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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두 개의 중국’을 향해 가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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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 전부터 미국 외교가에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자신과 그의 예비내각은 그들의 비즈니스 거래 때문에 수많은 이해의 충돌에 직면하고 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나 유럽연합(EU)에 대해 언급한 결과로 미국과 유럽 동맹국 간의 관계에 의구심이 생겼다. 또한 필리핀과 파키스탄 지도자들을 찬양함으로써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보다 충격적인 사건은 트럼프가 알레포 폭격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과 통화한 것이다. 폭격은 인도주의의 재난이었으며 반군은 불명예스럽게 패배했다.

대만 총통과 통화한 결과로
중국 내 매파의 입지 강화
동아시아 불확실성 증대에
중국-대만 위기 초래할 수도

하지만 대만에 대한 트럼프의 언급이 가장 큰 우려를 초래했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간의 갈등은 트럼프 시대 최초의 외교정책 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 여파는 한반도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트럼프가 지난 2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나눈 전화 통화의 문제점은 그의 의도가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트럼프와 그의 고문들은 통화가 예의상의 문제라고 변명한다. 차이잉원 총통이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으면 결례라는 것이며 통화가 미국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만으로부터 돈을 받고 일하는 미국인 로비스트들이 통화를 성사시켰다는 게 드러났다. 게다가 이번 통화는 중국 매파(hawks)의 이익을 반영한다.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바 있는 존 볼턴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매파는 중·미 관계를 뒤흔들려 한다.

트럼프는 종종 문제가 생기면 굽히지 않고 더욱 세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도 트럼프는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One China policy)’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나의 중국 정책’은 외교에서 모호함이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다. 중국 입장에서 ‘하나의 중국’ 정책은 ‘중국은 하나다’ ‘대만은 빼앗길 수 없는 중국의 일부다’ ‘중국 유일의 정당성 있는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이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미국 정책에서 ‘하나의 중국’은 뉘앙스가 다르다. 1972년 상하이 코뮈니케에서 미국은 중국의 입장에 대해 ‘알겠다’는 표시는 했지만 인정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다음에 나온 여러 코뮈니케,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 대만에 대한 미국의 확약을 통해 미국은 양안(兩岸) 관계가 평화롭게 발전되기를 바란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보냈다. 미국은 ‘두 개의 중국’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지만 동시에 미국은 대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의 강압을 묵인하지 않는다는 뜻을 확실히 해 왔다. 미국 정책의 이러한 묘수는 저평가되고 있다. 미국의 정책은 중국이 주권을 주장할 수 있게 허용하는 한편 중국·대만 양쪽이 서로 실용적으로 접근하도록 격려한다. 1995~96년 베이징(北京)이 공세적인 군사훈련을 감행하자 미국이 개입했다. 또한 2000년 대만 선거 이후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이 부상하자 미국은 대만에 신중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러한 미묘한 외교 인프라가 이제 위협받게 됐다. 트럼프는 정책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지 않는다. 그는 트위터 활동을 할 뿐이다. 존 볼턴 같은 고문들은 미국이 대만과의 관계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지난 일요일 한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만 정책을 남중국해·무역·북한 문제 등 다른 사안들을 위한 협상 카드로 쓸 의향을 내비쳤다. 즉 중국이 다른 사안에서 미국에 협력하지 않으면 미국은 대만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겠다는 뜻이다. 어쩌면 ‘하나의 중국과 하나의 대만(one China, one Taiwan)’ 정책으로 옮아갈지 모른다.

베이징의 반응은 처음에는 절제된 것이었지만 공세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정책을 바꾸면 다른 분야에서 협력이 쉬워지는 게 아니라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강경 민족주의 여론을 대변하는 매체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사설에서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포기하면 중국이 미국의 적들을 지원할 것이며 심지어 대만을 무력으로 정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엄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중국 지도부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

트럼프는 중국의 반발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이미 중국은 미국 회사들을 압박하고 대만 부근에서 군사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그다음 단계로 중국은 남중국해 활동을 강화하고 대북(對北)정책을 수정할 수 있다. 베이징은 심지어 서울에 대만 정책의 수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중국이 그렇게 나온다면 트럼프는 ‘종이호랑이’가 될 것인가. 아니면 트럼프는 중국을 더욱 밀어붙여 양안에 군사위기를 초래할 것인가.

현재 좋은 소식은 차이잉원 총통이 신중하다는 점이다. 중국의 매파와 미국 여론은 트럼프의 정책 수정에 환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의 나머지는 트럼프가 야기시키는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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