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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최단신 발레리나, 국립발레단 첫해에 주연…‘악바리 기적’을 만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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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국립발레단 정단원이 된 첫해 주역에 오른 김희선. 한예종 조주현 교수는 “키는 작지만 비율이 좋고 표현력이 탁월하다”고 칭찬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립발레단 정단원이 된 첫해 주역에 오른 김희선. 한예종 조주현 교수는 “키는 작지만 비율이 좋고 표현력이 탁월하다”고 칭찬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신예 발레리나 김희선(24). 선화예중-선화예고-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를 거쳤다. 지난해 국립발레단에 입단, 올해 정단원이 됐다. 6월 헬싱키 국제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했고, 12월엔 발레단 인기 레퍼토리 ‘호두까기 인형’(2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첫 주역 데뷔다.

‘호두까기 인형’ 여주인공 김희선
4만원짜리 토슈즈 비용 아끼려
접착제 발라가며 뭉개질 때까지 신어
악착같은 연습으로 신체조건 극복
2인무에 강점, 국제콩쿠르 1위도
“어떤 무용수에도 없는 간절함 있어”

여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꽃길만 걸어온 이처럼 보인다. 입단 1년 만에 여주인공까지 꿰찼으니 누구든 부러워 할 만하다. 이만큼 급성장한 데엔 본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좋은 배경도 있지 않았을까. 이를테면 집안의 전폭적 지원이나 최상의 학습 여건, 우월한 신체비율 등등. ‘귀족예술’이라 불리는 발레니 감히 ‘흙수저’가 넘볼 수 있겠느냐 말이다. 하지만 그의 성장 과정은 정반대다. 가난과 불우한 가정환경, 단신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뚫고 일궈낸 기적의 드라마다.

김희선은 일곱살때 발레를 처음 접했다. 동네 학원에 다녔다. 그맘때 부모는 이혼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양육비를 댈 형편이 못됐다. 어머니 혼자 희선과 여섯살 터울의 남동생을 키웠다. 파트타임으로 식당에 나가거나 공부방 청소를 전전했다. 발레에 한참 재미를 붙여가던 희선은 초등 2학년때 연습중 크게 넘어져 오른쪽 손목에 깁스를 해야 했다. 학원비 30만원이 부담스럽던 어머니는 “이참에 발레 그만하고 공부하자”고 했다. 희선은 꺼억꺼억 소리까지 내며 밤새 울었다. “막상 발레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서러웠나 봐요.” 어머니는 ‘그러다 말겠지’하며 조금만 더 참아보기로 했다.

어린 희선은 재능이 있었다. 초등부 대회에 나가면 매번 상을 탔다. 무엇보다 끼가 넘쳤다. 하지만 발레란 거저 하는 게 아니었다. 특히 4만원짜리 토슈즈 비용이 많이 들었다. 일주일이면 앞부분이 물러져, 새것으로 바꿔야 했다. 그걸 희선은 3주씩 신었다. 강력접착제를 발라가며 어떡하든 길게 신으려 했지만, 툭하면 삐거나 접질리며 발목 부상을 달고 살았다. “토슈즈 사달라는 얘기 꺼내기가 가장 싫었어요. 그때마다 엄마는 ‘좀 아껴쓰지’하고, 그러면 난 또 짜증내고….”

발을 보여달라는 요청에 김희선은 쑥스러워했다. 그는 “뭉뚝한 편이라 그나마 생채기가 없다”고 말했다.

발을 보여달라는 요청에 김희선은 쑥스러워했다. 그는 “뭉뚝한 편이라 그나마 생채기가 없다”고 말했다.

초등 6학년, 이제 전공을 하느냐 마느냐 기로였다. 희선은 그만두려 했다. “몇 년 하면서 눈치챈 거죠. 이런 형편에서 발레하겠다는 게 얼마나 주제 넘는다는 걸.”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는 딸을 앉혔다. “또래들보다 잘 입히고, 먹이질 못해. 갖고 싶은 거 사 줄 수도 없어. 하지만 너만 포기 안 하면, 엄마도 포기 안 해. 그러니 우리 견뎌보자.” 모녀는 껴안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희선은 “슬펐지만 그 이상 더 기뻤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집은 경기도 의정부였다. 선화예중까진 1시간40분 걸렸다. 아침 6시에 일어났지만 툭하면 지각이었다. 집에 오면 밤 11시가 넘었다. 친구들과 어울릴 여유는 없었다. 악바리처럼 연습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자라지 않는 키는 야속했다. 그는 현재 국립발레단 최단신(156㎝)이다. 체구가 작은 만큼 존재감은 약해졌고, 센터에 서지 못한 채 외곽으로 물러나야 했다. “신체 조건은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기를 쓰고 테크닉에 더 몰입했죠.”

작은 키는 약점만 되진 않았다. 파드되(2인무)를 하는 데 유리했다. 남성 무용수들이 사뿐히 들 수 있는 희선과 함께 하는 걸 좋아했다. 한예종 진학 후 그가 처음 국제콩쿠르에서 1등을 했던 부문도 파드되였다. 자신만을 돋보이게 하는 것보다 주변을 챙기는 성품과도 잘 맞았다.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1970년대 루돌프 누레예프의 파트너로 세계를 호령한 모리시타 요코 역시 150㎝의 단신이었다. 민첩했고 작은 동작에 강했다. 김희선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했다. 희선의 스승이었던 한예종 조주현 교수는 “어떤 무용수에게도 없던 간절함이 희선에겐 있었다. 그건 감동이었다”고 전했다.

희선은 현재 가장이나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4년 전 큰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껏 후유증에 시달려 왔다. 희선은 국립발레단에 들어와 돈도 벌지만 무엇보다 “토슈즈를 맘껏 신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이번 깜짝 발탁에 대해 강수진 예술감독은 “김희선은 클래식·모던 두 장르 모두 소화해 낼 줄 안다.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희선의 무대는 20일이다. 어머니 정지연(45)씨는 “너무 귀한 성탄 선물이지만 눈 뜨고 제대로 볼 수 있을지, 내가 너무 떨린다”고 말했다.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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