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 승부사' 김재박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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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김재박(49)감독의 전성시대다. 김감독은 4일 국가대표 감독에 선임됐다. '당대 최고 감독'이라는 훈장이다. 김감독은 지난주 SK.삼성에 6연승을 거뒀다. SK와 삼성은 현대와 함께 '3강'을 이루는 프로야구의 강호들이다.

SK의 조범현 감독은 올시즌 혜성처럼 나타난 '뉴리더'이며 삼성의 김응룡 감독은 두말이 필요 없는 국내 야구 최고의 승부사다. 그런 두 감독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거둔 6연승은 김재박 감독이 자신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열고 있음을 대변해준다.

주말 대구에서 만난 김감독은 자신의 야구를 '전문성'과 '창의력'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임되기 전 "대표팀 코치는 각 분야의 전문코치들로 구성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다른 구단의 감독들을 예우 차원에서 투수.타격코치로 임명하지 않고 현재 현장에서 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인물을 중용하겠다는 말이다. 그는 "다른 팀 감독님들도 좋지만 아무래도 감각에서는 현장에서 뛰고 있는 코치들이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 코치진은 8개 구단에서도 손꼽히는 전문가들로 인정받는다. 수석 및 수비 정진호 코치, 투수 김시진 코치, 타격 김용달 코치는 각각 야구의 핵심적인 부문에서 김재박 감독을 보좌하고 있는 '트로이카'다.

정코치는 1996년 김감독 부임과 함께 8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고, 김시진 코치는 98년, 김용달 코치는 2000년 김감독 사단에 합류했다. 김감독은 이들의 전문성을 인정해 주고, 그 권한을 보장해 줘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김감독은 코치들의 전문성과 함께 선수들의 창의력을 현대가 강팀으로 군림할 수 있는 비결로 꼽는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라면 모두 자신이 알아서 할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최대한 맡긴다. 그럴 때 창의력이 생기고,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내부의 '룰'을 어기는 것은 관망하지 않는다. 그건 교과서다"라고 말했다.

프로에 입단한 선수라면 스스로의 기능을 충분히 깨닫고 있는 만큼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상황에 기용하고, 교체하고, 준비시킨다면 선수들의 창의력이 보태져 '플러스 알파'의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감독은 선수들의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자신이 덩치가 작아 외면당했던 대광고-영남대 시절 깨달을 수 있었다고 했다.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훈련하고, 연구하면서 얻은 지식이 진정 자신에게 보탬이 됐다는 것이다.

김감독이 강조하는 전문성과 창의력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팔방미인'보다 한 분야에서 똑소리나는 전문가가 인정받는 시대가 아닌가.

그라운드에 뛰는 9명은 물론 벤치의 25명 모두를 풀가동해 한 경기를 치르는 프로야구에서 전문성과 창의력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상종가의 김감독이 밝힌 '김재박 성공시대'의 비결은 단순하면서도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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