딱하게 말하고 행동하던 사람들도 집에 가자마자 마누라에게 양복 다리고 좋은 넥타이 준비하라고 야단법석을 부릴 것이다.
1962년 미국의「케네디」대통령은 생존하여 있는 미국인 노벨상수상자들을 모두 백악관으로 점심초대를 하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윌리암·포크너」는 점심 한번 먹으러 백악관까지 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는 이유로 이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 박사에게는 1922년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되었다. 또 거절이냐구요.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그는 상을 받았으니까. 그런데 이 사람이 거절한 것이야말로 요사이 말로 끝내주는 것이었다. 대통령자리를 거절하였으니 말이다. 세계2차대전이 끝난 후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이스라엘 국회는 만장일치로「아인슈타인」박사에게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여 본인에게 통고하였으나「아인슈타인」박사는 물리학자답게 24시간 생각해본 후 거절의 회신을 보냈다. 자기는 아무래도 정치보다는 물리학을 더 잘할 수 있다는것이 이유였다.
나는 그저 이런 사람들의 행동앞에 멍할 따름이다. 이 사람들 좀 돈 사람들 아닐까.
아니 그런 명예를 헌신짝같이 버리다니 바보 천치인가.
아니다. 바보도, 천치도, 정신이 돈 사람도 아니다. 이 사람들이야 말로 거절을 제때 알맞게 할 수 있었던 축복받은 극소수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야 말로 남들이 모두 『예스』하리라 기대하고 있을 때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노』를 할수 있는 특권과 사치, 나아가서는 드릴을 맛보았던 사람들이다.
개인에게 상이나 관직이나 명예가 주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권리다. 그러나 그것을 거절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주어진 특권이다.
거절은 때로는 새로운 차원의 용기다.
나는 슬프다. 나는 친구가 권하는 담배도, 코피도, 술도 몸에 해로운줄 알면서도 거절하지 못하니 슬프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드는 것은 어째서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박사께서 헌법에 규정된 임기를 마쳤을 때 『각하, 한번 더 하셔야지요』하는 주변의 유혹에 멋진 『노』를 던짐으로써 자기에게 주어진 축복받은 이 특권을 행사하지 못하였나하는 안타까움이다.
같은 경우에 던져진「조지·워싱턴」의 『노』한마디가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부강한 오늘의 미국이 있게된 원동력이요 주춧돌이 되었음을 상기해보며 창틈으로 새어 들어온 최루탄 가스에 또 한번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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